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엄니의 자궁

[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엄니의 자궁

  • 기자명 데일리스포츠한국
  • 입력 2019.08.1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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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을 갖는 타원형의 바르도(Bardo)

[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은 촛불중과의 살벌한 육교를 경험한 후, 생명이 ‘말’과 혼동되고, 그 ’말‘은 혀에 의해 획득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야, 그에게 ‘암컷은 생명이 아니라, 수컷의 의지를 수용하고, 그 의지의 발효를 돕는 하나의 요니 전체에 머무르는 듯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동시에 그는 ‘수컷은 그래서 자기 몸을 저 그릇에 바쳐 피 뿌린 뒤, 그 속에서 유아로 환신한다’는 진리를 터득했다.

유리에서의 10일 째 되는 날 해시 초에 그는 마른 늪에서의 고기 낚기에 관한 탐구의 끝에 도달했다. 그것은 고기는, 양극을 갖는 타원형으로 지어졌고, 자신이 어부로서는 실패해 가고 있다는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그는 ‘형태라는 것이, 어디 토기장에서 구워지는 옹기그릇들처럼, 이 세상의 어디엔가 병렬해 있는데, 생명의 바람처럼 떠돌다, 그 무(無)를 당해 이(利)로서 나타나는 것이나 하는 의심’을 품게 되었다.

결국, 그는 엄니의 자궁이야 말로 죽음과 삶을 잉태하는 하나의 타원형 그릇이라는 인식에 도달했다. 그는 화두로 “어떻게 저 빈 그릇과 흐르는 생명은 화합할 수 있는가?”를 집념하게 되었는데, 그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시 엄니의 뱃속으로 들어가 보는 수밖에 없으리라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보이지 않는 남근을 싸아안고 있는 요니’인 엄니의 자궁은 주인공의 정신적인 미성숙 상태를 키우는 일종의 인큐베이터(incubator: 배양기, 보육기)와 같은 장치로, 그것은 칼 융이 말했던 ‘우나 살루스(Una Salus: 대자유에 이르는 길)’를 향한 지름길이다.

티벳 불교에서는 죽음과 환생 사이의 중간 상태를 ‘바르도(Bardo)’라고 부른다. 이 단어는 둘(do)과 사이(bar)의 합성어다. 사람이 죽은 후에 환생하기까지 머물게 되는 중간 상태를 뜻한다.

파드마삼바바가 쓰고, 에반스 웰츠가 편집한 <티벳 사자의 서>에 의하면, 사자는 49일간 ‘죽음의 순간에 일어나는 정신적인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데, 죽음의 실제 과정이 일어나는 동안에 깊은 통찰력과 깨달음으로 대자유를 얻을 수 있고, 이 상태에 도달하게 되면 망자 스스로가 자신의 영혼을 우주의 근원으로 인도할 수 있다. (계속)

※ 여기 연재되는 글은 필자 개인의 체험과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종교와 종교인 등과 논쟁이나 본지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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