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서울의 봄’은 화창하게 열렸다. 온 국민의 기대를 모으며 독재의 긴 터널을 지나 서울의 찬란한 봄이 개막된 것이다. 60년대의 봄이 4월혁명으로 희망차게 열렸고, 70년대의 봄 역시 민주회복을 다지면서 밝게 개막되었듯이, 80년대의 봄은 그야말로 민주화의 소망을 안고 찬란하게 열렸다.설마 60년대의 봄을 짓밟은 5ㆍ16쿠데타나 70년대의 봄을 앗아간 유신정변과 같은 폭거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국민은 80년대의 새 봄을 맞았다. 그러나 다시금 춥고 어두운 반동의 역사가 예비되고 있었다. ‘계엄정국’의
불평등한 강화도조약(1876년) 이래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을 빼앗긴 채 야만적인 식민통치에 시달리던 한민족이 비록 국외의 임시정부이지만 강도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 지 80주년이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10일 김구 주석과 조소앙 외교부장의 명으로 조소앙이 기초한 ‘대일선전성명서’(선전포고)를 공포하고, 일본정부는 물론 미ㆍ영ㆍ중ㆍ소 등 4개국에 발송하였다. 일제가 진주만을 기습공격한 지 (12월 8일) 이틀 만이다.김구 주석과 조소앙 외교부장은 헌법(대한민국 임시약헌) 절차에 따라 일제에 선전을 포고하였다. 당
1970년대는 사회적으로나 남북문제에 있어서 대단히 복합적이고 복잡다난한 시대였다. 먼저 정치적으로는 유신독재로 시작하여 긴급조치 시대를 거쳐 궁정동의 10ㆍ26사태로 막을 내린다. 경제적으로는 고도산업화 단계로 엄청난 국부를 이루면서 남여간ㆍ지역간ㆍ산업간의 심각한 격차를 이루어 갈등을 조성하고 사회적으로는 이로 인한 본격적인 도시화와 농촌황폐, 향락ㆍ범죄현상이 증폭한다.70년대 초두를 장식한 사건은 김지하 시인의 ‘오적’ 사건이다. 김씨는 당시 사회의 타락한 지도층을 오적으로 형상화하여 신랄히 풍자했는데, 이것이 반공법 위반혐의를
‘잘났어, 정말!’ 이란 말이 유치원생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유행된 적이 있었다. ‘잘났어, 정말’은 냉소와 야유로 가득 찬 경멸의 언사다. 정말로 잘났다는 긍정이 아니라 네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느냐는 조롱이다. 이 유행어는 오랜 독재와 억압에서 벗어난 국민들의 탈권위주의를 반영하는 한편, 위선에 대한 통쾌한 야유가 깃들어 있다. 아울러 일체의 가치와 권위를 부정하는 언어공해의 요소 또한 적지 않았다.“내가 이럴려고 대통령이 됐나”, “염병하네” 등이 박근혜 탄핵정국에서 히트를 쳤다. 유행어는 그 시대 그 사회의 생태를 가장 날카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맺어진 날이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제에 강탈된 것으로 알려지지만 사실상 국권을 빼앗긴 것이다. 이로써 서울에 일본통감부가 설치되고, 전국적으로 일제 경찰이 배치되어 치안이 그들 손아귀에 넘어갔다. 또한 이른바 고문정치라 하여 각 부처에 일본인과 친일외국인을 고문으로 임명하여 인사ㆍ재정 등 주요 내정이 그들에게 장악되고 사실상 조정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을사늑약이 강제된 날은 하늘도 슬퍼했던지 궂은 비가 내리고 서리치는 날씨이기도 해서 이같은 날을 을씨년스럽다고 일컫게 된 사연이다.1905년
단재 신채호(1880~1936)는 항일언론인, 계몽사상가, 전기작가, 혁명문인, 민족사학자, 아나키스트 등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57년의 생애를 오롯이 조국해방운동에 바친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길지 않은 삶, 그 중에서도 8년 동안의 옥살이를 빼면 50년도 채 안 되는 생애에서 참으로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일을 했다. 전문가라도 한 분야에서 이루기 어려운 일을 단재는 모두 해냈고, 각 분야의 정상수준이 되었다. 자신의 표현대로 “사필(史筆)이 강하여야 민족이 강하고 사필이 무(武)하여야 민족이 무(武)하다”는 정신이었기
