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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언 칼럼> 생활주변 친일잔재 청산이 시급하다
  • 김주언 논설주간 ysk7474@daum.net
  • 승인 2019.03.14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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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성북구청 바람마당 앞의 '인촌로 7길' 도로 명판이 '고려대로 7길'명판으로 교체되고 있다. 김성수의 친일행위가 2017년 대법원에서 인정되고 정부가 건국훈장도 박탈함에 따라 성북구는 주민 동의를 받아 인촌로를 고려대로로 바꾸고 지난해 12월 24일 이를 고시했다. 연합뉴스

일제강점기 3·1운동에 참여했다가 다음해 동아일보사 설립을 주도했다. 1922년에는 물산장려운동을 펼쳤다. 1932년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했다. 1936년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동아일보사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1940년 중일전쟁 이후 적극 친일로 나섰다. 학도병 지원을 고무하고 징병제 참여를 독려했다. ‘대의에 죽을 때 황민됨의 책무는 크다’ ‘학병을 보내는 은사의 염원’ ‘징병이 닥쳐온다. 국민원호사업에 한층 분발하자’ 당시 매일신보에 실은 글들이다. 1943년에는 학도지원병을 격려했고 예비군사학교 입소식 축사를 했다.
1945년 해방이후에는 한국민주당을 조직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봉대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1947년에는 한민당 당수에 올랐고 1947년 3월부터 정부수립 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냈다. 한국전쟁 기간인 1951년 5월부터 1952년 8월까지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을 역임했다. 1954년 이승만의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호헌동지회에 참여하여 통합야당인 민주당의 창립준비에 관여했다. 1955년 2월18일 병으로 사망하자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1962년에는 건국공로훈장 복장이 추서됐다.

그는 누구인가. 동아일보사 사주와 고려대 설립자로 추앙받는 ‘민족지도자’ 인촌 김성수이다. 고려대 교정에는 흉상이 세워지고 그의 호를 딴 도로가 생겨났다. 그러나 묻혀졌던 그의 친일행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2002년 광복회 등이 선정한 친일파 명단에 수록됐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도 이름을 올렸다. 2009년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선정했다. 후손들은 곧바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대법원이 친일행위로 최종 확정했다. 지난해에는 56년만에 서훈이 취소됐다.  
고려대 학생들은 꾸준히 김성수 동상 철거를 요구하고 있으나 학교측의 반대로 요지부동이다. 그러나 그의 호를 딴 도로명은 상황이 다르다. 서울 성북구는 도로명 ‘인촌로’를 ‘고려대로’ 직권 변경했다. 지하철 6호선 보문역부터 고대병원 안암역 고대앞사거리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성북구는 설명회와 설문조사 등 주민여론을 수렴하여 지난해 11월 도로명주소위원회의 의결을 거쳤다. 성북구의 도로명 직권변경은 그가 태어난 전북 고창의 ‘인촌로’(부안~심원면 12.5㎞) 개명에도 영향을 줄지 관심을 끈다.
인촌로처럼 우리 생활주변에는 친일잔재들이 널려 있다. 그동안 일제가 자연의 정기를 차단하기 위해 심어놓은 쇠말뚝을 제거하는 등 친일잔재 청산운동을 벌여왔다. 그러나 아직도 학교현장이나 지역에는 친일파의 흔적이 남아 있다. 국립묘지에는 버젓이 친일파들이 안장돼 있기도 하다. 해방이후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선가. 국민 대다수(80.1%)는 아직 친일잔재가 청산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문화체육관광부 여론조사 2월26일) 국민은  3·1정신 계승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친일잔재 청산’(29.8%)을 꼽았다. 
젊은이들의 배움터인 학교 곳곳에도 친일잔재가 도사리고 있다. 친일파 기념물은 물론, 친일파가 작사·작곡한 교가를 부르는 곳도 남아 있다. 전교조 서울지부의 조사에 따르면, 학교 7곳에 친일파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친일파가 만든 교가가 남아 있는 곳도 113개교에 이른다. 심지어 일왕을 찬양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의혹을 받는 교가도 버젓이 불려진다. ‘먼동이 트이니 온누리가 환하도다’는 구절은 욱일승천기를 연상시키며 문맥상 일왕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휘문고에는 1910년 한일합방조약을 지지해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민영휘의 동상이 남아 있다. 영훈초등학교와 영훈고에는 설립자 김영훈의 동상이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 고위관료를 지냈다. 앞서 밝혔듯이 고려대와 중앙고에는 김성수의 동상과 기념관이 있다.
