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한 번도 그 꽃을 직접 본 적이 없어 궁금합니다. 용담이라는 꽃에게로 붙여진 꽃말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절묘 합니다. 한국의 소리, 한국의 춤과 예술. 그것들의 혼과 백을 어르는 말로도 적절한 표현 같아 보입니다.아침 일찍부터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그도 역시 예와 한의 길을 걷고 있는 박세연이라는 친구의 간청 때문이었습니다. 박세연은 북과 장고와 소리의 고장인 광주에서 사단법인 “청강 악극단”을 이끌고 있는 아담한 몸피를 지닌 거센 목소리의 명창입니다. 그들, 청강 악극단이 연례행사이기도
가을이다. 가을이어서 시를 읽는다. 시를 읽어야 가을이고, 가을이므로 시를 읽기로 한다. 시를 읽어서 가을이 되리라. 최소한 시인들에겐 가을이, 가을이 오는 일이 그리 되어야 하리라. 가을과 시여. 가을만이라도 그래야 하고 이 가을만이라도 어쩌면 그래 주어야 하리라.지난여름은 우리에게 아무 일도 주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차라리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에겐 단 한 줌의 아름다움도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거기 단 한 편의 시도 쓰여지지 아니하고 말았습니다. 세간의 지붕들마다에는 창날 같은 서릿발이 올라서 염천의 볕에도
목포라는 말/ 목포라는 말// 그 나무나루 말과 순정이라는 말과/ 그 나무나루라는 말과 눈물이라는 말과/ 그 나무나루라는 말과 어스름이라는 말과// 목포라는 말/ 나무나루라는 그 이름과, 세상에 와 존재하는/ 그립고 서럽고 누추한 것들의 호명과/ 그것들을 가리키는 이름을 살짝 한번 바꾸어/ 불러보고 싶어지는// 그 나무나루라는 단어 곁에 가을날이라고/ 그 나무나루라는 단어 곁에 조막손이라고/ 그 나무나루라는 단어 곁에 민들레라고// 목포라는 말/ 왠지 그렇게 나무나루라는 모국어의 글썽임 곁에/ 그것들의 내면, 그것들의 깊은 혼백의
이것은 부사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사과의 품명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며, 물론 나주목사 함경부사와 같은 벼슬아치의 권위를 수식하는 용어에 대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잠시 잠깐이나마 문장의 품사에서의 부사(副詞)어를 환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더 멀게는 돕는다는, 조력한다는 풍성하거나 여유를 갖게 한다는 의미들의 순간에게로 눈길을 돌려 보기로 한다. 사물에는 제각각의 이름들이 있다. 그것들은 불려지기 위해 있기도 하고 존재하기 위하여 혹은 존재만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를 명사라고 칭한다. 명사를 대신하는, 그와 그대와 너라
“저무는 하루가 붉은 얼굴로 내려다보며 있고는 하였다. 한번 생각났던 일들은 잊혀 질 때까지 잊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번번이 늦게 도착하고는 하였다. 그럴 줄 몰랐다고 하는 말을 들어야 할 때가 제일 슬펐다.지상의 것이 아닌 표정들로 장미꽃들은 피어났다.장미꽃이 생각났던 시간이 지나가지 않고 있었으므로 살얼음이 낀 강을 건너야 너에게로 닿을 수 있는 길이 남아 있었다.여기는, 장미에 관한 영화(榮華)를 찍고 간 자리라고 하였다. 내 시에서는 가급적 한 송이의 장미도 남아 있지 않았으면 싶었다”위에 새겨진 인용문구는 필자의 최근 시집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건 기자] 금주의 출판계 소식 중 '화제의 책'으로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쯤인가를 묻는 시인이자 방송작가 김경미의 소소소한 일상이야기를 담은 책, 지 작은 풀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노래한 정윤천 시인의 시집을 선정했다. △ 너무 마음 바깥에 있었습니다(김경미, 혜다, 272쪽)시인은 태생적으로 인간임을 슬퍼하는 존재라고 했던가. 