[데일리스포츠한국] 반쯤의 형체를 싸아안고 있는 듯한 그 검은 법복은 주인공의 양미간에 하나의 복숭아 나무가 서 있는 듯 보였고, 그 동쪽 가지에 빛이, 뱀처럼 쓰르륵 쓰르륵 흘러내려오고 있었다. 그 안의 형체들은 목을 옭죄어 왔는데, 그 때 그의 눈앞에는 작열하고 있는 생명의 불꽃 같은 시커먼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그것은 황충에 물린 모든 흑암처럼 괴롭게 죽어 휘어져 있는 듯 했으나, 실상은 살아서 그의 눈앞에서 맹렬하게 꿈틀거렸다. 그는 종내 그것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을 비틀어 저 세상으로 보냈다.그런 뒤, 그는 그 자리
[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이 읍의 입구에 들어서자 때는 동틀 녘이며, 검게 잠들었던 것들이 희게 깨어나고 있었다. 그는 마을 교회당을 둘러볼 작정으로, 또 방해받음 없이 노독도 풀 생각으로 교회당을 향했다.그가 다다른 교회당은 아직도 헐려 있지는 않았다. 그 주위로, 능금나무와 벚나무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늘어서 숲을 이루고 있는 언덕에, 삭다리 십자가를 아직도 높이 세우고 서있었다. 그것은 번쩍이는 햇빛 아래, 고풍으로 정숙히 서 있어 아름다웠는데, 왠지 고향 없는 한 돌중의 심사를 불편스러이했다.그는 버려진 교회당의 햇빛이 잘 드
[데일리스포츠한국] 유리에 머문 지 15일째가 되어 읍으로 떠나는 날도 비는 부슬거리며 그치지 않고 있어서, 주인공에게는 유리가 비실재적이며 추상적인 공간인 듯 했다. 유리의 마른 늪은 형체를 잃어버린 어둠과 운무에 휩싸여 그의 눈앞에 신기루처럼 나타났다가 저 멀리 사라지곤 했다.그럼에도 그의 현존을 실감하게 하는 향수 어린 하나의 얼굴이 남아 있었으니, 영혼의 누이 같은 수도부였다. 그녀는 그를 동구 밖까지 배웅해 주며, “오열에 흐드러진, 그러면서도 그것을 짓누르고 일어서려면서 해맑게” 웃어주었다. 그녀를 향한 그의 애틋한 향수
[데일리스포츠한국] 유리에서의 13일째 되는 날에 그는 그녀(수도부)의 두 번째의 눈과 대좌해 있다가 하늘을 응시했다. 그 시각 ‘기억의 꾸리’를 삼킨 “안개비는 여전히 유리를 폐쇄시키고 있었다. 그 폐쇄를 그리고 마른번개가 열며 지나가고 있었다.”그 때 그는 “제석삼천불 법륜(法輪)이 다지고 지나간 자리에 돋은, 저 계집 같은 한 포기 들꽃의, 그 들꽃의 크기의 고해(苦海)”와 다시 대면하게 되었다. 그에게 그것은 제석삼천불 거하는 삼천대천세계보다도 더 클 것만 같았다.그는 고통의 바다 한 가운데를 떠돌던 유리에서의 14일째 날에
[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이 유리에서 머무른 지 12일째 되던 날 밤은 궂었었다. 번개는 쉬임없이 지나갔고, 주인공에게는 ‘처럽은 밤’이었다. 번개가 또 한 번 유리의 마른 늪을 휩싸고 지나갔을 때 그는 자신의 시체를 보았었다.그 때 그가 ‘혼이어서 무장애로 떠나지 못했던 것’은, 그의 시체와 혼 사이에 연결지어져 있던 강인한 끈 때문이었다. 그의 혼이 떠나려 하면, 그 끈의 다른 끝에 매달린 시체가 무겁게 그를 짓누르는 탓이었다. 그는 그것이 “업(業)은 아니었을까” 모른다고 생각했다.그것은 그의 ‘시신과 혼 사이의, 다하지 못한
[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은 항아리를 끼고 샘으로 가던 길에 갑작스런 자신의 변모를 뒤늦게 깨달았다. 그에게도 이제 피 묻었던 스승의 유산인 장옷 한 벌이 걸쳐졌는데, 이것은 그가 이제 유리의 촌민으로 어엿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하나의 표지였다.그가 장옷을 걸치고, 얼굴을 가리고 눈만 내놓고 나니, 자기 은폐 본능이 어쩐지 누구에게나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보았자 ‘백해무익한 체면’과도 같은 것이었지만, 동시에 장옷이 주는 은폐의 편안함도 느끼게 했다.은폐된 자의 편안함은 주인공에게 에덴으로부터 추방된 최초의
[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은 상징적으로 보아 아비로부터 물려받은 ‘혈루병적인 몸’ 외에도 역마살이 유전되어 ‘마음을 갉아먹는 번뇌’에 자주 휩싸였다. 그것은 그 안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저주받은 ‘변절적인 피’와 업(業)의 ‘심리적 유전’ 때문이리라.박상륭은 낯설고 황무한 고장의 몰인정 앞에 내던져져 배회하는 영혼(주인공)의 ‘마음을 갉아먹는 번뇌’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나는, 사막을, 그냥 남녘 끝을 한하고 질주해나간 것이 아니라, 날 속에 싸여드는 씨북처럼 헤맨 것이다. 헤맬수록 왠지 나는 더욱더 쓸쓸하던 것이다. 계집 하나
