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천 칼럼> 세월호는 출항도 하지 않은 우리들의 연착선

<정윤천 칼럼> 세월호는 출항도 하지 않은 우리들의 연착선

  • 기자명 정윤천
  • 입력 2019.04.18 18:52
  • 수정 2019.04.2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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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나무 꽃잎들은 가벼워서 철사 같이 가는 잔가지들도 위로 향해서만 있었다 봄 꽃잎들 속으로는 무거운 것들이 없어 보였다 아이들도 그랬으면 싶었다 해당화 가지 아래 일찌감치 진 모감지들은 삭풍에게서 건네온 것들이었다 해남인들 가까운 곳으로 진도, 봄이었다 푸르게 멍이 들었고 서로는 그리운 호명이었다 그곳에서 나아가야 할 것들은 진도, 봄의 꽃가지들뿐이었으나 거기로 흘러든 것들만으로도 진도는 까마득하였다 그림과 바람 죽음과 노래 북춤과 붉은 술이 꿰어져 한 몸이었다

가지 않는, 가지 못한, 가기 싫은, 가서는 아니 되는, 갈 수 밖에 없는, 보내버린, 진도로 보내고 진도로 내치거라

도착한 만신창이들 마다 위에서는 진도, 봄이었다

떠올리는 게 아니라 떠오르는 일들도 있었다 오래 전에 여기로 흘러든 산 사람의 소문 하나도 떠올라서 멀리 왔다 아이들은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원(怨)없이 머무르다 간 사실만 있었으니 곽씨* 여자를 썼으니 진도, 봄이었다 허문(許門)**의 화업이 깨알처럼 반추되는 겨울들이 흘러갔고 지초빛 노을이 왔다가 스러졌다 그림들이 글씨로 태어나고 글씨들이 그림들에 배어들어 죽어 나갔다 그리고 그 뒤가 진도, 봄이었다 곽씨 여자의 혼백 심줄 하나도 진도 땅 위의 봄이 되었다

숨 없는 육신을 낟가리에 뉘어 놓고 너나들이 노래를 대면 오가는 일들이 한갓 봄 꽃잎에 맞아 떨어졌다 북이 웃고 장단은 멀리 갔다 아이들도 멀리 갔다 먼 산중 위에서 날것의 정령들을 향하여 인간의 고기를 던지던 외지고 독한 마침의 말미로도 진도, 봄의 구역이 일고 갔다 너는 나고 너는 지며 진도, 봄이었다 보배로 오셨다가 보배로 흩어지는 그 사이가 진도, 봄이었다 진도, 봄으론 듯 맞춤하였다.

<졸시> 진도, 봄이었다 전문

* 진도 출신의 소설가 곽의진. 소치 허련의 일대기 “꿈이로다 화연일세”를 문화일보에 2년간 연재하여 장편 대작을 완성하고 진도에서 죽었다.

**허씨 문중. 남종화의 태두인 소치의 화맥은, 그 자신 허련에게서 비롯하여 허유, 허형, 허건, 허문에 이르기까지 5대에 이른다.

그래, 또 세월 호다. 어쩔래. 살도 발라 먹고 뼈도 우려 먹으련다. 어쩔래. 아이들이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찬 물 속에서 떨고 있는데, 왜 그러고 있어야 하는지도 알려주지 못하고 있는데 어쩔래. 너에게론, 너 같은 화상들에게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는데 어쩔래. 그 공포와 죽임의 계절을 실컷 어찌할래. 은폐와 조작의 시간들을 정지와 불통의 암흑들을 이 대명천지간의 뇌성벽력을 네가 다 어찌할래. 어찌 다 말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며, 어찌 눈물로 씻어내릴 수 있을 것이어서, 어쩔래 어쩔래.

그러려니 지금부터 시작이다. 세월호로 밥을 짓고 세월호로 국을 끓이며, 아이들이 올 때까지 살아서 다시 나타날 때까지 세월 호는 아직 출항도 하지 않은 우리들의, 우리들끼리의 연착선이다. 눈물선이다. 그러니 듣기 싫으면 귀를 닫아라. 눈도 감아라. 내가 쓴 시 한 줄도 너희들은 죽어 없어질 때까지 읽지 말거라. 자격이 없으니 쳐다보지 말거라.

아, 그리하여 오늘 필자는 그들과 맞짱이라도 떠보려는 이런 지긋지긋하고 불쾌한 시들의 경치와 풍경과 기억들만으로 '시로 읽는 세상'의 지면을 채워보기로 마음먹는다, 모처럼 배짱이 편해지기도 하는데, 그래, 어쩔래.

