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기본소득제는 ‘뜨거운 감자’로 머물 것인가

<김주언 칼럼> 기본소득제는 ‘뜨거운 감자’로 머물 것인가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19.05.16 10:19
  • 수정 2019.05.1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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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조건없이 누구에게나 ‘공짜 생활비’를 주는 기본소득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세계최초로 기본소득제를 시범 시행했던 핀란드가 2년만에 중단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유럽은 물론, 미국 캐나다 등에서 기본소득제 실험에 나섰다. 정권 교체로 중단되기도 하지만, 실험은 지속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기본소득제를 대표적 선거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기본소득제가 세계 정치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기본소득 실험의 해’로 불렸던 2017년 이후 기본소득제는 많은 나라로 퍼져나가고 있다.

실제로 국가가 복지예산을 편성해 특정분야에 사용하게 하는 복지정책은 부작용이 없지 않았다. 복지예산을 타내기 위해 국가가 정한 조건을 갖춘 사업체가 양산돼 복지수혜층에 돌아가는 혜택이 실효를 거두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형적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 기본소득제이다. 개인에게 직접 돈을 줘 자유롭게 사용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일자리와 경제가 성장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는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기본소득제를 ‘시대정신’(zeitgeist)’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경기도가 기본소득제 실험에 들어갔다, ‘청년 기본소득’이 그것이다. 청년들에게 분기별로 25만원을 지역화폐로 나눠준다. 한달에 6만2,500원꼴이다. 핀란드의 매달 550유로(70만원)에 비하면 매우 적다. 모든 도민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보편적 기본소득제는 아니다. 청년에만 한정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처음으로 지자체가 기본소득제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본소득은 이재명 경기지사의 핵심정책중 하나이다.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제를 시행한 나라는 핀란드이다. 핀란드는 2년전 시행한 기본소득제를 접기로 했으나 완전 실패한 것은 아니다. 핀란드정부는 차기 정부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흐름은 더 많은 지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시민소득 실험 ‘비민컴(B-MINCOME)’이 시작된데 이어, 미국과 영국 캐나다의 여러 지역에서 새로운 기본소득 실험을 시행하거나 검토중이다. 소득과 자산 수준에 상관없이 일정수준의 생활비를 무상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는 아직도 찬반논란이 뜨겁다.

유럽 좌파진영은 실효성 논란과는 별개로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요 공약으로 검토중이다. 유권자들이 큰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기본소득제를 재기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독일 사회민주당(SPD)이 대표적이다. 차기 사민당 지도자로 거론되는 미하엘 뮐러 베를린시장은 ‘연대 기본소득’ 도입을 요구했다. 실업자들에게 매달 416유로(약 55만원)씩 주는 실업수당 대신 국가가 기본적 일자리를 제공하고 매달 1,500유로(약 198만원)의 기본소득을 주자는 아이디어이다.

이탈리아의 오성운동은 지난해 3월 총선에서 실업자나 저소득자에게 매달 780유로(약 103만 원)의 기본소득 지급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공약은 실업률이 높은 이탈리아 남부의 표심을 강타해 다수당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극우정당 LEGA와 연합정부를 구성하면서 기본소득제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50억유로(약 19조원)의 예산을 마련하기가 벅차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높은 부채비율 (GDP 대비 130%) 때문에 재원조달이 어려운 실정이다.

영국 스코틀랜드 정부는 지난해 6월 글래스고 에든버러 파이프 노스에어셔 4개 지방정부에게 기본소득제의 타당성 조사와 실험모델 구축을 위한 25만파운드의 예산 지원을 마쳤다. 각 지자체는 정책실험의 최종안을 2020년 3월까지 스코틀랜드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이를 토대로 실제 실험의 실행여부를 결정한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진보성향의 국민당이 집권하고 있으나 2021년 총선 결과에 따라 정책실험의 실행여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주정부는 지난해 기본소득정책 실험의 타당성 검토에 착수했다. 반면 온타리오주정부는 2017년부터 진행된 기본소득실험을 중단했다. 온타리오주는 해밀턴 썬더배이 린드새이 3개지역의 18~64세 저소득층 4,000명을 대상으로 매년 1만6,989달러(기혼자인 경우 부부에게 2만4,207달러)를 3년간 지급하는 정책실험을 진행해왔다. 온타리오주는 지난해 6월 선거에서 승리한 우파 성향의 진보보수당이 예고없이 실험을 중단했다. 실질적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집중 지원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미국에서는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기본소득제 실험에 나섰다. 캘리포니아주 스톡턴시는 올해부터 100가구에게 18개월간 매달 500달러씩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정책실험에 나섰다. 오바마정부의 백악관 인턴을 거친 마이클 텁스시장의 공약이다. 시카고시의회는 기본소득 정책실험을 위한 테스크포스 설립 결의안이 상정됐다. 1,000가구에게 매달 500달러(약 56만원)이상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람 이매뉴얼 시카고 시장은 오바마정부 초기 비서실장을 지냈다.

미국에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기본소득제가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민주당 대선 후보 출마를 선언한 앤드루 양은 핵심공약으로 보편적 기본소득제를 내세웠다. 양은 18~64세의 모든 성인에게 월 1,000달러의 기본소득 지급을 핵심공약으로 꼽았다. 양은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내수경제를 활성화하고 고용을 늘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본소득을 통해 불평등한 사회를 평등하게, 경제성장의 논리를 삶의 질에 대한 논의로 바꿔 ‘인간적 자본주의’를 실현시켜야 한다는 게 핵심철학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우리말로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정보산업 최고경영자들이 기본소득 도입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모든 사람이 새로운 것에 적응할 쿠션을 주기 위해 보편적 기본소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도 기본소득 찬성론자다. 이들은 디지털 경제와 자동화기술의 발달로 노동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에 기본소득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분배모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크리스 휴즈가 설립한 이코노믹 시큐리티 프로젝트도 기본소득 연구와 실험을 지원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일과 노동의 의미를 되돌아 보고 보편적 기본소득제와 같은 새로운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자리가 주는 것은 돈만이 아닙니다. 존엄성과 체계적인 지원, 사회에 대한 소속감과 목적의식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보편적 기본소득과 같이 새로운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의 노동시간을 되돌아보고 젊은이들을 어떻게 재교육시킬 것인지, 어떻게 모두를 창조적 기업가로 만들 수 있을 지 고민해야 합니다.”

문제는 결국 재원이다. 양은 재정충당을 위해 이른바 ‘로봇세’와 부가가치세 도입을 들고 나왔다. 자동화로 이익을 얻는 회사들에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자는 논리다. 기본소득제 주창자들은 기본소득제가 정착되면 비효율적 복지혜택을 줄여 오히려 국가재정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빈곤층이 늘어나면 보건복지비용과 폭력 약물중독에 따른 사회불안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에 사전에 예방하면 재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제는 아직 ‘뜨거운 감자’이다.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제가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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