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유리, 추방된 자의 안식처

[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유리, 추방된 자의 안식처

  • 기자명 데일리스포츠한국
  • 입력 2019.08.28 09:18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은 항아리를 끼고 샘으로 가던 길에 갑작스런 자신의 변모를 뒤늦게 깨달았다. 그에게도 이제 피 묻었던 스승의 유산인 장옷 한 벌이 걸쳐졌는데, 이것은 그가 이제 유리의 촌민으로 어엿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하나의 표지였다.

그가 장옷을 걸치고, 얼굴을 가리고 눈만 내놓고 나니, 자기 은폐 본능이 어쩐지 누구에게나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보았자 ‘백해무익한 체면’과도 같은 것이었지만, 동시에 장옷이 주는 은폐의 편안함도 느끼게 했다.

은폐된 자의 편안함은 주인공에게 에덴으로부터 추방된 최초의 남자, 아담을 떠오르게 했다. 그는 이 세상 만물 중에서 “어째서 서서 걷는 것만은, 그렇게도 은폐시킬 것을 많이 갖게 된 것인가?”하는 의문을 품었다.

최초의 남자와 최초의 여인이 살았던 에덴동산에는 두 그루의 생명의 나무와 지혜의 나무가 있었다. 그녀의 유혹으로 인해 그는 지혜를 나무에 열린 과실을 탐했고, 그로인해 무지로부터 눈을 뜨게 되었다. 그들은 나뭇잎으로만 하복부를 가리며 수치심을 감추었지만, 금기를 어긴 행위를 통해 에덴동산으로부터 영원히 추방되었다. 그들은 금기를 어김으로써 하나의 신만이 갖고 있던 지혜를 얻었는데, 이 지혜로 인해 인간은 ‘말씀의 인현(人現)’인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피 흘려 그들을 대속해 구원해야만 하는 영원한 죽음을 초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유리라는 고장은 어떠한 곳인가?

박상륭은 <죽음의 한 연구(하) 9쪽>에 장로의 입을 빌어 유리라는 곳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건 그런 고장이 아니오? 어느 도문, 또는 어느 종단으로부터 축출 파문을 당했거나, 스스로 파계 환속한, 그런 남자 그런 여자들이, 그럼으로 해서 더 해진 번뇌로 하여 고행을 왔거나, 모든 세인의 눈을 피해 와서 살며, 결혼해 아이를 낳다 보니 이뤄진, 그런 고장이 아니냔 말이외다.

(중략)

타 종단의 승려들은, 은둔처를 찾아 깊은 산속 같은 데로 찾아들었던 모양이었지요”

유리는 자의든 타의든 변절환속한 자이거나, 속한 종단으로부터 추방된 자가 은신처를 찾는 그런 곳이다. 그들은 ‘마음을 갉는 번뇌’를 떨치지 못하고, 고행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려고 유리에 모여들었던 것이다. (계속)

※ 여기 연재되는 글은 필자 개인의 체험과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종교와 종교인 등과 논쟁이나 본지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FUTURA ENERGIA 심리영성상담소 seelenscan@gmail.com

저작권자 © 데일리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