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주간 칼럼>‘○○포르노’가 넘쳐난다

<논설주간 칼럼>‘○○포르노’가 넘쳐난다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18.11.01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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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포르노 천국인가. 인터넷에 범람하는 음란물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흔히 ‘먹방(먹는 방송)’으로 일컬어지는 ‘푸드포르노’는 TV를 점령한 지 오래됐다. 가난과 기아에 시달리는 사회적 약자를 자극적으로 묘사해 모금을 호소하는 ‘빈곤포르노’는 십여건이 전파를 탄다. 전 애인이 보복으로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는 범죄행위인 ‘리벤지포르노’도 새롭게 등장했다. 여기에 특정 신체부위의 검은 점 논란으로까지 번진 정치인 스캔들은 ‘정치포르노’로 언론을 통해 소비된다. 말초신경만을 자극하는 포르노에 빗대어 붙여진 새로운 용어들이다.

포르노는 포르노그래피의 줄임말이다. 성매매 여성(Pornoi)과 그림(grapos)이라는 그리스어의 합성어이다. ‘몸 파는 여성에 관한 그림’ 정도의 뜻을 지닌다. TV와 안터넷의 등장으로 ‘야한 동영상’으로 인식하게 됐다. 포르노는 여성을 성적 대상이나 상품으로 취급한다. 여성은 합리적 이성을 갖춘 존재가 아니라 성적 쾌락을 즐기거나 남자에게 종속된 물건처럼 취급한다. 이제 영역을 확장해 인간의 말초적 감정을 자극하는 현상에 붙는 접미어로 사용된다. 포르노는 앞에 붙는 단어에 따라 부정적 인식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푸드포르노는 1984년 영국의 저널리스트 로잘린 카워드가 ‘여성의 욕망’이란 저서에서 처음 사용했다. 시각적 자극을 극대화한 음식관련 콘텐츠를 말한다. 음식의 맛 보다는 색감과 과장된 분위기를 연출하여 식욕을 자극한다. 외국여행을 하면서 먹는 방송, 외국인이 한국음식을 먹는 방송, 맛집을 알려주는 방송 등 포맷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먹는 장사를 컨설팅하거나 포장마차를 차려 먹는 장사를 하는 방송까지 등장했다. 해외에서 ‘Mug Bang’이란 고유명사가 등장할 만큼 국내 TV는 푸드포르노의 온상이다.

푸드포르노는 폭식을 유발해 비만위험을 높일 우려가 크다. 보건복지부는 먹방을 ‘폭식조장 미디어’로 규정해 규제하겠다고 발표했다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정크푸드를 과도하게 먹는 모습은 위험성이 높다. 푸드포르노는 뇌를 자극해 불필요한 음식섭취 충동을 일으킨다. 자극적 음식을 먹으면 뇌에서 엔도르핀과 도파민이 증가하여 쾌감을 느끼게 한다. 이를 뇌가 기억했다가 맛있는 음식을 보기만 해도 다시 기분이 좋아지고 싶어서 식탐이 생긴다. 폭식을 유발해 고혈압과 고지혈증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빈곤포르노는 후원단체들이 모금을 호소하는 광고에 주로 나타난다. 앙상한 팔과 다리, 커다란 눈망을, 피골이 상접한 아이들의 고통이 자극적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꼭 등장하는 말. “여러분의 후원이 이 아이의 생명을 살립니다.” 영상들은 의도적으로 연출된 경우도 많다. 에티오피아의 식수난을 촬영하러 갔다가 어린 소녀에게 의도적으로 오염된 물을 마시게 한 경우도 있다. 아동 노동현장을 고발하기 위해 깊은 강물에 베트남 아이들을 수차례 빠뜨렸다가 건지며 촬영하기도 했다. 후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들의 인권을 침해해도 되는 것인가.

EU는 자극적 모금방송이 인권유린에 해당할 수 있다며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개발도상국 아동 관련 보도물의 취재·제작과정에서 이들의 권리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이 제정됐다. 촬영대상의 눈높이에서 찍을 것, 촬영거부의사를 표현하면 중단할 것, 평소하지 않는 일을 연출하지 말 것, 의도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노출하지 말 것 등 34가지의 세부사항이 담겨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권고결정 이후 노골적 영상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TV를 통한 빈곤포르노는 더욱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빈곤포르노는 또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제3세계 국가 사람들은 불쌍하다’는 식의 부정적 편견과 고정관념을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특정국가에 대한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를 새기는 것과 다름없다. 아프리카를 ‘가난과 죽음의 땅’으로 인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프리카보다 아시아에서 영양실조 등으로 죽는 아이들이 더 많다. 한해동안 아프리카에서는 440만명이 설사로 인한 탈수증 등으로 죽는다. 아시아는 830만명에 이른다. (구로나야기 데쓰코 ‘토토의 눈물’)

최근 가수 구하라씨와 남자친구였던 최모씨 간 폭행사건이 불거진 이후 최씨가 구씨에게 두 사람의 사생활 동영상을 보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른바 리벤지포르노의 등장이다. 법적 다툼을 떠나 유명연예인을 둘러싼 사안은 미디어의 먹잇감이 되었다. 인터넷 게시판 등에는 ‘구하라 동영상 구한다’는 글이 많이 올라왔다. 한때 사랑하는 사람과 나눈 추억을 담은 동영상이 범죄도구로 전락한 뒤 또다시 관음증에 취한 이들의 성적 욕구를 배설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여성단체 ‘불편한 용기’는 최씨를 규탄하고, 남성중심 문화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열었다. 이들은 국회의원 전화번호를 공개하며 문자공세를 유도하기도 했다. 복수를 뜻하는 리벤지라는 표현도 도마 위에 올랐다. 복수란 자신에게 피해를 준 상대방을 응징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전 애인과 헤어지는 것이 복수의 대상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포르노라는 말까지 덧씌우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언론과 경찰에서는 ‘디지털 성범죄’나 ‘불법 촬영물’로 바꿔 부르고 있다.

한국언론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배우 김부선씨의 스캔들로 요란하다. 진실여부를 떠나 언론은 선정적 보도를 서슴지 않는다. 김씨와 소설가 공지영씨의 통화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검은 점’ 논란도 불거졌다. 녹취파일은 인터넷을 타고 널리 퍼졌다. 급기야 이 지사는 병원에 가서 신체 특정부위에 검은 점이 없다는 사실을 셀프 검증하기도 했다. 국민의 관음증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언론의 보도는 도를 넘었다. 이 지사와 김씨, 그리고 공씨는 정치를 포르노 수준으로 떨어뜨린 장본인들이다.

이 지사는 김씨와의 관계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그었어야 했다. 결백하다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의혹을 털고 도정에 집중해야 했다. 이 지사는 선거과정에서 불거진 많은 의혹을 주워 담느라 헛된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김씨도 이 지사와의 관계를 세상에 알려 억울함을 풀려면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를 내놔야 한다. 그러나 그는 핵심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공씨는 녹취록을 유출한 사람을 고소했지만, 책임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정치포르노는 정치인에 대한 신뢰를 더욱 떨어뜨리는 암적 존재일 뿐이다.

김주언(전 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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