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천 칼럼> 역사라는 이름의 기억력

<정윤천 칼럼> 역사라는 이름의 기억력

  • 기자명 정윤천
  • 입력 2019.02.2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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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나 글을 쓰고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주워온 지식들로 길고 긴 논리를 편다 천직의 고행을 거치지 않고도 많은 목소리들이, 무거운 말들이 도처에 가득하고, 숱하고 낯선 이름들이 글과 사색의 평등을 외치며 진열된다.

정성스러운 종이 위에 말없는 장인이 깍은 고결한 활자들이 조심스럽게 찍히던 시대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떠나 왔는가? 노랗게 바랜 어떤 책장의 첫 장을 넘기고 <장인 마리오 프라시노가 고안한 장정 도안에 의거하여 그리예와 페오의 이틀리에에서 제조한 독피지에 50부의 특별 장정 본을 따로 인쇄하였다>라고 써놓은 것을 읽을 때면 마치 깊은 지층 속에 묻혀버린 문화를 상상하는 듯하다 (중략)

겨울 숲 속의 나무들처럼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서서 이따금씩만 바람소리를 떠나보내고 그러고는 다시 고요해지는 단정한 문장들, 그 문장들이 끝나면 문득 어둠이나 무(無), 그리고 무에서 또 하나의 겨울나무 같은 문장이 가만히 일어선다. 그런 글 속에 분명하고 단정하게 찍힌 구두점.

그 뒤에 오는 적막함, 혹은 환청, 돌연한 향기, 그리고 어둠, 혹은 무, 그 속을 천천히 거닐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 산문집을 번역했다.“ (하략) 김화영

결코 짧아 보이지 않는 위의 인용문은 작가이기도 한 김화영 교수께서 지난 90년대 후반에 발간한 번역 산문집 <섬>에 실어 놓았던 서문의 일부이다.

<섬>의 원 저자는 장 그르니에.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작가 알베르 까뮈의 사유에 깊은 영향을 끼친 커다란 스승이자 철학자로 알려져 있는 장 그르니에는, 한편으로는 대학에서의 강연과 많은 저술들을 통하여 “시적 명상과 풍부한 서정”의 사유가 빛나는 특유의 언어와 문체를 통해 한 시대의 문화사 위에 자신의 지성과 이성들을 각인시켜 주었다.

지난 60년대 후반 장그르니에는 자신의 조국으로부터 문학대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섬>에 관한 논의는 불가피하게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인용문에 쓰여진 “글” 혹은 ‘문장“이라는 단어를 ’말‘이라는 글자로 바꾸어 보면 참으로 그럴 듯하게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알아차리게 해주는 예언과도 같은 역설의 묘미가 자리잡고 있었다. 흔한 일은 아닌 것 같아 긴 인용문을 옮기게 해주었던 것 같다.

“아무나 (막말)을 하고 거리에서 주워온 (말 꺼리)들로 (말)들이 길고, 길고 긴 (말)들을 편다. 천직의 고행을 거치지 않고도 많은 (말)들이, 무거운 소리들이 도처에 가득하고 숱하고 낯선 이름들이 (말)과 (말)들의 평등을 외치며 진열된다.”

단지 그 부분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그 말들의 진면목이거나 옳고 바른 말들의 제 자리의 모습들 역시 이렇게도 선명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고요해지는 단정한 (말)들 그 (말)들이 끝나면 문득 어둠이나 무, 그리고 무에서 또 하나의 겨울나무 같은 (말)이 가만히 일어선다. 그런 (말) 속에 분명하고 단정하게 찍힌 구두점. 그 뒤에 오는 적막함, 혹은 환청, 돌연한 향기, 그리고 어둠, 혹은 무, 그 속을 천천히 거닐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라고 말이다.

( ) 안에 넣은 ”말“이라는 단어들은 필자가 임의로 이 책의 서문에 쓰여 있었던 역자의 문장에서 글“이나 ”문장“이라는 단어들의 자리에 예의 ”말“이라는 단어를 부호화 시켜 보았던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은 지금 너무나도 흉칙한 말의 탁류에 휘말려 이쪽도 저쪽도, 피아간에 모두 다 허우적거리고 있지는 않는가?

말의 홍수 말의 난폭과 난동. 말들의 저급함에서 지나쳐 급기야는 황무지의 말 사막화의 말 죽음의 말 저주의 말들로만 이어져 가고 있었던, 저질러지고 있으며 불타오르고 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닌 말의 철면피들과 말의 가면들, 그것들을 스스로 뒤집어쓰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스스럼없이 뒤집어씌우는 모습들이 되어서 말들의 나락 속으로 떨어져 가고 있지 않았는지. 최소한의 분별심 마저 상실한 말의 좀비들을 자처하면서 까지 말이다.