[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은 유리에 들어온 지 11일 째가 되는 날, 바닷가 유년 시절 엄니가 ‘모든 추악함의 여성적인 덩이’로 보였던 때를 그리워하며 느시렁 느시렁 주류하며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지휘하라, 오 힘의 주여…오 여자, 나의 어머니, 나의 실패가 무엇이며,내가 반드시 따라야 할 길이 어디인지를, 내게 가르치라!내 앞에 날으시라. 대로를 따라서,나의 길을 예비하시라!오, 빛의 어머니여, 질투를 아는 자여,내 너에게 간청하노니, 그대의 세 그늘을 높이하늘 아주 높이 남기라”살불살조의 완성을 위해 두
[데일리스포츠한국] 유리의 마른 늪으로 이주한 이후부터 줄곧 고적과 고독의 몰약에 잠겨 있던 주인공은 수도녀의 “한 되의 나드 기름만큼” 고봉 담고 있는 깊은 정을 느꼈다. 그는 그녀가 뿜어내는 새둥지다운 안온한 에너지에 포근히 잠겼다.그녀는 잠시 얼굴도 씻고 분가루도 바르고 온다며 쪼르륵 달려 나갔다 다시 돌아와 그의 앞에 수줍게 섰다. 그는 눈을 들어 그녀를 찬찬히 살폈다.오늘 따라 그녀는 화장한 얼굴에 성장을 하고 온 것이었다. 그의 눈에 보름달이 막 솟아 오른 듯한 그녀의 목은 탁월했고, 어깨는 우아했다.그의 기억에 그녀의
[데일리스포츠한국] 스위스의 정신의학자인 칼 융(Carl Jung)은 이라는 책에서 요나가 고래의 뱃속에 삼켜졌다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난 이야기를 분석하며 스위스의 의사이자, 철학자요, 연금술사였던 파라셀수스(Paracelsus: 1493-1541)가 ‘폭력적인 미스테리아(Gewaltige Mysteria)’라고 표현했던 단어를 차용했다.“요나가 고래에 의해 삼켜졌을 때, 그 때 요나는 포악한 것의 뱃속에 간단히 잡혀 들어간 것이 아니라 이미 파라셀수스가 ‘폭력적인 미스테리아’라고 말했던 것을 보았던 것이다”융의 표현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륭은 구약성서의 요나서에 나오는 요나의 이야기와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힌 죽음을 비교하며, “바다에 던져졌다 삼일 만에 살아난 요나와 땅에 장사되어 삼일 만에 부활한 예수의 죽음이 완전히 같은 형태로 취급된 것“이라고 전제한다.그렇다면, 3이라는 숫자의 상징은 과연 무엇일까? 중국을 포함한 극동문화권에서는 3이라는 숫자는 복삼 자(字)로 길(吉)함을 의미한다. 이와는 달리 서구 문화권에서는 3이라는 숫자는 예로부터 신적인 것, 특히 성스러운 숫자로 인식되고 있으며, 많은 문화권에서는 삶의 사이클에 있어서 다음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륭은 에서 생명의 재생을 위한 바르도에로의 여행을 희구하며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바르도로 가자, 아으 바르도로 가자. 망자들의 마흔아흐레의 객숙소, 그래서 운명들이 산지사방으로, 팔만유정으로 헤어져가며, 흔드는 손들을 보자. 하직하는 손들 위에 떨어지는 눈물을, 그 눈물 위에로 번지는 어두움을, 그 어두움을 통해 어머니들의 사타구니가 환하게 열리는 것을, 그 모두를 보기 위해, 바르도로 가자, 아으 바르도로 가자.”‘바르도(Bardo)’는 티벳에서 죽음과 환생 사이의 중간 상태를 이르
[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은 촛불중과의 살벌한 육교를 경험한 후, 생명이 ‘말’과 혼동되고, 그 ’말‘은 혀에 의해 획득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야, 그에게 ‘암컷은 생명이 아니라, 수컷의 의지를 수용하고, 그 의지의 발효를 돕는 하나의 요니 전체에 머무르는 듯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동시에 그는 ‘수컷은 그래서 자기 몸을 저 그릇에 바쳐 피 뿌린 뒤, 그 속에서 유아로 환신한다’는 진리를 터득했다.유리에서의 10일 째 되는 날 해시 초에 그는 마른 늪에서의 고기 낚기에 관한 탐구의 끝에 도달했다. 그것은 고기는, 양극을