‘20세기의 볼테르’라 불리는 찰스 비어드(1874~1948)는 역사학자로서 사학협회 회장 등을 지낸 미국의 대표급 지성이었다. ‘아메리카 문명발흥’ 등의 책을 썼다.어느날 강의시간에 한 학생으로부터 인생경험에서 배운 모든 것을 5분 안에 요약해 달라는 좀 까탈스러운 질문을 받았다. 비어드는 한참 생각한 후에 5분도 필요 없고 단 네 줄이면 된다면서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첫째, 신은 파멸시키려는 자에게 먼저 권력에 눈이 어둡게 만든다. 둘째, 역사의 물레방아는 천천히 돈다. 그러나 그 방아는 잘게 갈아나간다. 셋째, 벌들은 꽃에
청산리는 만주 화룡현 삼도구에 있는데, 우리 교포들이 많이 사는 용정촌에서 약 100여 리 떨어져 있다. 주위가 산으로 첩첩 둘러싸인 첩산이므로 우리 교포들이 청산리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부근에는 충신장(忠信場)이라는 중국인 마을이 있고, 충신장에서 서쪽으로 30리 되는 곳에 큰 바위가 있다고 하여 대립자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고, 거기서 다시 서쪽으로 15리쯤 가면 백운평이 있다.일제는 1920년 10월 2일 마적의 수령 장강호(長江好)를 매수하여 마적 400여 명으로 하여 훈춘의 일본영사관을 습격케 하였다. 이 습격으로 시부아
지금은 많이 퇴색했지만 한때 세계적인 명문으로 알려진 미국 하버드대학의 초대 나담 푸시 총장이 학생들에게 훈시한 내용이 지금도 이 대학의 전시실에 남아서 많은 재학생들에게 감동을 준다.나담 푸시는 “젊은이들이여! 그리고 젊은이들처럼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여! 영원히 푸른 삶을 살고자 한다면 죽을 때까지 3가지를 간직하여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첫째, 영원히 흔들 수 있는 깃발을 만들어라.둘째, 죽을 때까지 지킬 수 있는 신조를 준비해라.셋째, 평생을 두고 부를 수 있는 노래를 가져라.별로 어려운 조건은 아닌 것 같다. ‘깃발’이야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이고 태평양의 서쪽 끝자락에 자리잡은 우리나라는 해양세력 대 대륙세력, 유교문화권 대 기독교문화권, 자본주의세력 대 공산주의세력의 대척지대가 되었다. 그래서 늘 주변 열강으로부터 침략과 분단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중국은 한반도가 자국의 ‘뒤통수를 내리치는 망치로’, 일본은 ‘자신들의 심장을 겨누는 비수로’, 미국은 ‘동북아의 전진 기지로’, 러시아는 ‘자국의 팽창에 분리될 수 없는 행동반경으로’ 각각 인식하면서 결코 영향력은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단재 신채호는 언론인, 민족사학자, 독립운동가, 문학가ㆍ전기 작가, 아나키스트지도자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그 분야의 정상급에 이르렀다.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 ‘조선혁명선언’, ‘탈환’과 ‘천고’발행, ‘전후삼한고’ ‘조선역사상 1천년 래 제1대사건’등 많은 저서와 선언문, 논문, 시론, 사론 등을 집필했다. 그런데 워낙 독립운동사와 역사, 민족사에 관련한 저서와 시론, 사론이 빚을 발하다보니 소설가 단재의 위상은 소수의 전문가들 외에는 비교적 덜 알려진 편이다.단재는 1916년 3월 망명지 북경에서 ‘꿈하늘(夢天
동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식자(지식인ㆍ선비)가 갖춰야할 기본 소양으로 문(文)ㆍ사(史)ㆍ철(哲)을 들었다. 문학에서 마음을 도야하고 사학에서 과거의 행동을 거울삼아 철학에서 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시(詩)ㆍ서(書)ㆍ화(畵)를 추가하였다. 수준과 정도의 문제이겠지만, 한 사람이 이와 같은 학문과 예술의 소양을 두루 갖추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을 것이다.선현들이 사(史)를 중시한 데는 까닭이 있다. 역사는 인간이 살아온 발자취를 기록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잘하고 잘못된 점을 돌아보고 진실을 찾아 교훈으로 삼고자 함이다.
