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천 칼럼> 그리운 오독(誤讀)

<정윤천 칼럼> 그리운 오독(誤讀)

  • 기자명 정윤천
  • 입력 2019.02.12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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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다방만 눈곱 낀 푸쉬킨과 함께 일없이 늙어 가고 있었다/ 철 늦은 여숙 안에는 인적이 끊겼고/ 방문들도 나처럼 손 등에 때를 끓이며 앉아 있었다/ 오밤중이 깊어도 잠 기미가 엷어서/ 곁눈질로 지나고 왔던 늙은 다방을 떠올려 보았는데/ 밤늦은 다방 안에선 동백꽃이 붉게 피는 레코드판이 돌고 있었다/ 자청해서 영미라던 영미는/ 소태물 같은 쓴 물 한 잔을 직업삼아 따라 놓고/ 영국도 미국도 아닌 남창다방으로 돌아가고/ 나는 배 깔고 엎어져서 옛날 시집 한 페이지 속으로 눈을 얹어 보았다/ 그새 티브이 문학관 닮은 한 장면은 되었는지/

새벽녘이 되어서야 남창에 온 저간을 내게 묻고 싶었는데/ 옛날 다방보다 더 많이 늙은 남창 여인숙/ 색깔 바랜 다우다 커튼 아래에는 서툰 싸인 펜이 흘려 놓은 여자 그림 하나여/ 제 생의 식겁했던 순간처럼 홀라당 벗고 서있었는데/ 짝 가슴 한 쪽이 무거워도 보였는데/ 배꼽 밑의 풀밭을 일삼아 채워 넣었을 짓궂은 손길 하나도/ 나처럼 벽에 기대어 파도 소리는/ 창문 밖까지 밀려와 주고 있었는지/ 티브이 문학관은 또 이런 장면에서 한 손에 담뱃불은 붙여 주고/ 체크무늬 남방은 구겨서 입혀 놓고 괜하게 희미하게/ 섹소폰 한 가락은 얹어주어 보려다가/ 주인공도 영미처럼 제 무릎을 일으키게 해주었겠지만/ 아무래도 이번 회의 제목으로는/ 큰 타이틀 밑에 부제를 달아주어야만 할 것 같았다/ 내 마음의 블루스 -남창 행 이라고.”

졸시 <남창* 행> 전문

*전라남도 강진군 소재

 

얼마 전에 한 잡지사의 청탁으로 건네주었던 몇 편의 시들 중에서 이야기처럼 써진 서사시 한 편을 옮겨 놓아 보았다. 작품의 무대는 남쪽 바닷가에 자리 잡은 변두리 포구 마을의 지명이었고 그 속에 임한 풍경들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내 젊은 날의 뒤란이거나 초상이었다.

어디선가 마주친 생경스러운 포구의 지명 하나를 문득 남창(男娼)으로 옮겨가 보려 하였던 언어유희에 가까운 오독의 사이로 한 편의 ‘성장 시’와도 같은 작품이 얼굴을 내보였던 셈이다.

그러나 현재의 젊은 시인들은 더 이상 이런 식의 진술이거나 소재에 기대어 시를 대하지만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우선 전하기로 한다. 세계와 자아의 일체감을 바탕으로 한 느낌이거나 체험의 메시지만으로는, 시인들이 시를 통해서 표현해내고 싶은 대상의 경계가 그만큼이나 확장되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시와 세계의 진화. 그렇게 오늘의 시들은 화자마저 스스로 유폐를 꿈꾸는 숱한 해체와 변주의 기조 속에서 시들과 시들 사이의 송전탑에서는 새로운 시의 새떼들을 날려 보내는 추세가 활발해져 가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비의 관점은 비단 시인들끼리만 이거나 시단의 눈길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필자가 쓰고 있는 이 글의 의도일 것도 같았다.

사실 한 나라의 안에서 유통되어 왔으며 유통되어져 갈 시의 언어는 한편으로 그 나라의 정서적인 태도에게로 깊게 관련되어져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시는 당대라고 불리는 ‘시대’의 반영을 담당해온 거대한 문화적 양식의 한 꼭지점으로 여겨도 무방할 것이다.

“(전략) 집이 자란 만큼 바늘도 자랐다/ 문도 창문도 자랐다 밀실처럼/ 어둠 속에서 엄마는 손가락에 몇 개의 코바늘을 더 걸고/ 그년들과 아빠 목에 딱 맞는 붉은 스웨터를 입혔다/ 붉은 방, 아빠는 사지를 뒤틀고 웃었다/ 나는 그년들과 아빠가 붙어먹는 모습을 훔쳐봤다 거기,/ 한 쌍의 베개를 비집고/ 바짝 귀를 세우고 엄마는 말했다// 너무 미워하지 마/ 아빠는 모두의 아버지란다. (후략)” <마망*/ 이소호>의 시에서. *루이스 부르주아는 프랑스 태생의 미국 추상표현주위 조각가이다. 현대 미술의 대모로서 일흔이 넘은 나이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대표작으로 거대한 거미를 형상화한 '마망'이 있다.

요즘에 나온 소위 '젊은 시' 한 편에서의 일부분이다. 작품에 관련된 필자의 소회를 덧붙이는 일은 뒤로 미룬다. 다만 국내 유수의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중의 한 편이어서가 아니라 위에서 인용한 체험과 진술에게로만 기댄 필자의 졸시와 밑에서 마주치는 그로데스크까지 한 ‘표현의 양식’에 대한 사이가 과거와 지금의 시에게서 나타난 변화의 표정이라고 한다면, 우리들 시의 현재는 꽤나 자유분방한 사유의 지점에 와 있음을 반증하고 있었다. 물론 여기까지의 시간에는 지난한 탐구와 참담한 모색의 열정들이 함께 했을 것만 같았다.

반면, 구태와 안주와 버팅김들 뿐인 각축 속에서 마치 멸망의 고도 위에 누워 잠든 “폼페이의 저녁”을 떠올리게 하는 듯한 이 나라 정치사의 양태들 속으로는, 흔한 오독의 기미마저 나타나지를 않고 있었다. 사실 생경해 보일 수도 있는 두 편의 인용시들은 누군가를 향한 의도적인 말붙이기 이었을지도 모른다.

정치도 시를 좀 배우거나 알았으면 하는 마음으로써, 한편으로는 그리워지기도 하는 오독과 변주의 시간들이며 그것들의 뒤에서 태어나는 창조의 지점들, 그리하여 우리들이 줄곧 정치라고 불러주는 이 괴물의 존재와 존치야말로 시인들이 시를 구현하려는 마음의 자세 같아보기를 바래보는 것이다.

지난 가을 그대들의 발등 위로 떨어진 한 장의 나뭇잎들이 가을 저녁이 흘리고 간 한 방울의 눈물방울이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무릇 정치의 상상력이 되었으면 한다고 전하여 보는 것이다.

정윤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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