저자는 “고통은 달래지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라 말한다. 시인이자 방송작가인 저자가 소소한 일상에서 담담히 건져 올린 작은 이야기들을 모은 에세이집이다.저자는
발해에서 온 비보 같았다/ 내가 아는 발해는 두 나라의 해안을 기억에 간직하고/ 있었던 미쁘장한 한 여자였다/ 마을에서는 유일하게 자전거를 다루어 들을 달리던/ 선친의 어부인이기도 하였다/ 학교 가는 길에 들렀다던 일본 상점의 이름들을/ 사관처럼 늦게까지 외고 있었다/ 친목계의 회계를 도맡곤 하였으나/ 사 공주와 육 왕자를 한 몸으로 치러 냈으나/ 재위 기간 태평성대라곤 비치지 않았던/ 비련의 왕비이기도 하였다막내 여동생을 태우고 발해로 가는 저녁은/ 사방이 아직 어두워 있었다/ 산협들을 연거푸 벗어나자/ 곤궁했던 시절의 헐한 수라
“바이칼 호수에서 한 사나이를 만났다/ 2002년 민족 시원을 찾아가는 녹색영성 순례의 길, 몽골에서 봉고차를 타고 맨 처음 러시아 국경 수비대를 열었다 저무는 바이칼에서 기타를 맨 70대 중반의 노신사를 만났는데, 자작나무 껍질 같은 머리카락을 긴 손가락으로 빗어 넘기며 샹송을 불렀다 처음엔 길거리 가수려니 외면하다 러시아 민요 백학을 듣는 순간 찌르르 바이칼 호수의 물고기 오물을 다 토할 뻔했다// 집 나온지 35년 넘었다는 프랑스 국적의 떠돌이 가수, 알흔 섬의 물빛 같은 눈빛으로 당당하게 내 노래 더 듣고 싶으면 1달러씩 내
비가 오는 날이었다. 모처럼 서점엘 갔다. 김훈의 근간 한 권을 손에 들고 그 도시를 빠져나와 시골로 돌아왔다. 서점에 간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김훈의 수상집과 함께 오게 되었다. 그새 피사의 사탑들처럼 늘어난 시멘트 기둥(고층 아파트)들이 자꾸만 하늘을 가려 보이고 있었다. 흐리고 탁한 하늘이었다. 인구는 줄어 가는데 늘어만 가는 집들이 궁금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도로를 내고 집을 늘려가는 지금의 방식들이 궁금했다. 누가 저 집에 들어서 살고 누가 저 새로 난 길을 따라 달리려는지, 이 땅 위에서의 앞으로의 일들이 빗물에 섞여
그가 나의 손을 놓고 가버렸을 때 저녁이 왔고 걸어서 길에 도착할 시각에 초승달이 졌다/ 어둠이 내리고 고요가 쌓여가는 동안 능선 아래의 칠흑과 능선 위의 푸르스름함을 보았다/ 오래 서서 ‘저 능선 굴곡 따라 난 걸어왔어’라고 외쳐본들 역시 혼자다/ 밤새 안개는 뒤척이고 숲은 축축하고 나무는 잎을 키우며 허리가 휘었지만 별들은 제 길을 무사히 지나갔다/ 만날 수 없거나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미련과 호기심과 서운함을 달랠 사이도 없이 새벽이 왔다/ 아침 동산을 보면 태양보다 숨은 초승달이 먼저 눈에 그려진다.박노식의 시(초승달)
며칠 전에 경남 창녕에 자리한 우포에 다녀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포 늪지에 다녀왔다. 한반도가 생성된 시점으로부터 역사상 처음으로, 사실은 내 개인사 초유의 일정으로, 생년 60년 만에 마침내 우포에 갔다. 우포에 간 사실을 밝히는 자리가 혹시 너무 거창하게 들리지는 않는지.사실은 헌정사 초유의 일로 법계의 수장이라던 자가 수갑을 차고 옥방에 들어간 사실이 대대적으로 매스컴에 오르내렸던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법질서의 영역뿐만이 아니라 언어의 질서에도 심각하게 형평을 잃고 지내는 언론의 문장놀이가 여전히 창궐하며 있었다. 글을
