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세상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세상

  • 기자명 오진곤 교수
  • 입력 2023.09.1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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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입이 돌아간다는 처서도 벌써 지났다. 밤의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떨어져 풀잎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는 백로도 지났다.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하다. 실제로 잔디밭이나 풒잎에 이슬이 상당히 맺혀 있어 신발이 많이 젖기도 한다. 태안 법산리는 바지락 캐기로 또 대표적인 작물인 마늘 심기 준비로 농어민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곧 다가올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을 대비해 이곳저곳 벌초를 하기도 한다. 2주 전에는 수퍼 블루문(Super blue moon)이 떠서 야구 중계하던 방송사 카메라가 달을 한가득 화면에 담아 보여주었다. 맨눈으로 보는 달도 평소보다 훨씬 커 보였다. 보통 보름달과는 다르게 정말 수퍼 문이었다. 지구와 거리가 가장 가깝다는 수퍼 문으로 달의 인력이 커져 밀물 때 집 앞 갯벌의 바닷물도 평소보다 훨씬 많았다. 머무르는 시간도 2시간 이상이었다. 이것이 달의 힘이구나 하는 것을 피부로 생생하게 느꼈다. 그믐달이 가까운 요즘은 앞 갯벌에 바닷물이 가득 차지를 않고 들어오는 듯 나가버린다. 달과 지구의 거리가 많이 멀어졌나 보다. 텃밭에는 지난봄 심었던 콩들이 하나둘씩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콩잎이 비슷해 모두 같은 콩인 줄 알았는데 열매의 형태가 다르다. 하나는 납작하고 하나는 길쭉하다. 이웃집에 물어보니 하나는 서리태고 하나는 팥이란다. 서리태는 서리 내리는 즈음 수확한다고 해 서리태라고 한다. 팥은 팥죽을 쒀 먹고 귀신을 쫓는다고 집안 이곳저곳에 뿌리기도 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부모에게서 자녀가 유전적으로 많은 것을 물려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물학적 관점으로 보면 유전학을 정의한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유전학은 생명체의 생명현상과 특징을 결정하는 모든 인자가 후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는 발견으로부터 시작됐다. 유전적으로 전달되는 많은 유전적 표현형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이 최근 유전학의 발전으로 가능해지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콩을 심어도 유전적 변형을 가하면 팥이 나오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유전을 결정하는 인자가 DNA상에 있으므로 유전적 표현형은 DNA의 변형을 통해 가능하다. 자연적인 DNA 염기서열의 변화인 돌연변이가 생기고, 이러한 돌연변이가 표현형의 변화를 발생한다. 이런 변화는 질병을 일으키기도 하고, 때로는 진화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유전학자들은 이야기한다.

빈센조 나탈리(Vincenzo Natali) 감독의 스플라이스(Splice, 2009)라는 복합 생명체에 관한 영화가 있다. 미국 제약회사에 다니는 유전공학자 커플인 클라이브(에드리안 블로디)와 엘사(사라 폴리)는 난치병 치료용 단백질을 만드는 연구를 한다. 연구 중 조류, 어류, 파충류, 갑각류 등의 서로 다른 DNA를 결합한 새로운 하이브리드 동물종을 만들어 명성을 얻는다. 엘사는 인간의 DNA를 이용하여 새로운 종을 만들고자 하는 위험한 실험을 시도한다. 제약회사는 윤리적인 문제로 그녀의 연구를 막는다. 제약회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엘사는 비밀리에 자신의 DNA를 이용해 결국 새로운 종을 만들어 낸다. 이 종은 인간의 얼굴, 새의 다리, 날카로운 독침이 있는 꼬리와 양서류의 폐를 지닌 생명체다. 엘사는 이 생명체에 끌려 결국 자신이 어릴 적 살던 집으로 몰래 데려간다. 엘사는 이 생명체를 드렌(Dren)이라 부르며 애정을 가지고 돌보기 시작한다. 단순한 생명체의 형태에서 빠른 세포 분열을 일으키며 빠르게 성장한 드렌은 다양한 종들의 특징을 드러내며 기이한 아름다움을 내뿜는다. 드렌은 성장하며 호기심도 많아진다. 자아가 형성되며 이성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처음에 엘사의 실험에 반대했고 드렌을 그것(it)이라고 부르던 클라이브도 드렌을 점차 생명체로 받아들인다. 인간의 지능과 감정을 지닌 드렌이 이성에 눈을 뜨면서 클라이브, 엘사 부부와 삼각관계를 이루는 장면에서 금기는 깨어진다. 인간과 잡종 생명체의 관계는 그리스 신화를 연상시킨다. 나탈리 감독은 사람 귀를 단 쥐의 사진을 보고 이 영화의 소재를 생각했다. 작가들과 함께 시나리오도 같이 쓴 나탈리는 탁월한 연출력으로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펼쳐간다. 그는 영화를 통해 인간 안에 깃든 야만성에 대해 쉼 없이 질문을 던진다. 드렌이 공격적인 성향을 띠게 된 것도 인간의 DNA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일을 저지르고 뒤늦게 후회하는 과학자 부부의 복잡한 심리와 그들이 자식같은 드렌에 대해 느끼는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다양한 단계로 발전하는 새로운 생명체의 모습은 인간 상상력의 결과물이면서도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유전공학의 발달로 이제 우리는 유전자를 편집하는 기술을 얻게 되었다. 이로 인해 유전적 질병의 치료뿐만 아니라 베이비 디자이너로 자녀의 유전자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유전 정보 및 유전자 편집의 힘은 윤리적, 사회적으로 수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생물 안정성이라는 기술상의 위험보다 더 심각한 것은 윤리적 의문이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유전자 편집은 잠재력 강화를 위한 유전자 성형의 경우 기회의 공평성과 결과의 평등, 그리고 절차적 공정성 등의 윤리적 원칙이 요구된다. 특히 베이비 디자이너라는 맞춤 아기의 경우처럼 다음 세대에 유전되는 생식세포의 유전자 편집은 가족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게 될 것이다. 윤리적 유전자 편집을 위한 도덕적 성숙 과정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이다. 아무리 유전공학이 발전하더라도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세상의 윤리는 유지되어야 한다.

오진곤(서울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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