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천 칼럼> ‘보고 싶은’ 날이면 MM에 가야한다

<정윤천 칼럼> ‘보고 싶은’ 날이면 MM에 가야한다

  • 기자명 정윤천
  • 입력 2019.09.1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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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라는 말/ 목포라는 말// 그 나무나루 말과 순정이라는 말과/ 그 나무나루라는 말과 눈물이라는 말과/ 그 나무나루라는 말과 어스름이라는 말과// 목포라는 말/ 나무나루라는 그 이름과, 세상에 와 존재하는/ 그립고 서럽고 누추한 것들의 호명과/ 그것들을 가리키는 이름을 살짝 한번 바꾸어/ 불러보고 싶어지는// 그 나무나루라는 단어 곁에 가을날이라고/ 그 나무나루라는 단어 곁에 조막손이라고/ 그 나무나루라는 단어 곁에 민들레라고// 목포라는 말/ 왠지 그렇게 나무나루라는 모국어의 글썽임 곁에/ 그것들의 내면, 그것들의 깊은 혼백의 옹이까지/ 살며시 불러내어 함께 놓아두고/ 바라보고 싶어지는// 목포라는 말/ 목포라는 말/ 목포는 나무나루라는, 그 말

졸시 <목포라는 말> 전문.

오거리 부근에 그가 서있다. 전남 유일의 독립영화관 ‘시네마라운지MM’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예술을 영화적이거나 영화로써 표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수라고는 하지만 제작자들과 관객이 존재하는 영역이다. 가깝게는 예술 영화라고도 치부되는 건 대중성으로부터 자유를 획득한 해방의 훈장(?)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세간에서는 “예술”이라는 단어를 비하이거나 소외의 개념으로 쓸 때가 왕왕 있어 보였다.

시네마 라운지MM이 목포의 저자거리 복판에 외따로이 서있는 이유부터 살펴보기로 해야겠다. 근대극의 효시인 김우진과 거장 임권택의 고향이라는 ‘끈’도 감안해야 하리라. 언제부턴가 이러한 끈으로 하여, 여기에서 불모와도 같은 인권영화제가 열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세간은 잘 알지 못한다. 변변한 상영관 하나도 지니지 못한 채 이루어진 조악한 판이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독립영화관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하나의 담론으로 뭉치는 계기는 되었다. 거기 혈기 왕성한 활동가들이 모여 들었고, 의외의 늠름한 선장이 한 사람 출현하여 뱃전의 키를 잡는다. 그가 어쩌면 오늘 필자의 원고에 무늬를 새겨줄 주인공일 것도 같았다.

아, 2018년 3월, 전라남도 내 최초의 독립 영화관인 ’시네마라운지MM’이 문을 연다. 희망을 상징하는 노란색 뺑끼 칠을 이마에 두르고서, 처음에 “MM”은 고정되어 있지 않음을 표방한다 하였는데, ‘무비(Movie)’, ‘무브먼트(Movement)’, ‘메이크(Make)’ 등의 이니셜로 해석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어차피 고정되지 않았으니 그를 마릴린 먼로로 여기거나 바라본들 또 어떠하리.

MM은 한 눈에도 MM스럽다. 입구에 붙여진 포스터나 전단지등의 위치와 배열들은 여느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서는 입구의 느낌이다. 매표소 자리를 대신 차지한 미니 카페가 피워 올리는 커피 향기는 간간히 그를 찾아 들어서는 행려의 마음들에게로 삶의 여독을 씻게 한다. 이런 분위기의 독특한 개방성과 편안함이라면, 이런 점들마저도 도내 유일무이 일 수도 있어 보였다. 노출콘크리트로 둘러진 사각의 극장 안에는 불규칙한 소파와 울긋불긋한 의자들이 관람석을 대신하고 있는 중이다. 거기 과자와 땅콩에 곁들여 맥주를 마시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라니. 단연 그대는 도내 최초이며 유일한 공간임을 자부해도 될 성 불렀다.

요즘 세간에서 유행하는 삭발식 같은 것도, 만약에 여기 와서 치를 수만 있다면, 희대의 퍼포먼스로 격상시켜 줄 수 있을 것 같은 위용(?)을 우리들의 ‘독립극장’ MM은 이미 마련하고 있어 보였다.

그렇게 정성우는 ‘시네마라운지MM’ 대표이자 거창하게는 영화감독으로 불리우는 인물이다. 수줍은 듯한 미소를 입가에 지녔는가 싶었는데 눈빛은 외려 깊고 차갑다. 그는 왜 여기 와서 쓸쓸하고 아파보이는 ‘예술’을 줍고 있는 것일까.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진학한 젊은이는 애초에 문학을 전공하며 작가를 꿈꾸었던 문청이었다. 그에게 영화와 인연을 맺게 했던 건 전적으로 그쪽 일에 매달리고 있었던 가까운 친구들 덕택이었다. 들며나며 취미를 붙이게 되었던 그는 결국 ‘다큐멘터리 제작학교’의 과정에 들어가 대망의 영화산업(?)에 입문하기에 이른다. 배움이 성에 차지 않았던 그는 결국 영화연출전공을 위해 대학에 다시 입학하는 인생의 갈림길을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에는 지금까지 별로 영화로워지지 못한 영화인이 되었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현재 목포해양대와 동신대 등에서 영화제작에 관한 강의를 하는 전문가가 되었다는 점이다.

정 대표는 그의 영화에 대하여 굵고 짧게 말하는 기술을 보여 주었다. “다양한 소재들, 누구나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들”을 꼽는다. “상업적인 논리로 인해 오히려 문화적 선택의 다양성을 제약받고 있는 지점에 독립영화가가 자리 한다”고 이른다.

독립영화인 정성우의 발언은 그것 말고도 시사적인 데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단편, 독립, 예술영화는 세계적 수준일 뿐 아니라 단편영화 시장에서도 매우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정성우 감독의 독립영화에 대한 기대는 긍정적인 바탕색을 지니고 있어 보였으나, 막상 국내의 분위기는 성장초기의 뻑뻑한 기업처럼 고되고 험하다는 안타까움을 내비치기도 하였다.

현재 그에게 닥친 MM의 암초는 그것보다 더 절실한 데 있다고 하였다. 오거리 상권의 변화로 임대료가 들썩거려 와서 극장의 이전을 고려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설명이었다. 일부의 후원금과 공적지원으로 버티는 현실 앞에서, 모처럼의 MM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들 ‘예술 동지’ 여러분들이여, 목포라는 이름보다 “나무나루”라는 지명이 더욱 어울려 보이는 그곳에, 노란 색 이마를 간직하고 있는, 당신들과 나의 MM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하여 보시라. 그리고 어느 날인가 불현 듯 “왜 사냐 건” 같은 물음이 가슴을 치는 날이거든, 잊고 있었던 하찮은 이야기들을 되돌려 보여 주는 MM. 아니, 목포의 근대문화 오거리를 향하여 잠시 떠나보시자.

정윤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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