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은 힘을 가져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은 힘을 가져야 한다

  • 기자명 조성겸 위원장
  • 입력 2023.07.13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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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의 내저설상(內儲說上)에 세사람이 똑같은 말을 하면 믿는다는 고사가 나온다.  방공이 위나라 태자와 함께 조나라 도읍인 한단으로 볼모가 되어 가게 되었을 때, 왕에게 “지금 어떤 한 사람이 저자거리에 호랑이가 나왔다고 말하면 왕께서는 이를 믿으시겠습니까?”고 물었다. 이에 왕은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저자거리에 범이 나왔다고 말하면 그 때는 왕께서 믿으시겠습니까?”하고 묻자 왕은 역시 “믿지 않겠다”고 답했다. 방공은 다시 “세 사람이 똑같은 말로 범이 나타났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하니 왕이 믿겠다고 답했다. 저잣거리에 범이 나타나지 않았음은 분명하지만, 그런데도 세 사람이 다 같이 말하니 범이 나타난 것이 된다. 방공은 자신이 없는 동안 “신이 없는 동안 신에 대해 비판을 하는 사람이 세 사람 뿐이겠습니까? 원컨대 황께서는 이 점을 잘 살펴주시기 바랍니다”하고는 떠났다. 그러나 이런 부탁에도 불구하고 방공이 돌와왔을 때 왕은 여러 신하의 말에 홀려 끝내 방공을 만나주지 않았다고 한다.

여론이 중요시되는 오늘날 여론이 과연 제대로 국민의 의사를 나타낸 것인가에 대해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의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2021년에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경제적으로 발달한 세계 17개국에서 현재의 민주주의의 작동방식에 대해 불만족하며, 정치시스템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많았는데, 특히 한국은 84%가 현재의 정치시스템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조사된 나라 중에서 스페인에 이어 두 번재로 높은 비율이다. 이 결과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나라의 응답자들이 현재의 정치 시스템이 그들의 의견을 제대로 대표해 주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여론이 그 사회의 운영에 대표되어야 한다고 보지만 현재의 정치시스템이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은 힘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시스템 특히 선출된 정치인들이 여론을 제대로 대표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이는 한비자에 나온 고사가 보여주는 바와 같다.  

민주사회에서 여론은 정치인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여론조사다. 여론조사는 잘 활용된다면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강화하고, 국민의 신뢰와 참여를 증진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다. 그리고 다른 정치적인 장치보다 비교적 비용이 저렴하고 신속하게 여론을 파악해서 전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국민들의 의견이 보다 잘 존중될 수 있다.   

물론 현재의 여론조사는 이런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기에 개선할 부분이 많다. 품질이 낮은 조사가 부정확한 여론을 보여주기도 하며, 상충된 여론조사 결과 중에서 믿을 만한 결과를 선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에 대한 많은 연구결과를 통해 정확한 조사결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들이 이미 알려져있다. 따라서 조사가 과학적으로 그리고 투명하게 수행된다면, 여론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현재의 여론조사가 미흡한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개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우선 공공영역에서의 정책여론조사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현재도 많은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정치시스템이 여론을 제대로 대표해 주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공공영역에서의 정책여론조사를 확대하는 것은 다양한 국민들의 의견을 정책과정에 반영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 이는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보다 잘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정책여론조사가 과학적인 조사원칙에 입각하여 투명하게 수행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보완해야 한다. 현재의 정책여론 조사 방법 즉 설문작성방법, 샘플링 절차, 조사수행절차 뿐만 아니라 결과물의 공표와 해석의 투명성과 객관성이 중요하다. 이러한 장치는 공공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조사에 한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민간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정책여론조사는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공공영역의 경우는 조사의 과정과 결과물이 보다 투명하고 과학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공영역에서 양질의 정책여론조사가 확대되면 그것이 민간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정책여론조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된다. 

이념적 갈등이 심화되고, 언론이나 정치인 등 전통적으로 여론을 대표해 주는 기관들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는 현 상황에서 정책여론조사의 확대는 언론과 정치인들의 여론대표성을 확장함과 동시에 다양한 의견들 사이에서 진정한 여론을 도출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각자의 주장을 떠나 진실과 공정성에 기반한 의사결정과 사회적 합의를 모색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성겸(독자권익위원장·전 한국언론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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