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제작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영상 제작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 기자명 김병희 교수
  • 입력 2024.03.0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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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5, 미국의 오픈에이아이(OpenAI)가 문자 기반의 영상 생성 모델(text-to-video model)인 소라(Sora)를 공개하자 광고영상 업계가 술렁거렸다. 대화형 인공지능인 챗GPT를 만든 오픈AI의 후속 모델이라 더 관심을 끌었다. 하늘을 뜻하는 일본어 소라(, そら)’의 발음을 그대로 차용해, 인공지능 모델의 이름을 하늘로 정한 데는 텅 빈 하늘같은 상태에서 이용자가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하라는 의도를 담았다. 한 마디로 소라는 어떤 영상을 만들어달라고 작성하면 주문한 대로 최대 1분짜리 동영상을 곧바로 만들어주는 생성형 인공지능 모델이다.

오픈AI의 샘플 영상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 “반짝이는 네온사인과 생동감 있는 간판이 빼곡한 도쿄의 거리를 세련된 여자가 걸어가고 있다. 그녀는 빨간색 드레스에 검정색 가죽 재킷을 걸치고, 검정색 부츠를 신고, 검정색 지갑을 들고 있다. 빨간 립스틱에 선글라스를 쓴 그녀는 자신감에 넘쳐 당당하게 걸어간다. 축축하게 젖은 길에 화려한 조명이 반사돼 거울 효과를 만들어낸다. 많은 사람들이 걸어오는 모습도 저 멀리에 흐릿하게 보인다.” 프롬프트(지시문 작성 칸)에 이렇게 영상을 만들라고 입력하자, 소라는 지시한 그대로 영상을 생성해냈다. 선글라스 낀 여성이 카메라 앵글의 변화에 따라 도심을 걸어가는 영상을 보면 촬영 감독이 직접 찍은 것 같다. 배경과의 이질감도 찾기 어려우니 사람이 찍은 것인지 인공지능이 만든 것인지 영상 전문가가 아니면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광고 영상과 숏폼 영상 제작사들은 밥그릇 걱정을 하게 생겼다. 샘 올트만 오픈AI최고경영자는 당분간 한정된 창작자만 소라를 쓰도록 제한한다고 밝혔지만, 머잖아 들불처럼 번져나갈 것이다. 소라는 지시문을 인식해 1분 길이의 고화질 영상을 만들고, 프롬프트를 정확히 해석해 감정을 표현하는 캐릭터를 만들고, 사용자의 요구 사항이 현실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도 이해하고, 기존의 이미지로 동영상을 생성해내고(image-to-video), 기존 영상으로 새로운 영상을 만들기도 하고(video-to-video), 기존 동영상의 길이를 자연스럽게 늘이거나 두 개의 영상을 통합하는 기능도 제공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제한된 창작자만 쓰는 것을 어떻게 두 눈 뜨고 지켜보고만 있겠는가? 소라의 출현으로 인해 앞으로 예상되는 변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스마트폰이 나온 이후에 누구나 사진사가 되었듯이 앞으로 소라가 보편화되면 영상 제작이 무척 쉬워져 누구나 영상 작가가 될 것이다. 영상 촬영에 대한 기초 공부를 하고 영상 미학에 대한 감각을 조금만 기른다면, 누구나 숏폼 영상 작가가 될 수 있고 단편 영화 감독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콘티를 그리지 않고 글로 쓰기만 해도 되니까 작업 속도도 훨씬 빨라질 수 있다.

둘째, 소라가 생성해준 영상과 인간이 찍은 영상이 경쟁을 거듭할 것이다. 오픈AI에서 발표한 샘플 영상에서 선글라스에 비친 도시 풍경이나 모델의 떨리는 근육과 눈썹은 사람이 실제 촬영한 영상처럼 생생했다. 소라가 생성한 영상은 촬영 기법을 충분히 학습한 영상 전문가가 찍은 듯 다양한 각도의 앵글이 반영됐으니, 앞으로 소라와 인간은 영상미의 완성도를 경쟁할 것이다.

셋째, 소라가 보편화되면 영상 제작비가 대폭 인하될 것이다. 촬영하러 도쿄로 출장을 가지 않아도 된다. 콘티나 참고 영상 자료를 얻으려고 돈을 쓰지 않아도 되니 초기 비용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본 촬영을 할 때도 고가의 장비를 임대할 필요가 대폭 감소할 것이다. 그동안 고비용 때문에 영상을 제작할 수 없던 소상공인들도 광고 영상 제작에 참여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넷째, 오픈AI는 소라를 기반으로 텍스트와 영상 생성 분야로 서비스를 확장할 것이다. 영상 생성은 2024년의 주목할 만한 트렌드다. 기존에는 아이디어를 영상으로 옮기려 할 때 한계가 많아 실무에 바로 적용할 수 없었지만, 소라는 그런 우려를 상당 부분 해소했다. 따라서 앞으로 오픈AI가 영상 생성 분야의 강자가 될 가능성이 높고, 검색 기능을 개발해 구글에 도전할 것이다.

다섯째, 소라가 대중화되면 각양각색의 영상 창작자가 출현할 것이다. 결국 수준이 문제가 되겠지만, 누구나 광고 감독이니 영상 PD가 될 수 있고 웹툰 작가의 문턱도 낮아진다. 광고 분야에서 이강우 선생님이 크리에이터와 감독 사이에서 실력을 발휘해 1CM기획자(플래너)가 되었듯이, 창작자와 영상 감독 사이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인공지능 영상 플래너가 등장할 수도 있다.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소라가 만들어낸 영상이 완벽하지는 않다. 영상에 등장하는 피사체의 내용이나 구도를 세세하게 제어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수정해달라고 지시해도 완벽히 수정하지 못한다. 방향 감각을 잃고 좌우를 혼동하거나, 경우에 따라서 사건이 발생하는 시간 순서를 헷갈리기도 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앞으로는 이런 결함도 대폭 개선될 것이다. 기존에 나온 영상 생성 인공지능과 소라의 두드러진 차별점은 소라가 프롬프트의 지시문을 파악한 다음 지시문에서 언급한 사물이 실제 세계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 이해해서 영상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소라가 생성한 영상물은 이전의 영상 제작 도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한 현장감과 현존감(presence)을 구현한다는 뜻이다. 영상 제작에서의 이런 변화는 천동설이 지배적인 시절에 움직이는 것은 별이 아니라 지구라며 지동설을 처음으로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비견할 만하다. 소라의 기능은 계속 향상될 텐데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나 드라마 제작에도 폭 넓게 활용될 것 같다.

앞으로 소라는 가짜뉴스나 딥페이크에 악용될 가능성도 높다. 오용 가능성을 충분히 해소한 다음에 소라가 확산돼야 한다. 인공지능 기업과 창작자들 사이의 갈등 요인이었던 인공지능의 지식재산권 침해 문제도 앞으로 심화할 것이다. 소라가 생성한 영상에 인공지능이 만들었다는 워터마크를 삽입한다 해도, 지식재산권을 활용할 때의 직업윤리 문제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영상산업계의 일자리 위협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일보다 직업윤리를 정립하는 문제가 더 시급한 당면과제로 떠올랐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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