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천 칼럼>길, 그리고 한여름 밤의 겨울 이야기

<정윤천 칼럼>길, 그리고 한여름 밤의 겨울 이야기

  • 기자명 정윤천
  • 입력 2019.07.06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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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호수에서 한 사나이를 만났다/ 2002년 민족 시원을 찾아가는 녹색영성 순례의 길, 몽골에서 봉고차를 타고 맨 처음 러시아 국경 수비대를 열었다 저무는 바이칼에서 기타를 맨 70대 중반의 노신사를 만났는데, 자작나무 껍질 같은 머리카락을 긴 손가락으로 빗어 넘기며 샹송을 불렀다 처음엔 길거리 가수려니 외면하다 러시아 민요 백학을 듣는 순간 찌르르 바이칼 호수의 물고기 오물을 다 토할 뻔했다// 집 나온지 35년 넘었다는 프랑스 국적의 떠돌이 가수, 알흔 섬의 물빛 같은 눈빛으로 당당하게 내 노래 더 듣고 싶으면 1달러씩 내라고 했다 맥주 한 잔 건네니 노래를 다 부른 뒤에 마시겠다며 정중히 사양했다 한 곳에 1년 이상 머물지 않고 기타 하나 둘러메고 전 세계를 떠도는 노마드, 이따금 원주민 여자와 눈이 맞으면 잠시 신접살림도 차렸지만 절대 아이는 낳지 않았다고, 세상도처 언제나 떠날 준비로 도착하니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그 순간 어금니를 꽉 깨물며 난생 처음 후회했다 기타 하나 제대로 못 치는 텃새, 분단국가의 한국인 시인이 된 것을”

이원규 시인의 시집 <그대 불면의 눈꺼풀이여>중에서 <후회막급 시인> 전문

얼마 전에 인사동엘 다녀왔다. 이원규 시인의 출판회에도 참석할 겸 나선 서울 길이었다. 시에서처럼 오래된 분단국가. 육로를 통해서는 단 한 개의 국경도 열 수 없는 ‘섬나라’ 그 수도의 이름은 그제나 이제나 서울이었다. 서울은 그렇게 서울일 뿐이었다.

오토바이의 등에 올라타고 지구 둘레의 몇 바퀴를 넘게 싸돌아다닌, 방랑과 떠남의 시인 원규마저도, 자신의 “텃새”에 대고서는 “후회막급”인 서울의 한 복판에서, 그의 시집을 받아들고 하필이면 나는 인용시 속으로 눈길이 한참 머물렀는데, 로드라고 하였던가. 길은 인간의 시작이자 동경이었으며, 영혼이 들고나는 처소에 바람막이 하는 지붕 같은 존재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던 것 같았다. 무엇이, 우리들의 ‘길’을 막아 서울을 서울뿐으로 고립하여버렸던 것이었을까.

오는 길의 버스에 매달린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예의 ‘길’에 관한 역사적인 장면 하나가 생중계 되고 있었다. 서울에서도 평양에서도 까마득하게 멀리 존재하는 이방의 나라. 하지만 불가피하고도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대표이자 상징이기도 한 백발의 거구가, 백 편의 시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길’에게로의 순간 하나를 열고 있는 모습이었다. 가히 역사적인 순간이라고들 하였다. 거기 세 사람의 역사적인 남자들의 얼굴마다는 제 각각이면서도 한 가지인 표정을 세계에 전송하며 있었다. 그런데 그 얼굴들의 간격에 존재하는 짧은 거리를 잇는다면, 서울도 평양도 미국도 하나의 길 위에 피어있는 “백학”보다 전율적인 ‘백합’의 떨기들일 게 분명하였다.

혹여 우리들의 세대에서는 저 오토바이의 시인 이원규의 허리를 붙들거나 거기에 매달려서라도, 바이칼 호수 인근의 마을이거나 도시의 황혼 무렵 속으로, 우리들처럼 고만고만한 풀꽃들이 나고 지는 길을 따라서 달려가 볼 수는 있으려는지. 공중으로 가는 길들로만 말고서.

시인 이원규가 길 위에서 얻어낸 저 인용시의 구절처럼 내게도 길에서 만난 겨울 이야기 하나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가 만나고 헤어진 길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이 이야기가 또한 길 위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기왕에 이 글의 제목이 길과 그리고 한여름 밤에 들려주려던 겨울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늦가을에서 초겨울의 문턱까지 신춘문예 열병을 치르던 친구가 있었다. 발표일이 지나자 찬바람이나 입고 오자던 성화가 빗발쳤다. 해남의 땅 끝에서 노화로 가는 배편으로 보길도까지 닿자던 역적모의 같았다. 포구로 가는 길 위에서 로시란테처럼 늙은 그의 소형차는 자주 가래 뱉는 소리를 쿨럭거려 주었다.

언덕 위의 민박집에 추운 짐과 마음을 부리자 바싹 마른 해풍을 입술에 바른 저녁바다가 발밑에 와서 꼬물거렸다. 비수기의 민박집은 배가 돌아간 선창같이 썰렁하여 있었는데. 주인집 방에 마련된 밥상머리 앞으로는 기적 같은 장면이 하나 재림하여 있었다. 서울에서 왔다던 미쁘장한 여자 애 둘이서 깜찍한 표정으로 우리를, 뒤를 돌아다보았는데도 한사코 우리만을 반겨주는 게 아니었던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이렇게도 하얀 겨울밤의 속으로! 소금국 속으로 급하게 밥을 말아 마시고 후다닥 방으로 돌아온 들개 두 마리. 미구에 도착할 스토리를 재촉하여 서로는 한 편씩의 영화를 그려보게 되었다. 친구는 벌써 마을 앞의 점방 집을 향하여 로시란테의 잔등에 채찍질을 얹고 있었다. 그렇게 3호실과 8호 실의 남녀는 까마득한 시공을 비둘기처럼 까마귀처럼 날아와서, 이제는 종이컵과 오징어 다리를 소품 삼아 첫 장면의 역사 속으로 꺼져들기 시작하였다.

지면 관계상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시작부터 쟝르에 문제가 있었다. 들개들이 상상했던 청춘 물이거나 그 이상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였다. 두 주연들은, 당시에는 누구나 들어보았을 대형 공단에 나가는 ‘공 아가씨’들이었고, 칠년 동안 둘이서 적금을 부었고, 그 가을에 만기가 되었고, 그렇게 처음으로 겨울여행을 나선 인생과 여행과 들개들에 관해서라면 순진무구에 천진난만까지 겸비한 최악의(?) ‘초짜’들인 셈이었다. 칠년이라는 말이 너무 슬퍼서 들개 두 마리는 하마터면 울 뻔까지 하고 말았다. 당연히 영화의 내용들은 뭉텅이로 수정되고 말았다.

라스트 신에 대해서라면, 지금도 명장면이었노라고 들려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큰 섬으로 떠나가는 커다란 배의 갑판 위에서 아이들은 한참이나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야자수 나무의 배경이 없어서 월남에서 찍어온 사진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때 우리들의 표정은 퍽이나 진지하여 있었다. 보길도의 하얀 겨울을 빠져나오는 로시란테의 흐린 전조등 안으로도, 그새 쌀가루 마냥 가는 눈발이 자꾸만 끼얹어 들고 있었던 것 같았다.

정윤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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