대한민국 호는 지금 거대한 시비의 격랑에 휩쓸려 선체고 갑판이고 선원들이고 할 것 없이 모함의 전체가 균형과 분별을 잃은 듯 허둥지둥하는 모습이다.와, 제1 야당의 해체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의사가 순식간에 백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어떤 식으로든 소위 민심의 실체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한 듯 보인다.“텔레비를 보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여기까지 안 와 부렀오. 농사 좀 짓고 삽시다” 보성 농민이라던 양 아무개 씨의 국회 농성장(?)앞의 기자회견(?)은 일대 가관의 장면을 연출하여 주기까지 하였다. 기회만 되면 ‘주인’으로
생강나무 꽃잎들은 가벼워서 철사 같이 가는 잔가지들도 위로 향해서만 있었다 봄 꽃잎들 속으로는 무거운 것들이 없어 보였다 아이들도 그랬으면 싶었다 해당화 가지 아래 일찌감치 진 모감지들은 삭풍에게서 건네온 것들이었다 해남인들 가까운 곳으로 진도, 봄이었다 푸르게 멍이 들었고 서로는 그리운 호명이었다 그곳에서 나아가야 할 것들은 진도, 봄의 꽃가지들뿐이었으나 거기로 흘러든 것들만으로도 진도는 까마득하였다 그림과 바람 죽음과 노래 북춤과 붉은 술이 꿰어져 한 몸이었다가지 않는, 가지 못한, 가기 싫은, 가서는 아니 되는, 갈 수 밖에
아리랑이 무슨 말인지 아시는지. 사무치게 그리운 님이라는 뜻이라 한다. 하루에 세 번 쯤자신들의 ‘생’을 향하여,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외쳐주는 것도 좋을 듯하다.몇 해 전 비 문학인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여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밥 딜런의 노래는 다만 노래와 악기의 음률만이 아니라 노랫말의 골계들 속에서 피어나는 삶의 의미심장의 순간들이 깊은 표정으로 다가들곤 하였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정태춘의 유장하고도 서러운 노랫말, 김광석의 심금을 울려주던 바람의 가사들은, 그들을 한편으로 ‘음유시인’으로 기억하기에 충분
“시인들의 시에게로 음률(音律)을 입혀/ 시로 만든 노래를 시냇물처럼 흘려주었던 음악회에 간 적이 있다/ 맨 나중의 차례에야 무대에 오른 시인에게로/ 맨 처음 어떻게 시인이 될 생각을 하셨나요?/ 목소리가 예쁜 진행자가 가만히 물어 주었다/ 순진한 건지 미련한 건지/ 시인은 한참이나 까마득하게 들려주었는데/ 어릴 적에 학교에서 치른 나뭇잎 이름 맞추기 대회에 나가/ 일등을 한 적이 있었으며/ 어쩌고 저쩌고 이어지던 시인의 대답이 흘러 갔는데/ 그랬구나/ 허공의 나뭇잎 한 장이 그때 그 어린 영혼의 헤아림 속으로 다녀갔던 순간에/ 어
“아무나 글을 쓰고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주워온 지식들로 길고 긴 논리를 편다 천직의 고행을 거치지 않고도 많은 목소리들이, 무거운 말들이 도처에 가득하고, 숱하고 낯선 이름들이 글과 사색의 평등을 외치며 진열된다.정성스러운 종이 위에 말없는 장인이 깍은 고결한 활자들이 조심스럽게 찍히던 시대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떠나 왔는가? 노랗게 바랜 어떤 책장의 첫 장을 넘기고 라고 써놓은 것을 읽
“옛날 다방만 눈곱 낀 푸쉬킨과 함께 일없이 늙어 가고 있었다/ 철 늦은 여숙 안에는 인적이 끊겼고/ 방문들도 나처럼 손 등에 때를 끓이며 앉아 있었다/ 오밤중이 깊어도 잠 기미가 엷어서/ 곁눈질로 지나고 왔던 늙은 다방을 떠올려 보았는데/ 밤늦은 다방 안에선 동백꽃이 붉게 피는 레코드판이 돌고 있었다/ 자청해서 영미라던 영미는/ 소태물 같은 쓴 물 한 잔을 직업삼아 따라 놓고/ 영국도 미국도 아닌 남창다방으로 돌아가고/ 나는 배 깔고 엎어져서 옛날 시집 한 페이지 속으로 눈을 얹어 보았다/ 그새 티브이 문학관 닮은 한 장면은 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