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사회

분노의 사회

  • 기자명 오진곤 교수
  • 입력 2023.08.1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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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 개인의 생각이나 가치관의 많은 부분이 사회라는 공동체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현대인은 행복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공동체가 물질적 이익에만 몰두한다. 순수하고 자발적인 전인격적인 참여는 거의 불가능하다. 경제적 이익에만 혈안이 된 사회 공동체의 아귀다툼에 정신적 안식처의 최후 보루인 가정마저 파괴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고독사에 대한 통계를 발표했다. 2021년 고독사 사망자 수는 총 3,378명으로 최근 5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매년 남성 고독사가 여성 고독사에 비해 4배 이상 많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은 5~60대다. 대인 기피증이라는 불안장애로 진료를 받는 사람들도 많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17633,862명에서 2021819,080명으로 4년 새 약 30%나 늘었다. 이러한 고독사나 사회 불안장애 등으로 인한 대인 기피증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전반의 문제이다.

최근 신림역과 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등으로 우리 사회 전체가 불안에 휩싸이고 있다. 지난 3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서현역 흉기 난동 용의자가 작성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게시글이 빠르게 공유되고 있다. 올해 4월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게시글은 '진지하게 같이 세상을 경악시킬 공모자를 찾는다'는 제목으로 올라왔다. ‘그냥 아무나 죽이고 싶은데 같이 테러할 사람을 구한다. 단위는 수십에서 수백도 될 것이라고 했다. 이 게시글이 서현역 훙기 난동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이 제목만으로도 섬뜩하다. 가히 분노의 사회를 넘어선 증오의 사회가 아닐 수 없다.

<분노의 전쟁 Karmouz War>(Peter Mimi 감독, 2018)이라는 영화가 있다. 1950년대 영국군의 부당한 폭력에 이집트 경찰과 시민들이 저항하고 맞서는 전쟁영화이다. 1952년 영국이 이집트를 점령하기 전, 유세프 알 마즈리(아미르 카라라)는 알렉산드리아에 인접한 카라무즈에서 경찰서장을 맡고 있다. 어느 날, 한 소녀가 영국 군인들에게 참혹한 일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영국군 책임자 아담 장군은 유세프에게 사건의 은폐를 명령한다. 유세프는 그의 명령을 거역하며 상황이 악화된다. 주위의 동료들이 하나둘씩 목숨을 잃는다. 유세프는 자신의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한다. 어쩌면 승산이 없는 불가능한 싸움이다. 그는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이 전쟁의 원인이 된 분노는 자명하다. 이유있는 분노이고 이해할 수 있는 전쟁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 사회의 분노와 폭력은 이유도 원인도 없다.

이동우 인제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쓴 <분노의 사회, 해법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글이 있다. 이 기고에서 이교수는 한국 사회가 분노로 끓고 있다고 지적한다. 수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만연한 좌절과 분노를 지칭하는 분노 세대, 분노 사회 같은 사회학적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기고인 <분노의 흐름>에서는 한국 사회의 가장 강력한 집단 감정 중 하나가 분노라고 지적한다. 한국 사회의 분노에 대한 현상은 근·현대사의 고통에 대한 집단기억도 그 역할을 한다. 경찰청 치안 정책 연구소는 이미 수년 전에 <2016 치안 전망 보고서>에서 사회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반사회적 성향의 보복 범죄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 해 국민통합위원회가 발간한 <한국형 사회 갈등 보고서>우리 사회가 분노 사회를 넘어서서 원한 사회로 치닫고 있다고 진단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분노의 감정과 타인에 대한 공격적 표출이 급증하고 있다. 이는 생존의 위협, 욕구 좌절과 같은 분노 요인의 증가로 자신에 대한 성찰과 자기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 며칠 후, 인터넷에 '신림역 인근에서 여성 20명을 살해하겠다'는 글을 올린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살인 예고의 목적과 고의성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면서 범행 동기를 '여성혐오'라고 검찰은 적시했다. 그는 평소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인 '한녀'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죄다 묶어놓고 죽이고픔', '2분이면 10마리 사냥 가능' 등의 섬뜩한 표현을 했다. 그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에 대한 조사를 통해 올해 3월부터 최근까지 약 1,700여 개의 여성혐오 글을 올린 사실도 확인되었다. 그는 무직인 상태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인터넷에 빠져 지냈다. 자신의 불행한 처지가 여성들 때문이라고 인식한다. 그에 대한 통합심리 분석 결과, 높은 피해의식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적 생각, 사회에 대한 적개심 등으로 양분화된 행동 특성이라고 밝혀졌다.

분노와 폭력 없는 개인과 사회는 인류의 꿈이다. 어떻게 하다가 우리 사회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설명하는 것도 그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그리 간단치가 않다. 이처럼 나날이 증폭되어 가는 분노 사건의 범람을 막기 위해 분노의 정당화를 방지할 수 있는 사회 구조적 문제의 해결이 우선되어야 한다세계 어느 나라보다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고도 OECD의 각종 행복도 지수에서 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이다. 국가와 사회의 구조적 차원에서 사회 양극화 완화와 공명정대한 사회의 실현, 사회 안전망 구축이 절실하다. 가정과 학교에서는 합리적 의사소통 교육이 필수적이다. 억압적 공동체주의 문화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며, 개인적 구조적 차원에서의 해법이 필요하다. 달리는 자동차의 바닥만 바라본다면 자동차가 달리는지 멈추어 있는지 알 수 없다, 창밖을 바라보아야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인간도 나 자신만 바라보아서는 문제 해결을 할 수 없다. 나와 타인과의 관계 연구를 통해 나와 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마틴 부버(M. Burber)나와 너라는 저서에서 말했듯이, ‘혹은 그것없이는 가 있을 수 없다. 나와 타인과의 진정한 관계 속에서 개인이 사회와 공동체를 가꾸어 나갈 때, 분노의 사회는 평화의 사회로 변화될 것이다.

오진곤(서울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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