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프로 열기에 취한 한국 배구, 국제무대선 '도태'

[창간특집] 프로 열기에 취한 한국 배구, 국제무대선 '도태'

  • 기자명 설재혁 기자
  • 입력 2023.11.21 17:12
  • 수정 2023.11.2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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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사진=FIVB)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사진=FIVB)

[데일리스포츠한국 설재혁 기자] 2005년 2월 첫 시즌을 치른 후 V-리그는 어느덧 20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지난 2022~2023 시즌 관중 수 56만 845명을 기록하는 등 배구의 인기가 다시 옛 명성을 되찾고 국민들의 관심은 커졌다.

그러나 남녀 배구 국가 대표팀이 놓인 상황은 처참하다. 연이은 국제대회 부진으로 국제무대서 경쟁력을 잃어 큰 실망감만을 안겨주고 있는 상황이다.

여자 배구 대표팀의 급추락은 뼈아프기만 하다. 불과 2년 전 2020 도쿄올림픽에서 김연경, 양효진, 김수지 등 황금세대를 앞세워 4강 신화를 이뤄내며 배구의 인기를 끌어 올렸지만, 황금세대가 대거 은퇴하면서 급격하게 무너졌다.

도쿄올림픽 4강을 이끈 전임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 체제에서 전력 분석 코치였던 세자르 곤잘레스가 지휘봉을 물려받았지만 처참한 성적표만을 남기고 떠났다. 여자 대표팀은 2022년과 2023년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 네이션스리그(VNL)에서 2년 연속 예선 전패라는 희대의 불명예 진기록을 세웠다. 지난 2022년 9~10월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4연패를 포함하면 국제경기 27연패를 당하기도 했다.

부진은 끝이 아니었다. 폴란드 우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예선 C조에서 5연패를 당하며 올림픽 본선 출전까지 좌절됐다. 이후 여자 배구 대표팀은 항저우로 넘어가 아시안게임 메달 획득으로 반전을 꾀했지만 한 수 아래로 봤던 베트남에도 패하며 17년 만에 아시안게임 ‘노메달’의 수모까지 겪었다.

지난 9월 22일 중국 항저우 사오싱 차이나 텍스타일 시티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12강 토너먼트 한국과 파키스탄의 경기. 세트스코어 0-3으로 패한 한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9월 22일 중국 항저우 사오싱 차이나 텍스타일 시티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12강 토너먼트 한국과 파키스탄의 경기. 세트스코어 0-3으로 패한 한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남자 대표팀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20년 이상 올림픽 무대에 나서지 못하고 있고, VNL 역시 참가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또 최근 아시아 무대에서도 경쟁력을 상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암담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지난 7월 남자 대표팀은 VNL 진출 기회가 있는 아시아배구연맹(AVC) 챌린저컵에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아시아의 강자인 일본과 이란, 중국이 출전하지 않는 대회였지만, 준결승에서 바레인에 무기력하게 패해 VNL 복귀가 무산됐다.

이후 아시아배구선수권대회에서도 5위로 대회를 마친 남자 대표팀은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고개를 숙였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한국 최고 세터 한선수까지 대표팀에 소집하며 절치부심해 대회에 나섰지만 개회식을 하기도 전에 파키스탄에 완패를 당해 12강에서 탈락해 짐을 쌌다. 남자 배구가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건 1962년 자카르타 대회 이후 61년만.

V-리그의 산증인 IBK기업은행의 김호철 감독은 “시스템적인 부분에서의 문제를 바꾸지 않는다면 변화 없이 아쉬움의 연속일 것. 각자의 팀으로서가 아닌 한국 배구인으로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며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심각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13일 서울 송파구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배구 국가대표팀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공청회. (사진=설재혁 기자)
13일 서울 송파구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배구 국가대표팀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공청회. (사진=설재혁 기자)

남녀 대표팀의 처참한 성적으로 대한배구협회도 고개를 숙였다. 지난달 8일 배구협회는 사과문과 함께 남녀 국가대표팀 사령탑의 사임을 전했다. 협회는 “대한배구협회는 배구 국가대표팀의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등 최근 국제무대에서의 성적 부진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응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과 배구 팬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대한배구협회는 한국 배구의 미래를 위해 중장기 발전 계획을 수립 및 실행하겠다며 공청회까지 열었다. 

