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담임선생님을 사라지게 한 가해자는 어디로 갔는가

[기자수첩] 담임선생님을 사라지게 한 가해자는 어디로 갔는가

  • 기자명 한휘 기자
  • 입력 2023.11.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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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4일, 전국 각지의 초중등교사들이 교탁을 벗어났다. 누군가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누군가는 교육청 앞에서, 누군가는 길거리에서 너무 일찍 사그라든 청춘을 추모하며 ‘교권 보호’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충격적인 소식이 수일 전에 들려왔다.

지난 14일, 경찰은 지난 7월 서울서이초등학교의 1학년 담임 교사가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것에 관해 “지금까지 확보한 자료에서 범죄 혐의점으로 볼 수 있는 내용은 발견하지 못했다”라며 내사를 종결한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 이후 지속적인 교권 침해와 학부모의 갑질 행위 등 현직 교사들의 기본권을 위협하는 수많은 일이 대두됐고, 정치권까지 나서 교권 확립을 위해 여러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한 것을 생각하면 허무하기 그지없는 결말이다.

정말로 이렇게 지나가도 되는 일일까. 이미 숨진 교사의 유족을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내사 종결을 발표하며 경찰은 “고인과 학부모들 간 업무용 메신저 등 연락 내용, 일기장, 학부모들의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 주위 증언을 종합했을 때 폭언 등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고인의 학급 학생이 다른 학생의 이마를 연필로 그은 속칭 ‘연필 사건’으로 학부모에게 개인 휴대전화로 지속적으로 항의성 연락을 받았다는 의혹은 “학교 업무용 전화로 건 것을 착신전환 상태로 받았기에 개인 전화로 착각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관해 유족 측은 “경찰이 발표한 세부 내용은 대부분 거짓이나 확인되지 않는 말이었다”라고 지적하고 경찰의 수사 태도를 질타했다.

사실 지난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이 진행한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나 이를 토대로 이미 보도된 몇몇 사례만 되짚어봐도 이러한 결과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합동조사단은 지난 8월 4일 진행한 브리핑에서 ‘연필 사건’ 이후 학부모의 집요한 전화에 관해 고인이 동료들에게 어려움을 토로한 사실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알렸다. 아울러 1학기에 해당 학교 학부모들의 민원 내역을 입수해 확인한 결과 충분히 ‘악성 민원’으로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고, 학교 측에 업무 관련 상담도 수차례 요청한 것이 드러났다.

경찰의 해명도 이해하기 어렵다. “착신전환 때문에 개인 번호로 연락이 온 것으로 착각했다”라고 말했지만, 이는 바꿔 말하면 항의를 위해 집요하게 해당 교사의 업무용 번호로 연락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더구나 ‘착각’이라는 것 자체가 아직 추측의 영역이다. 무엇보다도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가장 결정적인 증거인 고인의 아이폰 휴대전화는 기술적 한계로 포렌식조차 진행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수사 결과는 ‘무혐의’와 내사 종결. 아직 밝힐 것이 많음에도 모든 것이 끝난 탓에 일각에서는 사건의 배경에 소위 ‘높으신 분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가질 정도다.

이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지 몇 년 안 된, 동년배 사회 초년생이 불합리 속에 세상을 떠난 일을 보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이 사건에 관한 책임을 피하려는 이들의 행태에 재차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내사 종결을 선언하며 경찰은 관련 학부모가 네티즌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에 관해서는 “이미 13명의 신원을 특정했고, 인적사항이 확인되지 않은 25건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할 것”이라고 알렸다. 한 명의 소시민이 죽은 일은 흐지부지하고, 베일 뒤에서 던진 고소장에는 철두철미하게 책임지는 모습. 씁쓸할 따름이다.

한휘 기자 hanhyee1111@dailysports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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