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와 위트, 밝은 정치를 위하여

유머와 위트, 밝은 정치를 위하여

  • 기자명 김삼웅 논설고문
  • 입력 2021.08.26 09:30
  • 수정 2021.09.2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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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총이나 칼 등 무기 대신에 입(말)으로 하는 ‘전쟁’이다. 야만인들은 말이 아닌 무기로 싸웠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 ‘문명시대의 야만인들’이 살상력이 엄청나게 강해진 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하고 있다.
정치판이 살벌하니 말이 거칠다. 정확히는 말이 거칠다보니 정치판이 살벌해진다고 할 것이다. 국민의 대변기관이라는 국회(의원)와 여야 정당의 말이 가장 거칠고 살벌하다. 대선을 앞두고 살벌한 언어의 습도가 더욱 올라간다. 
명색이 국민을 대변하고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정치인들의 언행이 일반 국민의 수준보다 훨씬 뒤떨어진 것은 달라지지 않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상징한다. 대한민국은 지난 7월 2일을 기해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개발도상국집단인 A그룹에서 선진국(advanced countries)집단이라고 하는 B그룹으로 이동 편입시켰다. 요약하면 선진국이 된 것이다. 분단과 전쟁,  백색독재와 군사독재, 경제개발과 민주화, IMF와 외환위기라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저개발 후진국가에서 선진국가로 훌쩍 올라선 것이다. 
국민의 피와 눈물과 땀을 흘려 이룩한 성취다. 많은 분야에서 국제수준을 웃들고 모범적인데 정치 쪽은 여전히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세기 시계를 차고 21세기 국민(국가)을 이끌겠다는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는 바뀔 줄 모른다. 구태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신참정치인들 역시 다르지 않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한술 더 뜨기도 한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권력(정권)을 맡는 선거행위는, 정책과 대안의 제시로 국민의 지지를 많이 받는 쪽이 국정을 책임진다. 1948년 정부 수립을 위해 실시된 5ㆍ10총선을 시작으로 그동안 수많은 선거가 실시되고, 이에 따라 정치인도 교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정당)들의 막말시리즈는 그칠 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정치인들만 탓할 일도 아니다. 그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속에서 솟아난 것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선출되거나 다수의 지지를 받고 나선 것이다. 국민이 그런 사람들을 택한 것이다. 결국 국민의 책임인 셈이다. 
우리 정치인들은 도무지 유머나 해학을 모른다. 그만큼 정신적인 여유가 모자란다는 이유도 되고, 정치가 각박하다는 현상도 된다. 하긴 체제와 반체제, 독재와 민주화 등의 살벌한 극한 대결상태가 지속되어온 헌정사를 되돌아 볼 때 유머나 해학이 나타날 정황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정치풍토가 이렇다보니 정치인들의 행태도 삭막해진다. 같은 진영, 여야 간, 각료와 의원 간에 도무지 유머가 없다. 대정부 질의를 벌인 의원이나 답변을 하는 장관이나 무뚝뚝하고 살벌하기는 피장파장이다. 국회본회의장이나 상임위회의실은 그야말로 적과 적의 대결장이지 함께 국사를 논의하는 정치의 장과는 거리가 멀다.  
