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천 칼럼> 소리는 말이 피어나는 꽃의 순간입니다

<정윤천 칼럼> 소리는 말이 피어나는 꽃의 순간입니다

  • 기자명 정윤천
  • 입력 2019.10.2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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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한 번도 그 꽃을 직접 본 적이 없어 궁금합니다. 용담이라는 꽃에게로 붙여진 꽃말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절묘 합니다. 한국의 소리, 한국의 춤과 예술. 그것들의 혼과 백을 어르는 말로도 적절한 표현 같아 보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그도 역시 예와 한의 길을 걷고 있는 박세연이라는 친구의 간청 때문이었습니다. 박세연은 북과 장고와 소리의 고장인 광주에서 사단법인 “청강 악극단”을 이끌고 있는 아담한 몸피를 지닌 거센 목소리의 명창입니다. 그들, 청강 악극단이 연례행사이기도 한 자축 공연을 눈앞에 두었던 모양입니다. 행사를 알리는 팸프릿에 올릴 축사를 뜻밖에도 나에게 청하여 왔습니다. 일 년 농사를 갈무리 하는 예술단 공연에게로 드려야 하는 축하의 언질이 처음부터 그리 만만한 사안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한참이나 호흡을 가다듬어 봅니다. 내가 부려오던 어느 말들의 문지방 하나를 조심스럽게 건너가 보려는 중이기도 하였습니다.       
문장은 이렇게 출발 합니다. “가을이어서인지 요즈음 나는 시집을 손에 들고 시를 읽는 시간들이 길어졌습니다. 어제도 어느 시인의 아름다운 시 한편을 읽었습니다,
“(...) 챔파꽃이 피는 강변에/ 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큰 도시의 공장으로/ 다른 소년이 일하러 나가는 동안/ 소년은 늘 혼자였습니다/ 물소들이 두 개의 뿔과/ 코만을 수면 위에 띄워 놓고/ 강둑 이쪽에서 저쪽으로/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강을 건너는 물소들의 뿔마다/ 챔파꽃 한 가지씩을 걸어 주었습니다/ 챔파꽃 화관을 쓴 물소들이/ 끝없이 강을 건넜습니다/ 물소들은 이 세상의 어느 끝을 살다가도/ 이 강변을 향하여/ 어슬렁 어슬렁 걸어 왔습니다/ 물소들은 챔파꽃 화관을,/ 소년을 사랑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챔파꽃 피는 강변에/ 한 늙은 뱃사공이 살았습니다/ 강을 건너는 물소들의 뿔에/ 챔파꽃 가지를 매달아주며/ 언젠가 물소가 되어 돌아올 그 자신을 기다렸습니다”
수많은 독자들이 그의 시를 애송하는 곽재구 시인의 “인도”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강을 떠나가는 물소들의 뿔 위에 챔파꽃 가지를 걸어주는 소년의 모습이 눈에 떠오릅니다. 그런데 이 시의 말미에는 “챔파꽃 피는 강변에 한 늙은 뱃사공이 살았습니다”라는 장면이 들어 있기도 합니다. 아, 그 강가의 소년이 거기에 나중까지 남아 늙은 뱃사공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청강 악극단의 자축공연과 연례행사를 물소들의 뿔에게로 챔파꽃 가지를 걸어주는 소년의 마음으로 응시하며 응원합니다. 박세연 단장님을 비롯한 청강 악극단의 단원님들 모두가 이 세월의 낮고 후미진 곳곳마다에 챔파꽃 가지를 꺾어 수를 놓아주는 강가의 소년이 아니었겠습니까. 사랑합니다.“
그리고 내 가난한 축하의 문장은 이렇게 저렇게 괴발개발 끝을 맺기는 하였습니다.
문장을 맺고 나서도 나는 한참 동안이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정호승)는 화살 같은 시구 한 구절이 뇌리를 치고 지나갑니다. 왜 이렇게도 아름다운 것들, 아름다운 시 한 편과, 아름다운 예술 행의 뒤안길에는 슬픔의 기척이 끼쳐 있는지 차마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기쁨보다 슬픔이 나중에 태어난 운명을 지녔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세간의 많은 일들에게는 나중에 태어난 것들만이, 그 자리에 남아 “늙은 뱃사공‘이 되어 주었던 일들이 더욱 많아 보였습니다.
얼마 전, 우리들의 영원한 소설쟁이. 이외수 선생님께서 광주에 오셨습니다. 잘 삭히고 가라앉힌 아름다운 노구와 평생의 잠언들 몇 구절을 가슴에 안고, 당신은 이 슬픈 뱃사공들의 마을에 가만히 입성하였습니다. 나는 행사의 진행 팀들과 그를 동반하는 취재진의 배려로 뜻밖에도 선생님의 면전에서 오붓한 만찬을 맞이하는 호사를 누리기도 하였습니다.
지씨 성을 가진 지렁이가 일생의 스승 중 한 분이었더라는, 단상 위에서의 선생의 언질이 깊고도 평안하게 느껴졌습니다. 지렁이는 마지막까지 꿈틀거릴 뿐 아무도 공격하지 않더라는 진실. 그렇게 지렁이 씨가 슬픈 배밀이로 땅바닥을 스치며 지나가고 나면 거기 지옥의 땅에서도 ‘천국’이 건설되는 지경을 선생님은 갈파하여 주었습니다.
“스무살 시절에서 서른 살을 다 넘길 때까지, 안개시정거리에서 헤메일 때. 당신은 내 안의 허무한 공지천이었고, 개발자국 소리였고, 강물 같았고, 양말도 없는 새벽이었다. 지상보다 멀리 떨어진 허구의 지명이었고, 안개. 그리움이었다” 그가 떠나간 뒤에 남아서, 나는 낮은 목청의 “뱃사공‘의 헌사 한 구절을 꺼내들어 보았다. 이도 역시 당신께 드려보는 가난한 한 줄의 경외에 찬 인사였을 것이므로, 아, 사랑합니다. 

정윤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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