하필이면 이제 와서 5.18의 망언이 되어. 민주주의의 근간과 체제의 부정을 외치는 “그래도 정신을 똑바로 차린 젊은 청년 최고위원 후보”하나쯤은 있어야하지 않겠느냐는 진풍경이 되어서 말의 화약고들은 폭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려니 이제라도 잠시나마 서로들의 눈을 감고 서로 서로의 입을 다물고 서로의 어깨 너머를 바라다보아야 한다는, 말들에게로 관한한 최소한의 휴지(休止)의 시간을 가져 보아야 하지는 않을런지.

“그리고는 다시 고요해지는 단정한 (말)들 그 (말)들이 끝나면 문득 어둠이나 무, 그리고 무에서 또 하나의 겨울나무 같은 (말)이 가만히 일어선다. 그런 (말) 속에 분명하고 단정하게 찍힌 구두점”과도 같은 생명과 활인과 소통의 (말)의 순간을 회복하여 보기로 하면서.

역사는 말들을 기억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뼈저리게 직시해야만 하였다. 그러려니 말은 짧고 역사는 길다는 사실, 역사의 기억력과 해석력은 지나간 말들을 반드시 제 자리에 돌려보내 주기도 하지만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정확하게 전해주었다는 진실에게로 작금의 (말)들은 유의해보야 할 일이었다.

굳이 만세운동의 100주년이 되어서가 아니더라도, 한반도가 존재하는 한 유관순의 (말)은 유관순의 (말)로만, 윤동주의 (말)에는 윤동주의 (말)에만, 이순신과 정몽주와 세종대왕의 생각과 말씀들에게로도 꼭 그만큼씩의 (말)들로만 각인되어져서 이순신과 정몽주와 세종대왕의 생애이거나 이름으로 불려왔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잠시 환기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역사라고 부르는 저 도도한 이름의 위대한 기억력 속에서는, 그렇게 민족의 일대 반역자 이완용의 (말)이 새겨져 있었을 것이었으며 5.18 수괴들의 면면들이 또한 그 이름과 함께 기록되어 내장되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가깝게는 “헌정사 초유”의 일로 떠들썩 기록되어진 우리 시대의 한 불우한 대법관 수장의 (말)과 행실들 역시 세세손손 사실 그대로 전해져 내려가게 되어 있다는 점에 대하여 말의 엄정함과 두려움에 대하여 누구라도 떠올려 보아야만 할 것 같았다. 저 역사의 기억력에게로는 누구도 비켜가지 못한다는 사실 역시 명심해야 할 것 같았다. 제대로 된 말이 제 자리에서 실천된 뒤에서라야만 누구에겐들 평천하(平天下)의 대업이 찾아오거나 이루어지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필자 역시 얼마 전에 지금에 와서까지 쌍심지를 두 눈에 켜고 길항하는 현재의 말들의 근원을 찾아나서 보다가, 한 인물이 남기고 떠난 역사의 페이지를 들추어 보게 되었다. 당시의 심정과 회오를 담아 한 편의 시를 쓰기에 까지 이르렀으니 여기에 한번 옮겨보기로 한다.

“산천초목도 초가삼간도 벼룩도 빈대들도 기찻길 옆 오막살이도 가족계획 포스터도 말이나 소의 뿌리처럼 세워 놓은 마을 앞 시멘트 기둥들 속에서 지내던 자수하면 내 형제들까지도

그가 이 세상에서 제일 높고 무섭고 힘들고 근사하고 믿음직스럽고 그러나 가끔은 소문이 좋지 않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들이 몰랐던 것이 그에겐 너무 많았고 우리들은 죽으면 모두 쉽게 사라질 존재들이지만 그는 불사(不死)였고 죽여 버렸으나 없어지지 않았고 결정적으로는 키가 작았고

그가 평생을 바쳐 내었던 길은 경부선이 가장 길었지만 지금 우리들이 가보려는 길은 블라디보스톡을 지나서 베를린 광장 앞까지 그보다 더 먼데까지도 굽어 살펴보다가 돌아오는 것 어쩌면 그는 지금도 우리들을 잘 이해해 주지 못할지 모르지만 우리들도 그때보다는 확실하게 그를 알아차려버린 자세히 보니 그는 혼자만이 아닐 수도 있어서 그들이라고 불러도 되는 하나도 그립지는 않는 그이시여. 졸시 <그> 전문.

그러니, 이 시편에 담긴 정서의 일단이 현재적의 내가 가슴에 지닌 채 살고 있었던 나의 (말)이었던 셈이다.

정윤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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