[데일리스포츠한국] 유리에 들어온 지 5일째가 되는 어느 날 을야쯤이었다. 흙모래를 파삭파삭 디디며 그녀가 그를 다시 찾아왔다. 그는 그녀가 분명히 촛불중네로부터서 오는 길이란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칼에,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얼굴을 하고 울음을 참고 있는 듯해 보였는데, 그녀의 태도는 그가 애써 억눌러 두었던 기억을 상기시켰다.그가 어렸을 때 엄니는 자주 밖에서 외출했다 돌아왔다. 그 때 그는 엄니가 밉고 원망스러워 등을 휙 돌려 돌아눕곤 했다.그러면 엄니는 소리 없이 흐느끼곤 했는데, 그 때 그의 엄니
[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은 보살이 법륜을 굴리고 다니듯이, 신기루의 샘 속에서 물 길어다 고기를 낚시질 하는 꿈을 꾸다가 다시 촛불중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주인공이 촛불중을 다시 찾았을 때 촛불중은 물론 전날과 다름없이 내방객을 맞았는데, 그는 배를 맞붙였던 예의 수도녀를 미숫가루와 계란을 쥐어주고 방금 밖으로 내보낸 후였다. 그날따라 촛불중은 장옷을 입으려하지도 않고 염주를 번잡하게 굴려대고 있었다.그는 촛불중이 말을 잇는 동안 그가 보내는 응시의 시선을 견디기가 힘겨워 물끄러미 촛불의 심지를 바라다보았다. 그는 촛불에 투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륭은 태고 적부터 존재했던 원초적인 생명의 리비도(Libbido) 에너지를 상징하는 마근(魔根) 또는 남근(Phallus)을 우로보로스(Ouroborus)의 형상으로 설정했다.이 마근이 바로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불모의 땅이자, 죽음이 예고된 황폐한 장소인 유리라는 공간에 새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 마른 늪에서의 ‘고기 낚기’인 것이다. 주인공은 유리 자체가 하나의 해골이라고 생각한다. “해골, 두 개의 해골, 임신할 수 없는 자궁, 거추장스러운 유산” 말이다.유리의 마른 늪에서의 낚시질은 자신이 뿌린 죄업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륭은 그의 책 에서 유리라는 공간을 다음과 같이 설정했다.미친 년 오줌 누듯 여덟 달간이나 비가 내리지만 겨울 또한 혹독한 법 없는 서녘 비골로도 찾아가지만, 별로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 법 없는데다,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녘 말이다.이 ‘유리’라는 신화적 공간은 8개월 간 억수같은 비가 퍼붓는 비교적 우기가 긴 곳으로, 내겐 오아시스 하나 없는 버석버석한 사막과 같은 황량한 풍경을 연상시킨다.영혼의 목마름
[데일리스포츠한국] 나는 박상륭에게 유리의 마른 늪은 도대체 어떤 장소이며, 어떤 공간의 의미인가 상상해 본다. 나에게 주인공의 ‘변절환속’과 ‘살불살조’의 완성을 위한 구도적인 살인이 행해진 ‘유리’라는 공간은 왠지 같은 음을 가졌으나 의미가 다른 두 개의 단어를 연상시킨다.그 하나는 원래 박상륭 스스로가 이름을 붙인 남녘에 위치한 구도의 장소로서의 ‘유리((구도를) 인도하는 / 권하는 마을)’이고, 다른 하나는 카오스의 질서로 유지되는 공간으로서의‘유리(다른 곳과 떨어진 장소)’이다.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게 후자의 의미인 유리
[데일리스포츠한국] 그는 살불살조하고서도 그의 주검과 탈육(脫肉)의 경계를 완전히 뛰어넘지는 못했다. 그는 은유적 살인을 통해 정신의 와해적 무질서를 경험한다.그것도 모자라, 그는 가끔씩 육적인 그리움으로 연모했던 하나의 곱고 풍염한 수도녀와 촛불중의 육교 중인 광경을 정면으로 목도하게 된 것이다.육교를 위해 촛불중과 배를 맞붙이던 수도녀는 쾡한 눈과 헛 웃음에 돌 된 얼굴로 천장이나 올려다보고 있었다.그때 그녀의 시선이 하도 공허해 주인공에게 촛불중의 뼈가 발겨져, 그녀의 눈으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그는 속으로 “허참,
[데일리스포츠한국] 나는 박상륭이 코스모스 내의 질서 정연한 인연이며 업보란 것을 두 개의 대조 축으로 설명하고자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하나는 선악의 어떤 업보가 끊긴 자리며, 다른 하나는 일종의 와해이다.주인공은 본인이 스승을 살해한 것을 제 눈으로 확인했다. 그는 짖으며, 종내, 저 늙은 공(空)으로부터 한 없이 도망치다가 멈춰 섰다. 그는 제 손으로 스승을 압살(壓殺)한 후 죄의식의 원초적인 바다로 상징되는 혼돈(Chaos) 속 우주(Cosmos)를 유영한다.그는 스승을 죽임으로써 ‘변절 환속‘을 단행했는데, 그 후 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