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프로야구, 초심으로 돌아가라

그 때 그 프로야구, 초심으로 돌아가라

  • 기자명 이석희
  • 입력 2023.06.2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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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그 무렵. 광주광역시 임동 공설운동장에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 열차에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로 시작되는 가수 김수희의 남행열차 떼창이 야구장에 울려 퍼질 때쯤이면 프로 야구 해태 타이거즈 승리가 얼추 굳어 졌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광주항쟁의 시퍼런 기억이 사라지기도 전인 80년대 공설운동장 야구장은 유일하게 광주 시민들이 맘대로 모여 소리칠 수 있는 해방공간이었다. 광주 사람 10명만 모여도 최루탄이 쏟아지던 그 시절, 공인된 만남의 장소가 열악한 시멘트 바닥 공설운동장 야구장이었다.

거기에는 광주의 자존심이자 상징인 빨간 유니폼의 해태타이거즈 선수들이 늠름하게 서있었다. 맘 둘 곳 없는 우울한 회색빛 도시 광주에 빨간 유니폼 사나이들은 거의 유일한 위안이자 피난처였다. 그들은 삼성이고 롯데고 닥치는 대로 때려(?) 눕혔다. 신묘한 그들의 활약은 언젠가는 군사 정부를 끝장 낼 수 있다는 희망과 맞닿아 있었다. 그들은 광주시민의 염원을 담아 나가며 이겼다. 어느덧 그들은 광주의 자존심을 지키는 승리의 투사 같은 그런 존재들로 변해 있었다. 그 중심에 언제나 국보투수 선동렬이 활약했다.

선동렬은 엄혹했던 시절 볼 하나, 하나에 영혼을 실어 프로야구를 평정해나갔다. 그것도 완벽하게 말이다. 0점대 방어율로 그가 나오는 날이면 그날 경기는 끝났음을 알렸다. 그가 광주에 있는 것만으로도 광주사람들은 위안을 받았다. 경기가 끝날 때 쯤, 응원가는 남행 열차에서 목포의 눈물로 변해있었다. 야구는 이겼지만 현실로 되돌아가야 하는 광주만의 설움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프로야구는 그 지역 애환이 서려있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선수들은 고장을 위해서 열심히 뛰었다. 선동렬을 후세 사람들은 국보투수라 칭했고, 광주사람들은 그를 광주 수호신이라곻 부르기 시작했다. 정신적 지주노릇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지역연고팀도 마찬가지다. 롯데는 부산을, 삼성은 대구를 대표해 지역 주민과 함께 울고 웃었다. 그러니 프로야구 선수는 그 지역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들은 고장의 명예를 걸고 온 몸을 야구에 불살랐다. 그래서 세계대회 우승도 척척해냈고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그러다 보니 야구 선수를 우러러 보는 것도 당연했다. 야구 선수들은 국가를 대표하고 그에 걸맞는 행동으로 추억을 선사했다.

그러나 최근 기아타이거즈 단장이 FA선수에게 뒷돈을 요구했다가 해임되는 사건이 발생, 충격을 줬다. 최근 프로야구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여기에 최악의 성적으로 국민적 비난을 받았던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야구대표팀에서는 음주 파동까지 터져 충격을 더했다. 김광현 선수는 베테랑선수로 생각이 짧았다. 사죄한다고 말했고 선수협회 회장이자 WBC팀의 주장인 김현수 선수도 국가대표로서 명예와 품위를 지키지 못한 것에 사죄한다고 머리 숙였다. KBO도 진상조사에 들어갔으니 이 사건도 기억에 멀어지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그라운드로 돌아 왔다.

물론 야구선수라고 수도승처럼 살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국가를 대표하는 국제대회 기간 중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일본과 호주에게 참패라는 결과가 말해주지 않는가.

80년대 죽고 살기식 야구는 아니라 해도, 설령 경제적 여유로 인해 태극마크가 해외여행 기회 쯤으로 다가설지언정, 프로는 프로다워야 하고 국가대표는 국대 품격을 갖춰야 하는 법이다. 스포츠가 국격을 상징하고 팬들 수준도 프로 이상의 전문가 수준으로 높아졌다. 능력과 품위 유지가 어려운 선수라면 스스로 경기장을 떠나야 한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자.

이석희(호남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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