의원들의 대정부 질의에는 자기현시의 간교와 거오(倨傲)는 섞여 있어도 팽팽한 대결을 풀어주고 국민을 위안시키는 한마디의 유머나 해학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조상들은 거듭되는 전란과 빈한 속에서도 여유있는 해학을 즐길 줄 알았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풍류시인 김삿갓의 넉넉한 풍자나 근대의 지도자 월남 이상재의 각종 일화를 비롯하여 정치인ㆍ시인묵객들의 해학과 골계가 전해지고 있다. 한국문학의 유산 가운데 귀중한 전통의 하나는 해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 정치의 여유를 위해서, 그리고 각박하고 살벌한 우리네 삶의 웃음과 여유를 위해서 널리 인구에 회자된 유머와 해학, 임기응변, 기행 몇 토막을 살펴보기로 하자.
바가지 긁기로 유명한 소크라테스 부인은 어느 날도 고함을 치고 푸념을 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조금도 응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인은 더욱 화가 났다. 그래서 참다못해 부인은 물을 한 바가지 남편에게 뒤집어 씌웠다. 소크라테스는 그래도 흥분하지 않고, “우뢰소리 요란하더니 이제 소낙비가 내리는가 보다”라고 중얼거렸다.
“영국노동당의 진짜 창시자가 누굴까”하는 토론이 벌어졌다. 곁에서 듣고 있던 윈스턴 처칠이 “그건 콜럼버스지”라고 말하자 일동은 놀란 표정을 지으니 처칠이 말을 이었다.
“생각해봐요. 콜럼버스는 출발할 때 어디로 갈 것인지 알지 못했고, 도착했을 때도 거기가 어딘지 몰랐거든. 게다가 출발해서 돌아올 때까지의 비용을 전부 남의 돈으로 했거든.”
 이것은 처칠이 싫어하는 노동당에 대한 익살이다. 그러나 이런 익살에는 독기가 전혀 없다.
어느날 영국 하원에서 비위가 상할 대로 상한 여성의원이 처칠에게 윽박질렀다. 
“당신이 내 남편이었으면 당신이 마실 차(茶)에다 독이라도 쳐 넣고 싶었을 거요!”
그러자 처칠은 이렇게 응수했다. 
“당신이 내 여편네였으면 먹지 말라고 해도 난 그걸 꿀꺽 마셨을 거요!”
처칠의 적수였던 애틀리경은 의회에서 여러 차례 서리를 맞았다. 속담대로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 해줬으면 차라리 대접이었을 것을, 그는 애틀리를 ‘양의 탈을 쓴 양’이라고 해 그를 묵사발로 만들었다.
처칠은 또 이렇게 무안을 주기도 했다. 
“애틀리 그 사람 아주 겸손하고 말고. 그럴 수밖에 더 있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 겸손할 필요가 없는 게 하나쯤이라도 있어야지!”
버나드 쇼는 처칠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상대였다. 어느날 쇼는 처칠을 자작연극의 개막일에 초대를 한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혼자 오기가 뭘 하면 친구하고 함께 오시오. 당신에게도 친구라는 게 있는지 모르지만….”
이런 모욕적인 초청장에 처칠은 즉석에서 쇼에게 회답을 썼다. 
“초대에 응하는 건 개막한 이튿날로 해야겠소. 그 연극이 이틀 동안이나 계속 될는지는  모르지만….”
프랑스 의회에서 어느날 한 야당의원이 국무위원을 비판하고 있었다. 야당의원 왈 “당신의 전직은 수의사였다는데 사실이오”? 하고 물었다. 이에 대해 국무위원은 “그렇소만 혹시 어디 아픈 데라도 있나요”하고 되받아, 야당의원을 일거에 가축으로 전락시켰다. 
오성대감은 조선시대 최대의 유머러스트이다. 선조가 한번은 오성 이항복의 기경(奇警)함을 꺾고자 신하들에게 다음날 입조(入朝)할 때 조복 속에 계란 한 개씩을 넣어올 것을 분부했다.
다음날 왕은 신하들에게 급히 유용하니 계란 한 개씩을 당장에 구해들이라고 하명했다. 이에 따라 다른 신하들은 준비해온 계란을 소매 속에서 꺼내어 어전에 드리는데 오성은 홀로 드릴 것이 없었다.
만당의 시선이 오성에게 집중할 수밖에, 이번에는 오성대감도 꼼짝없이 당하는구나 하는 순간, 웬걸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두 조복 소매를 후다닥 치면서 ‘꼬끼오’하고 닭 훼치는 소리를 냈다. 만조의 신하가 놀라고, 선조가 그 까닭을 물으니 오성대감 가로되, “신은 암탉이 아니옵고 수탉이 되어 알을 낳지 못하와 대단히 황송하오이다”라고 천연스럽게 대답했다. 자기의 난경을 벗어날 뿐 아니라 알 가지고 온 만조백관을 암탉으로 만들어 놀려준 임기응변은 가히 천하일품이다.

김삼웅(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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