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유리라는 곳의 의미

[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유리라는 곳의 의미

  • 기자명 데일리스포츠한국
  • 입력 2019.08.02 10:01
  • 수정 2019.08.0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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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나는 박상륭에게 유리의 마른 늪은 도대체 어떤 장소이며, 어떤 공간의 의미인가 상상해 본다. 나에게 주인공의 ‘변절환속’과 ‘살불살조’의 완성을 위한 구도적인 살인이 행해진 ‘유리’라는 공간은 왠지 같은 음을 가졌으나 의미가 다른 두 개의 단어를 연상시킨다.

그 하나는 원래 박상륭 스스로가 이름을 붙인 남녘에 위치한 구도의 장소로서의 ‘유리((구도를) 인도하는 / 권하는 마을)’이고, 다른 하나는 카오스의 질서로 유지되는 공간으로서의

‘유리(다른 곳과 떨어진 장소)’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게 후자의 의미인 유리가 현실에서 소외되었거나 죄를 짓고 유배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고, 죄인 스스로가 자기에게 부과한 형벌인 시지푸스의 돌을 등에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공간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더욱 짙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박상륭이 <죽음의 한 연구>에서 지정한 구도의 장소로서의 유리는 “일종의 형벌”의 장소로서의 공간이다. 그 곳은 “가슴에 불을 지피고는, 누구라도 사십일을 살기가 용이치” 않은 곳이다. 그 곳에는 마른 늪이 하나 있는데, “촌장을 낚아내는 낚시터”다. “마른 늪에서의 고기낚기는, 분명히 공양미 삼백석에 해당하는 도닦기의 의미”다.

그렇다면, 공양미 삼백석은 누가, 누구를 위해 바쳤던 제물인가? 효녀 심청이 아비인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제 몸을 인당수에 던지고 받은 대가다. 이기적인 아비에 의해 강요된 심청의 희생과 그녀의 죽음의 대가로 얻은 것이 공양미 삼백석인 것이다.

따라서 마른 늪에서 고기를 낚으려는 어부는 천고의 죄를 짓고, 그 죄를 심판하는 자에 의해 강요된 대속(代贖)을 위한 도(道) 닦기이자, 해고의 도닦기 이다.

‘해고’의 순서를 뒤집으면, ‘고해(告解: penance)’가 된다. 고해성사는 가톨릭 신자가 알게 모르게 범한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의 대리자인 사제에게 고백한 후, 성찰·통회·고백·보속의 절차를 통해 죄를 용서를 받는 과정이다.

결국, 마른 늪에서의 낚시질은 낚시하는 어부 혼자만의 구원이 아니라 인류의 원죄를 대속하기 위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며 죽어간 것과 유사한 “공동체를 위한 구원”인 것이다. (계속)

※ 여기 연재되는 글은 필자 개인의 체험과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종교와 종교인 등과 논쟁이나 본지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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