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신화적 구원의 공간 ‘유리'

[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신화적 구원의 공간 ‘유리'

  • 기자명 데일리스포츠한국
  • 입력 2019.08.05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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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륭은 그의 책 <죽음의 한 연구>에서 유리라는 공간을 다음과 같이 설정했다.

미친 년 오줌 누듯 여덟 달간이나 비가 내리지만 겨울 또한 혹독한 법 없는 서녘 비골로도 찾아가지만, 별로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 법 없는데다,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녘 말이다.

이 ‘유리’라는 신화적 공간은 8개월 간 억수같은 비가 퍼붓는 비교적 우기가 긴 곳으로, 내겐 오아시스 하나 없는 버석버석한 사막과 같은 황량한 풍경을 연상시킨다.

영혼의 목마름이 지속되는 그 곳의 사회와 문화는 인간과 신(神), 자연이 삼위일체로 육화된 샤머니즘적인 신화 속 공간이다. 신화라는 총체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유리는 해독이 불가능한 암호뭉치로 구성된 우주 속 블랙홀과도 같다.

이승과 저승, 자연과 인간, 영혼과 사물이 뭉뚱그려져 부유하는 공간인 것이다.

유리는 몹쓸 죄를 지은 자가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하나의 이상스러운 유혹’에 이끌려 숨어들어 은신처를 구하는 공간이다.

그 곳은 인간이나 사물, 신들이 서로 칡덩굴처럼 얼기설기 엉켜 있어 동일한 질서에 의해 유지된다. 유리에 거주하는 동안 사람들은 눈빛의 장옷을 얼굴까지 덮어쓰고 살아야 하기에 외적인 동일성을 요구받는 곳이다.

마치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 여성들이 눈만 제외하고 온 몸에 둘러쓰는 부르카(Burka) 마냥 말이다.

유리의 물도 없는 마른 늪에서 고기를 낚으려는 어부가 있다면, 그는 진흙 속에 파묻혀 잊혀진 한 연(蓮) 같은 자아를 찾아내어 자기치유를 위해 날 것인 채로의 털도 벗지 않은 자아(自我)를 고통의 도가니 속에 밀어 넣고 담금질로 연마해야 할 것이다.

헌데, 유리에서 그가 압살한 아비 중이었던 스승은 스스로 공(空)으로 돌아가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색(色)으로 돌아가기를 바란 것이다. 그는 죽으며 흙을 토해냈다.

주인공은 생각했다. 스승은 다시 흙 속으로 돌아올 터이지만, 그는 흙 안에 안겼을 때라야, 흙으로부터 떠나게 되리라고. (계속)

※ 여기 연재되는 글은 필자 개인의 체험과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종교와 종교인 등과 논쟁이나 본지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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