배구 국가대표팀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공청회에 참가한 각 분야의 패널과 각 시도 배구협회 관계자, 학교 지도자, 배구 팬 등 모두 한국 배구의 발전을 위해서는 유소년 및 국내 배구 지도자 육성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로 높였다. 

조선대학교 김민철 교수는 “유소년에 관련된 배구 생태계는 지금 완전히 무너져 있다”며 한국 유소년 배구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이어 “협회는 협회대로 지방은 지방대로 무너져있어 배구를 만들기 힘들다. 배구를 하는 학생 수는 감소하고 있고, 지도자들은 저임금을 받고 무기계약직이 돼서 기타 잡무까지 보고있어 선수들의 훈련 시간이 부족하다. 또 클럽은 많지만 엘리트까지의 육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배구의 성장시스템 고도화가 절실하다. 이를 갖추려면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철 교수가 제시한 자료에 의하면 최근 10년간 등록 배구선수 현황은 감소하는 추세다. 10년 전인 2014년(2230명)과 비교해 올해 2128명의 선수만이 등록하며 4.8%가 감소했다. 여자배구 대표팀이 도쿄 올림픽 4강 신화를 쓴 2021년 가장 많은 2330명의 선수가 등록됐지만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선수가 없으니 당연히 경기에 제약이 따른다. 지방의 한 고교 배구부는 미들블로커 포지션 선수가 아예 없어 레프트와 세터가 번갈아 가며 미들블로커로 뛰고 있다. 또 여러 지방의 학교는 최소 인원(6명+리베로)으로 운영되고 있어 암담한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도 유소년 배구 육성의 심각성을 토로했다. 한국중고배구연맹 이호철 실무부회장은 “학교 체육에 문제점을 한계점에 도달한 시기라 생각한다. 예전엔 어린 선수들을 조기에 발굴해 새벽 오전 오후 4차례 강도 높은 훈련을 했었다. 하지만 2010년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과 합숙 폐지, 기숙사 폐지, 정규수업 후 운동 원거리 학생 불가능 등 제약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성고등학교 김장빈 감독 역시 “국가적인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선수들의 연습 두 시간이나 세 시간밖에 못 한다. 체력 훈련과 웨이트 할 시간이 부족하다. 제도적인 부분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제무대 경쟁력을 되찾기 위해선 배구 지도자의 혁신과 쇄신도 절실해 보인다. 뉴스1 이재상 기자는 대한축구협회(KFA)를 예로 들며 “전임 지도자를 육성함과 동시에 연령별 대표팀을 장기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며 “정확한 비전이나 방향성 연속성들이 떨어진다 생각한다”고 전했다. 

강주희 한국배구연맹 심판위원장도 해외 사례를 전하며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강주희 심판위원장은 “전임 단장을 말하고 싶다. 전임 단장은 대회를 앞두고 미리 출국해 국가대표 감독의 훈련조건 등을 답사를 통해 모든 일정을 준비하고 대기한다. 대표팀이 일정에 맞춰 불편함 없이 오직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휘한다”고 말했다. 또 “현대 배구를 보면 해외에선 세터 코치, 리베로 코치, 윙 코치 등 포지션 별 전담 코치가 생겨 데이터기반의 배구가 대세”라며 국제무대의 흐름을 전하기도 했다.

대한배구협회는 이제 내년 2월부터 4월 중으로 새로운 남녀 대표팀 감독을 선임해 떨어진 위상을 되찾기 위한 새 출발을 예고하고 있다.

국제대회에서 암담한 현실과 마주하면서 최대 위기에 놓인 한국 배구. 이제는 유소년, 지도자 육성부터 시작해 정말 모든 것이 달라져야 할 때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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