친일파가 작사·작곡한 교가를 부르는 곳은 초등학교 18곳과 중고교 95곳이었다. 이중 공립학교도 35%(40곳)나 됐다. 독립선언서를 기초했으나 친일파로 변절한 최남선은 경신중고와 중앙중고, 휘문중고의 교가를 작사했다. 친일파 이흥렬과 김성태 김동진 현제명 등은 수십곳의 교가를 작곡했다. 심지어 독립운동가가 세운 학교에서도 친일파가 만든 교가를 부른다.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세운 오산중고의 교가는 이광수가 작사했다. 단재 신채호선생의 후손이 세운 광주 광덕중고 교가는 ‘대일본의 노래’ 등을 연주한 김성태가 작곡했다. 일본군 출신을 칭송하는 교가도 있다. 서울 성남중고 교가는 설립자인 일본군 출신 김석원을 기린다. 
 지역의 학교들도 마찬가지이다. 충청남도에는 공개장소에 일본인 교장의 사진을 게시한 학교가 29곳이나 됐다. 친일파가 작사·작곡한 교가가 있는 곳은 31곳이나 된다. 일제강점기의 징계규정을 그대로 생활규정으로 사용하는 학교도 80곳에 이른다. 충남교육청은 일본인 교장 사진은 모두 철거하기로 했다. 친일파가 작사·작곡한 교가는 학교구성원들이 수정여부를 결정하도록 권고했다. 인천시에도 3.1운동 발상지인 창영초등학교 교가는 친일파 임동혁이 작곡했다. 고교 7곳도 현제명 모윤숙 김동진 이홍렬 등이 작사·작곡한 교가를 쓰고 있다.
친일파 시인의 비석은 철거된다. 경기도 부천시는 상동의 ‘시와 꽃이 있는 거리’에 세워진 미당 서정주 시비를 없애기로 했다. 서정주의 ‘동천’은 정지용의 ‘향수’로 교체했고, ‘국화 옆에서’는 나태주의 ‘풀꽃’으로 바꿀 예정이다. 노천명의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와 주요한의 ‘샘물이 흔자서’는 철거했다. 안양시에서는 옛 서이면사무소의 문화재 지정 퇴출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안양시는 29억여원을 들여 이 건물을 매입한 뒤 해체·복원작업을 거쳐 2001년 경기도 문화재자료 100호로 등록했다. 서이면사무소는 친일수탈의 현장으로, 상량문에 경술국치를 찬양하는 글이 발견됐다.
경기도의회는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파의 강제이장을 촉구하고 나섰다. 도의회는 본회의에서 국립묘지 안장 친일파 강제이장을 위한 국립묘지법 개정 촉구 건의안을 의결했다.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묘지를 강제 이장하고 친일 행적이 있는 사람의 국립묘지 안장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친일잔재는 우리 생활터전 곳곳에 스며들어 남아 있다. 친일파청산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일세력은 해방이후에도 주도세력으로 떵떵거리며 살아왔다. 군부독재와 안보를 빙자한 사이비 보수세력으로 탈바꿈했다. 친일에서 반공으로, 산업화세력으로, 지역주의를 이용한 보수라는 이름으로 화장만 바꿔왔을 뿐이다. 친일파의 부끄러운 유산 위에 현재의 역사가 덧칠해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친일잔재 청산은 친일은 반성해야 할 일이고 독립운동은 예우받아야 할 일이라는 가장 단순한 가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친일을 청산하고 독립운동을 제대로 예우하는 것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정의로운 나라로 나아가는 출발이라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도 “친일파는 독재와 관치경제, 정경유착으로 이어졌으니 친일청산 역사교체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역사교체를 위한 미래의 100년을 준비하려면 친일잔재의 청산이 선결과제임을 명심해야 할 때이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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