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헤어질 결심

  • 기자명 오진곤 교수
  • 입력 2023.10.05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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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해 뜨는 방향이 동쪽에서 점점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우리는 해는 당연히 동쪽에서 뜬다고 생각한다. 하늘이 많이 보이는 정남향 집에서 사노라면 해가 뜨는 방향과 해의 높이가 계절마다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겨울철엔 거의 정남향에서 뜨는 해가, 봄이 되고 여름이 되면서 점차 동쪽으로 이동한다. 겨울철 해의 고도는 아주 낮아 낮이면 거실 깊숙이 햇볕이 들어온다. 여름철이 되면서 고도는 상당히 높아져 해가 지붕 바로 위로 지나가 거실에 햇볕이 거의 들지 않는다. 겨울철엔 따뜻하고 여름철엔 시원하다. 그래서 예전부터 집은 남향이어야 한다고 했다. 해 뜨는 방향이 점차 남쪽으로 이동하는 시기에 우리 집 들고양이 삼색이는 새끼들과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5월에 태어난 새끼 양이들은 이제 혼자서 잠도 자고 벌레도 잡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미는 새끼들이 눈에 안 보이면 다급하게 야옹거리며 새끼들을 찾았다. 새끼들도 어미가 안 보이면 걱정스럽게 어미를 찾곤 했다. 그러던 어미와 새끼들이 아침저녁 밥 먹는 시간 외에는 거의 따로 시간을 보낸다. 어미는 5개월 동안 하나하나 생존하는 법을 새끼들에게 전수했다. 새를 잡기 위해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법은 기본이고 두더지 잡는 법, 방아깨비랑 메뚜기 잡는 법, 그리고 다른 짐승들을 피해 엎드려 풀숲에 숨는 법, 심지어 배고플 때 뒹굴며 애교부리는 방법까지 가르쳤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2022이라는 작품이 있다. 감독은 이 작품으로 칸 국제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어느 날,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을 담당한 형사 해준(박해일)은 친절하고 예의 바르다. 해준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와 대면한다. 산에 가서 안 오면 죽을까 봐 걱정했다며 남편의 죽음 앞에서 전혀 동요나 슬픔을 보이지 않는 서래를 해준은 용의자로 생각한다. 해준은 심문 과정과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 탐문, 잠복수사를 통해 서래를 알아간다. 좀처럼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운 서래는 해준이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저하지 않고 그를 대한다. 진실을 숨기는 서래와 서래에게 의심과 호감을 동시에 느끼는 해준, 그들의 심리는 상당히 복잡다단하다. 영화는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한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관객에게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마디로 열린 작품이다.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를 향하고 있지만, 그 시점이 일치하지 않아 발생하는 안타까움을 탁월하게 그려낸다.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 박해일과 탕웨이 두 배우의 훌륭한 연기 덕분이다. 해준은 서래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이용했다는 배신감에 헤어질 결심을 하면서도 끝내 서래의 죄를 숨겨준다. 서래 역시 해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사랑하지만 헤어질 결심을 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최선을 다해 서로를 위해 헤어질 결심을 한다.

일본 가족 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 Nobody Knows, 2005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1988년 일본에서 실제 벌어진 나시 스가모의 버림받은 4남매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주인공 아키라 역을 맡은 야기라 유야는 2004년 칸 영화제 역대 최연소 남우 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영화는 아버지가 다른 4명의 사생아들이 엄마와 함께 이사 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도쿄의 한 작은 아파트에 이사 온 젊은 엄마는 집주인에게 식구가 없는 척하기 위해 12세인 장남 아키라를 제외하고 3명의 아이들을 두 개의 캐리어에 숨겨온다. 아이들은 외출은 물론이고 학교도 갈 수 없다. 집안에만 갇힌 듯 지낸다. 그래도 아이들은 엄마가 있어 행복하다. 어느 날 엄마는 다른 남자 친구가 생겨 아이들을 버리고 집을 떠난다. 엄마에게 버려진 아이들은 아키라의 힘겨운 노력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며 살아간다. 젊은 엄마는 자신의 인생을 위해 아이들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가출을 한 것이다.

올해 4월의 국내 방송사에서도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뉴스가 나왔다. 승훈이(가명)는 지난 2월이 첫돌이었다. 필리핀인 엄마가 승훈이를 가진 지 한 달 만에 한국인 아빠는 사라졌다. 승훈이 엄마는 한국 생활 3년째인 2021, 한국 남성과 교제를 시작했고 결혼 얘기까지 오갔다. 임신 사실을 알리자 남성은 집을 나가고 연락을 끊었다. 아빠 없이 태어난 승훈이는 국적이 없어 기본적인 복지 혜택을 받기도 어렵다. 3살 딸을 혼자 키우는 다른 필리핀 여성도 같은 처지이다. 소개로 만난 한국 남성과 동거했는데, 남성은 자신의 아이가 아니니 아이를 버리라고 요구했다.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소송을 했고, 유전자 검사까지 해 친자 확인을 받았다. 기자는 같은 처지인 엄마 6, 아이 7명을 만났다. 엄마들 국적은 필리핀, 베트남, 몽골 등이다. 국적도 거주지도 다르지만, 이역만리인 타국인 한국에서 아이와 함께 버려졌다는 그 충격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영아 유기는 1379, 영아 살해는 110건이다. 10년간 매달 영아 13명이 버려지고 1명이 숨진 셈이다. 누구에게 생명을 버릴 권리가 있는가? 들고양이도 새끼들과 헤어지기 위해선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수도 없이 반복해 가르치고 훈련한다. 영화 헤어질 결심속의 해준과 서래는 서로를 사랑해 서로를 위해 헤어질 결심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을 버리는 엄마나 아빠는 누구를 위해 아이들에게 그처럼 무책임 할 수 있는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2016년부터 무연고 유기 아동을 지원하는 <품다>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의 학습비나 의료비, 심리치료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유기 아동은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것에 대한 심리적 상처가 크다. 이런 상처는 발달 지연과 불안, 우울 등 정서·행동상의 문제로 나타난다. 우리 사회는 유기 아동들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그들이 사랑받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사회 국가적인 제도적 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오진곤(서울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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