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 시인, 따스한 배려가 곳곳에 숨어 있는 '사는 거, 그깟' 출간

이호준 시인, 따스한 배려가 곳곳에 숨어 있는 '사는 거, 그깟' 출간

  • 기자명 정진영 기자
  • 입력 2024.02.04 19:59
  • 수정 2024.02.0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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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시집 '사는 거, 그깟' 표지
이호준 시집 '사는 거, 그깟' 표지

[데일리스포츠한국 정진영 기자] 2013년 '시와경계'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18년 첫 시집 '티그리스강에는 샤가 산다'를 선보였던 이호준 시인이 6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사는 거, 그깟'을 현대시세계 시인선 159번으로 출간했다.

이호준 시인은 산문집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안부’,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기행에세이집 ‘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 ‘문명의 고향 티그리스강을 걷다’, ‘나를 치유하는 여행’, ‘세상의 끝, 오로라’ 등을 출간하여 여행자로서의 성찰과 깨달음을 깊이 있는 사유로 풀어낸 문장가이기도 하다.

길은 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거나, 어딘가로 향해 길은 뻗어있지만 어디쯤에서 끝날지 알 수 없는 길 위에 시인은 서있다. ‘여행 전문가’로 알려진 그가 시를 쓰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여행과 시는 목적지가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것이 불안과 후회와 고통의 길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호준의 시집 '사는 거, 그깟'은 시적 방법론에서 첫 시집의 연장선에 있다. 첫 시집 해설에서 정한용 시인이 언급한 “시적 자아를 점진적으로 대상에 투사시키는 기법” 말이다. 시인은 대상과 자아의 상호 스밈과 투사, 전환을 입체적으로 구사하면서 대상과 내밀하게 조응한다. 

이호준 시인이 시를 쓰는 행위는 이 책의 대표시인 '배려'에서 잘 나타난다.

감씨의 배를 반으로 가르는 순간

불쑥 얼굴 내미는 잘 만든 수저 하나

긴 감의 씨는 긴 수저를 품고

둥근 감의 씨는 둥근 수저를 품는다

좀 뜬금없어 보이는 이 수저는

젖빛 감꽃이 감을 잉태하던 봄날부터

꼼꼼하게 준비했을 것이다

어느 노인 홍시로 헛헛한 속 달랠 때

흘리지 말고 떠먹으라고

씨마다 잊지 않고 챙겼을 것이다

-'배려' 전문

시상이 떠오르지 않아 헤매다가, 문득 소 발자국을 발견하듯 떠오르고, 마침내 소를 만나는것처럼 말이다. “감의 씨”가 소 발자국이라면, “감씨의 배를 반으로 가르는 순간” 발견한 “수저 하나”는 소가 될 것이다. 

소를 잡고 그 소를 길들이는 법이 다 다르듯, 감의 씨가 품고 있는 수저의 생김새도 다를 것이다. 시인은 소를 찾아나서는 일처럼 “감꽃이 감을 잉태하던 봄날부터” 감의 씨 속에 수저를 “꼼꼼하게 준비했을 것”이다. 자연의 배려이다. “홍시로 헛헛한 속”을 달래는 어느 노인에 대한 언급은 시인의 배려이다. 이처럼 이호준의 시에는 따스한 배려가 곳곳에 스며 있다.

류근 시인은 이번 시집에 대해 "멀리서 몸을 추스린 능선 같고 가까이서 등을 내어미는 지붕 같다"며 "시인 이호준의 시에는 욕망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세속이 그를 욕망하였으되 시인의 언어엔 그물에 걸릴 망설임조차 머물지 않는다"라고 평했다.

따뜻한 배려가 곳곳에 숨어 있는 이호준 시인의 시집 '사는거, 그깟'은 4일부터 전문 서점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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