동학농민혁명이 좌절되고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울 때 전국 각처에서 의병들이 분연히 봉기하여 일제와 싸웠다. 동학농민혁명 때와 마찬가지로 의병들은 일제의 현대식 병기에 죽창으로 맞서면서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 의병들이 일제와 싸울 때 민중들은 방방곡곡에서 ‘새타령’등 구국항쟁의 노래를 당시 유행하던 판소리 형식으로 불렀다. 판소리 ‘새타령’과 ‘농부가’는 지금까지 노랫말의 참뜻도 제대로 모르는 채 불리어지고 있다. 남원산성 올라가 이화문전 바라보니/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 떴다/ 보아라 종달새 이 산으로 가며 쑥국쑥국
내년 3월의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뜨겁다. 거대 여야와 군소정당의 예비후보까지 20여 명에 이른다. 후보 중에는 그동안 정견과 정책을 갈고 닦은 분도 없지 않지만, 누가 봐도 대통령 감으로는 걸맞지 않는 수준 이하의 인물도 보인다. 해공 신익희 선생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질 때 의정원의원으로서 약헌(헌법) 기초에 참여한 이래 독립운동으로 일관하고, 해방 후에는 초대와 2대 국회의장 그리고 이승만 독재에 맞서 민주당을 창당하여 대통령후보가 되었으나, 투표 직전 뇌일혈로 서거하였다. 해공 신익희 선생은
전통시대 국난기이거나 혁명기 또는 정치적 변혁기이면 어김없이 각종 민요와 참요 그리고 판소리 등 ‘민중의 소리’가 나타났다. 그것이 대부분 노래가사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가사와 의미에는 각별한 뜻이 담긴다. 명확한 작사자ㆍ작곡자도 없이 민중의 입을 통해 불려지고 전파되는 이들 민요ㆍ참요ㆍ판소리 등은 시대상황의 이유로 파자나 위서의 형태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가사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뜻이 들어있는가 하면 비유나 은어ㆍ은유 등을 섞어 당대 지배세력의 감시와 탄압을 피하고자 하였다. 동학농민혁명기에도 어김없이 각종 민요와 참요, 판
워낙 크고 작은 사건ㆍ사태가 쏟아지다보니 이슈에서 묻혔지만, 지난 8월 하순 대법원이 법조경력자를 법관으로 임용하는데 처음으로 법관임용예정자가 여성이 남성을 추월했다. 가장 보수적이라는 법관도 이제 남녀평등 구조가 진행 중임을 알 수 있다. 대법원은 올해 일반 법조경력자 중 법관인사위원회의 최종 심사를 통과한 임명동의 대상자 158명 가운데 여성 82명, 남성 75명으로 첫 역전현상을 보였다. 아직은 여성법관의 비율이 30% 선이지만, 이런 추세라면 법조계도 여성차별의 낡은 봉건성이 걷히게 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대한민국 임시정
정치는 총이나 칼 등 무기 대신에 입(말)으로 하는 ‘전쟁’이다. 야만인들은 말이 아닌 무기로 싸웠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 ‘문명시대의 야만인들’이 살상력이 엄청나게 강해진 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하고 있다.정치판이 살벌하니 말이 거칠다. 정확히는 말이 거칠다보니 정치판이 살벌해진다고 할 것이다. 국민의 대변기관이라는 국회(의원)와 여야 정당의 말이 가장 거칠고 살벌하다. 대선을 앞두고 살벌한 언어의 습도가 더욱 올라간다. 명색이 국민을 대변하고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정치인들의 언행이 일반 국민의 수준보다 훨씬 뒤떨어진 것은 달라지
선후기와 근현대사 인물 중에 남북한에서 함께 존경받는 분들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정약용, 전봉준, 안중근, 신채호ㆍ주시경 그리고 홍범도장군이다. 반봉건ㆍ개혁ㆍ반외세에 앞장섰던 주체적 인물들이다.분단 70여 년이 지나면서 남북 사이에는 역사관이 달라지고, 역사인물에 대한 평가에서도 차이점이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 소개한 분들은 남북에서 공히 좋아하고 존경받는 인물이다. 해서 ‘민족의 사표’ 또는 ‘통일조국의 사표’라 불러 마땅할 것이다. 향후 통일운동의 방향은 동질성은 확대하고 차이점은 줄여 나가야 할 것이다.홍범도장군이
해방의 날을 보지 못한 채 ‘그날이 오기만을’ 애타게 그리다가 젊어서 숨진 소설 ‘상록수’의 작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심훈의 ‘그날이 오면’에는 모든 항일운동가와 민중의 염원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오리다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마침내 그날이 왔다. 1910년 8월 29일 국치로부터 만 34
프랑스어로 ‘귀족의 의무’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더 많이 해야 한다는 말이다.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2000년을 지탱한 로마제국의 저력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분석한다. 로마의 귀족은 전쟁이 나면 자신의 재산을 내놓고 가장 앞장서서 외적과 싸웠다. 로마 건국 이후 500년간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분의 1로 급속히 줄어든 것은 계속되는 전쟁에서 귀족들이 많이 희생된 까닭이라는 것이다.한국사회의 귀족은 특권만 있고 책임과 의무는 없었다. 조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