감자를 알아 두거라/ 겨우내 싹을 지켜 두었다가/ 봄에 심어서 여름에 캐내었던/ 하지 감자는 같았던 것/ 감자를 잘 익혀서 찬물도 함께 곁들여 먹을 때면/ 감자 같은 세월/ 한 편으로는 폭폭하고 뜨거운 감자/ 뜨거워도 내뱉지는 말고 삼키어는 보아라/ 감자가 땅에 있을 때/ 그 땅 위에서 감자 꽃이 필 때/ 바로 그때의 감자 꽃이 피는 세상을 헤아려는 보아라/ 씻지도 묻지도 말고 그래 보아라/ 누구야 쌍금탕 받아라 할 때와 같이/ 감기약 광고보다 더 큰 소리로/ 감자 꽃이 피었네 커다랗게 멀리 외쳐 주어는 보아라/ 아놔, 감자나 먹으라며/ 수중에는 막상 감자 한 알만한 내용도 없이/ 떼 국물을 끓이며 쏠려 다니는/ 성조기 부대원들/ 떠돌이 난민들 같이는 말고/ 감자 꽃 피는 세상의 한 평 만씩이라도 꿈꾸어는 보아라/ 그다지 늦지는 않았으니/ 아놔, 감자 한 알들 만씩이라도 밑이 들어 보아라/ 공자님 맹자님 할 때와 같이/ 공손한 눈빛으로 선한 얼굴로 감자님을 알아 뵈어라/ 감자 꽃 피는 세상을/ 끌어 당겨 보아라.

<졸시> 감자꽃 피는 세상 전문

감자 꽃도 모르는 것들은 집에서 나오지도 말고 떠들지도 말고 모국어로 말하지도 말고 고향에도 가지 말고 아무에게도 아는 척을 하지도 말고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하지도 말고 면사무소에도 가지 말고 시청 앞 광장에도 출입을 삼가하고 부디 감자 꽃도 모르는 그런 이들이라면 감자 꽃 피는 세상을 머리 속에서 단 한 번도 떠올려보지 않은 못된 망아지들이라면.

보슬비는 소리도 없이, 라며 들리는 데로 나오는 데로 따라 부르면 노래까지는 된다 만약에 국회의원 같은 이들이거나 그보다 뻑적지근 출세를 한 이들을 위하여 ‘감자 밭에서 그린 필드까지/ 양탄자 위로까지/ 옆도 뒤도 보지 않고 걸어가신 이 이시여“ 따위로 업어주는 장난질로는 시는 되지 못한다 (그랬다가 보슬비 신세가 되어버린 집안의 어른도 한 분 계셨다) 소리도 없이 써지는 것들에게론 언감생심 시는 내리지 않는다

시에서는 자다가 깨었을지언정 보슬비도 소리를 낸다 닭 뼈와 빈 깡통과 소주병과 담배꽁초 등속을 한 데 쓸어 담은 (담아 버리고 싶은) 쓰레기 봉지 위에라도 닿아서 오토바이 뒤통수에서와 같은 소리를 낸다.

<졸시> 보슬비는 소리를 낸다 전문

필자는 오늘 해남에 가야 한다. 거기, 남도라는 말과 땅 끝이라는 말과 유배라는 말과 소외라는 말과 황토라는 말과 양파와 마늘과 고추 냄새로 버무려진 붉고 푸르고 하얀 해남의 저녁노을이라는 말과, 이런 따위의 나열들과는 차원이 사뭇 다른 자신의 일생을 ‘소리 나는’ 시에게로만 소리소리 외쳐 주었다가 그 소리들만 남겨 놓고 스러진, 한 시인의 이름이 담겨진 마을 가까이에 찾아가야 한다. 해남에 가면 풀잎도 돌멩이도 국밥집 사발도 제 소리들을 낸다.

그럴만한 이유도 없이 단체로 폭격을 감행하곤 하였던 죄지은 마을에 담벼락마다 뽕뽕 구멍이 났을지도 모를 거리에 얼마나 많이 힘들고 화가 났느냐고 염치없는 엉덩이 포신은 직접 끌고가서 그때 우리들은 사람이 아니라 오소리나 승냥이였던 거라고 치사 빤쓰 같은 사과는 꼭 한번 들려주고 싶었다.

<졸시> 원산 전문

* 학교에서 배운 못난 것들 중에서 ‘원산폭격’은 지금도 뼈아프게 남아 있었다.

예전에 이런 소리를 꺼내 들었다가는, 저 ‘어쩔래’들에게로 끌려가서 닭처럼 모가지가 비틀렸거나 터럭을 왕창 뽑혔겠지만, 물론 지금도 곱게 쳐다보지는 않겠지만, 어쩔래. 시에서는 소리가 나야만 하였던 것이었으니.

지금부터는 나도 지긋지긋 퍼 올려서 소리를 질러주어야만 할 형편이 되었으니, 너희들이 그렇게 만들었으니, 아래에 인용한 시편 역시 '원산'과 괘를 같이하는 내용이다. 일부러 이렇게만 골라졌었나 보다. 시의 서정은 감자 꽃 피는 마을처럼 희고 정갈해야 하는 것인데. 시절이 하, 수상하니 어쩔래.

벼룩에게도 빈대들에게도 말이나 소의 뿌리처럼 세워 놓았던 마을 앞 시멘트 기둥 속에서 지내던 형제 (자수하면!)들에게 까지도 그가 모두 저질렀습니다 키가 작았던 // 그의 길은 경부선이 제일 길었습니다// 혼자만이 아니어서 그들이라고 불러주어야 하는 키 작은 것들이 여직껏 남아있습니다 벼룩이나 빈대들도 낮짝이 있다는 말과는 영 반대로 남아 있습니다.

<졸시> 그 전문

아직도 “키가 작은” 어쩔래 들아. 너희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런 고약한 돌아봄 들이 사실은 우리들도 지긋지긋하다는 진실을 살펴보기를.

정윤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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