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주간 칼럼> 기차타고 서울에서 파리까지 가는 꿈

<논설주간 칼럼> 기차타고 서울에서 파리까지 가는 꿈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18.10.25 10:02
  • 수정 2018.10.2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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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서울역-평양역(도라산역) 열차표를 구입한 시민이 평양행 열차표를 보여주고 있다. 늦봄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마련된 이번 특별 편성 열차는 특별매표소에서 판매한 서울발 평양행 기차표로 도라산역까지 운행하며 도라산역에서 문화 행사를 개최했다.
지난 6월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서울역-평양역(도라산역) 열차표를 구입한 시민이 평양행 열차표를 보여주고 있다. 늦봄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마련된 이번 특별 편성 열차는 특별매표소에서 판매한 서울발 평양행 기차표로 도라산역까지 운행하며 도라산역에서 문화 행사를 개최했다.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라고.” 고 늦봄 문익환 목사가 1989년 방북을 앞두고 지은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의 일부이다. 지난 6월 고 문 목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열린 행사에서는 ‘평양행 열차표’가 발권됐다. 서울역 3층에 마련된 특별 매표소에서는 모스크바행 베를린행 파리행 런던행 열차표도 발권됐다. 전광판에는 ‘평양(도라산)’표시가 뜨고 탑승구를 안내하는 문구도 나왔다.
경기도 광명시는 지난해 말 ‘광명-파리 유라시아 대륙철도’ 가상티켓 배포 이벤트를 열었다. 출발 날짜는 2022년 1월 1일. 기차는 KTX 광명역에서 개성을 거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역과 모스크바역을 지나 프랑스 파리역까지 간다. 이벤트에는 3만명이 넘게 참여했다. 한반도와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열차여행은 낭만적 상상에 불과한가. 그저 ‘잠꼬대’에 그쳐버리는 것은 아닌가. 이제 이러한 상상이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니다. 잠꼬대만도 아니다. 늦어도 연말에는 남북철도 연결 착공식이 열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70년전만 해도 기차를 타고 개성과 만주를 넘어 유럽까지 갔다. 얼마전 끝난 인기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도 의병들은 열차를 타고 서울에서 만주로 넘어갔다. 구한말 헤이그 특사들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네덜란드로 갔다. 일제강점기였던 1936년 마라톤선수 손기정은 기차로 베를린까지 여행했다. 손기정은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에서 “어떤 날은 종일 보리밭 사이를 달리다가, 또 어떤 날은 호수를 끼고 한없이 달리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남북철로는 1951년 단절됐다. 이후 남측은 ‘대륙의 섬나라’가 되어 버렸다.
이로부터 66년이 지난 2007년 5월 남북철도가 연결돼 시험운행이 있었다. 경의선 문산역에서 개성역까지, 동해선은 금강산역에서 제진역까지 각각 30㎞ 구간이다.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단절되면서 꿈은 사라지고 말았다. 사그라들었던 꿈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은 세차례 열린 남북정상회담 덕분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두 정상은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에 합의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두 정상은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올해 안에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열기로 합의했다. 이달중에는 북한과 공동 현지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유엔사와 협의중이다. 남북은 지난 8월 군사분계선(MDL) 북측 구간을 공동 조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비무장지대(DMZ)를 관할하는 유엔사가 MDL통행을 승인하지 않아 무산됐다. 북미 비핵화협상이 교착상태여서 미국이 불편해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차 북미회담이 예정돼 있는 협상분위기가 바뀌면서 이번에는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 
“서울-신의주 구간 400㎞(직선거리)에 고속철도를 건설하면 2시간이면 갈 수 있어요. 베이징(北京)-신의주가 연결되면 3시간반 정도가 걸려요. 서울에서 베이징까지 고속열차로 주파하는 데 5시간반이면 가능하죠. 서울에서 아침 먹고 출발해 베이징에서 점심 먹으면서 회의를 할 수 있는 겁니다.” 나희승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원장의 말이다. 나 원장은 최근 열린 한국아카데미에서 남북철도 연결을 통해 ‘동북아 일일생활권’에 한발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의 철도를 새로 깔지 않으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동해선은 최고속력이 시속 20㎞에 불과해 그대로 쓰기는 어렵다. 경의선은 40~50㎞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나 원장은 남측이 보유한 기술력이면 개·보수를 거쳐 일주일 후에는 운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사람이 왕래하기에는 너무 속도가 느리다. 다만 화물이라면 경의선은 활용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북한 철도의 고속화가 시급한 이유이다. 
따라서 일부 세력은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거나 ‘대북 퍼주기’라는 비난을 퍼부으며 반대한다.  게다가 북한에 대한 국제제재가 지속되고 있는 시점에서 남한만 단독으로 나서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말처럼 모든 사안에 대해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엄연히 주권을 갖춘 독립국가일뿐더러 미국이 한국의 식민종주국도 아니기 때문이다. 현지조사나 착공식은 제재사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다만 DMZ가 유엔사 관할이기 때문에 유엔사와 협의하고 있는 것이다.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남한기준으로 추산한 비용은 별로 의미가 없다. 사업내용과 추진방식에 따라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나 원장은 “북한의 노동·토지와 남한의 자본·철도기술이 결합하면 남한의 4분의1 비용으로 물류망 건설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처음부터 ‘북한의 철도를 새로 깔아주자’는 것도 아니다. 1단계로 최소한 개·보수해 철도를 연결하고 물류사업으로 얻은 수익을 재투자한다. 2단계에서 북한철도를 개량하고, 마지막 단계에서 새로 건설하는 것이다.
남북철도 연결은 비용문제로만 접근해서도 안된다. 공항이나 도로는 누가 건설해도 이용할 수 있지만, 철도는 국적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북한철도를 고속화하면 신호체계와 제어수단, 플랫폼이 달라서 우리 열차가 그대로 가지 못한다. 우리가 건설해야 아무 제약없이 우리 열차가 달릴 수 있는 것이다. 비용보다 효용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동북아지역의 철도망 고속화에 힘을 쏟고 있다. 우리도 급변하는 동북아 교통망에 하루빨리 편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 2022년이 되면 프랑스 파리까지 기차로 갈 수 있을까. 서울역 플랫폼 전광판에 ‘평양역’ ‘베를린역’ 표시가 선명하게 표시되고 베를린행 실물 열차티켓을 구입하는 날을 상상해본다. ‘대륙의 섬나라’ 개구리에서 벗어나 대륙으로 뻗어나가 포효하는 호랑이의 꿈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 만주벌판에서 말을 달리던 선구자들의 기상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만주벌판을 지나 시베리아를 거쳐 베를린으로 가는 열차안에서 망망한 지평선을 바라보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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