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언론학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 기자명 김위근 언론학박사
  • 입력 2023.06.15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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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것처럼 대학 인문사회계열 전공 중 입시생이 가장 진학하고 싶어 하는 전공은 언론학 또는 미디어학 관련이다. 해당 전공이 개설된 대학에서 소위 입결도 최상위권이다. 이들 전공은 소위 ‘87년 체제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각 대학에 앞다퉈 개설됐다. 철학, 각종 문학 등 인문학 전공들이 통폐합되거나 사라지고 있는 지금, 인문사회계열 전공 중 가장 많은 대학에 개설된 전공 중 하나로 꼽힌다. 더불어 우리나라가 미국 다음으로 언론학박사가 많다는 얘기도 있다. 대학 학부에 관련 전공이 개설된 비율로 따지면, 우리 대학이 최고일 것이다.

우리나라 언론학 역사의 연원을 1959년 한국언론학회 설립으로 본다면, 60년이 훨씬 넘는다. 생각보다 긴 역사에 놀랄 이가 여럿일 게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언론학 또는 미디어학 관련 전공만큼 그 명칭이 숨가쁘게 변화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2000년 이전까지 가장 대표적 명칭은 신문방송학이었다. 언론학, 미디어학, 커뮤니케이션학, 신문학, 언론정보학, 언론홍보영상학 등도 이 전공을 가리키는 것들이다. 현재는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이라는 명칭이 대세다. 다루는 분야는 또 얼마나 광범위한가. 명칭에서 유추할 수 있는 저널리즘뿐 아니라 정치, 사회, 심리, 언어, 정보 등 분야도 포함한다. 여기에 더해 빠지지 않는 분야는 광고와 홍보다. 이들 분야를 단독으로 개설한 전공을 포함하면, 언론학 또는 미디어학 전공의 외연은 훨씬 더 넓어진다. ‘학문의 십자로라는 별칭으로도 모자랄 정도다.

이렇게 우리나라 대학에서 이 전공이 많이 개설되고 입시생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가 뭘까? 물론 현대사회에서 언론이나 미디어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인터넷으로 언론과 미디어는 우리 일상생활에 편재돼 있다. 새로운 언론 현상, 미디어 현상이 나타나는 간격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거대 자본이 모이고 운용되고 있다. 언론은 모르겠으나 미디어에 투영된 삶은 대부분 화려하다. 그래서 이 전공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자연스러워 보인다. 또한 콘텐츠와 기술의 융합을 통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전공으로 이만한 게 없다. 그럼 언론학 또는 미디어학을 전공한 학부생의 만족도는 어떨까? 정확한 통계 수치를 찾아볼 수 없지만, 개인적 경험으로는 그리 높지 않다. 아니, 낮다고 말하는 이를 많이 봤다. 모두는 아니지만 수강한 교과목에 대한 실망이 크다고 했다. 특히 전문직 교육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많이 들렸다. 자신의 인풋만큼 대학 교육에서 아웃풋을 만들어줘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하다는 볼멘소리였다. 기존 언론학 또는 미디어학 전공 교육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다.

이와 관련해 눈여겨볼 만한 문헌이 있다. 한국언론학회 미디어·커뮤니케이션미래위원회가 2022년 발간한 미래를 준비하는 미디어커뮤니케이션교육: 새로운 기술에 조응하기. 여기에서 대학 교수 및 언론·미디어 관련 종사자로 구성된 한국언론학회 회원 87명을 대상으로 한 서베이 결과를 볼 수 있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의 새로운 교육 방식과 관련해 프로젝트 기반의 창작 및 제작 역량을 강화하는 실습 중심 수업이 증가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 응답자는 71.3%(동의하지 않음 4.5%), “한 수업 내에서 기술교육과 이론교육을 강의자들이 서로 분담하는 협업형 수업이 확충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한 동의는 63.2%(동의하지 않음 8.0%)였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의 학과 체계와 관련해서는 단일 전공학과 개념에서 벗어나 융합 환경에 적합한 플랫폼형 학과 체계로 변화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한 동의는 78.2%(동의하지 않음 3.4%), “산학협력 중심의 실용적 협력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한 동의는 63.2%(동의하지 않음 6.9%)로 나타났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의 경쟁력에 대해서는 높다는 의견이 28.7%(낮음 27.6%)에 불과했다. 언론 전문가들도 전공 경쟁력을 낮다고 평가했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교육 방식의 적극적 채택과 전공 체계의 혁신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우리나라 언론학 또는 미디어학의 위기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바로 상시적 언론 위기다. 대학 학부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련 전공이 개설돼 있고 두 번째로 많은 언론학박사가 있는 나라에서, 언론은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각종 언론 관련 지표는 위기의 심화만을 가리킬 뿐이다. 추락하고 있는 자존감과 사명감은 언론인을 언론산업에서 멀리 밀어낸다. 이제 관련 전공에서 언론인을 희망하는 이는 소수다. 개설 전공 과목에서 저널리즘 관련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한 학문 분야를 통시적이고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역사만한 것이 없다. 관련 전공이 개설돼 있는 그 많은 대학 중에 언론사를 가르치는 곳은 몇이나 되나. 급변하는 언론 현실에 맞춰 전공 과목을 유연하게 개설하는 곳은 또 얼마나 될까. 전공 교육에서 현상만을 분석해 고담준론을 설파하고 있진 않나. 언론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는 언론학자는 많으나 현실적 해결 방안을 고민하고 제시하는 이는 얼마나 되나. 비판의 칼날이 무디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나. 6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우리 언론학에서 한국적 이론은 과연 무엇이 있나.

현재 우리나라 언론학 또는 미디어학 전공 교육에서 미국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해외 학위를 취득한 교수의 대부분은 미국 대학 출신이다. 대학 학부 기준 전공 개설 비율로만 따지면 미국 역시 우리나라를 따라올 수 없다. 대체적으로 미국에서 언론학 전공의 본격적 개설은 대학원 과정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전문대학원, 즉 프로페셔널스쿨로서 저널리즘스쿨이 존재한다. 저널리즘스쿨은 비즈니스스쿨, 로스쿨, 메디컬스쿨 등과 함께 미국의 대표적 프로페셔널스쿨이다. 이들 프로페셔널스쿨은 이론뿐만 아니라 실무가 강조된다. 다양한 전공을 마친 이들에게 저널리즘 실무를 교육시켜 전문 언론인을 양성하는 구조다. 이들은 저널리즘스쿨 과정에서 취재, 편집 등을 하고 언론매체를 운영해보기도 한다. 학부 중심이면서 언론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이수할 수밖에 없어 정작 필요한 전문직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우리나라 언론학 전공과 큰 차이다.

언론학 교육이 바뀌어야 우리 언론의 위기를 조금이나마 타파할 수 있다. 많은 대학에서 언론인을 목표로 하는 이들만을 위한 전문직 교육 과정을 단독으로 개설할 수 있어야 한다. 인터넷 환경으로 언론매체의 설립이 과거 신문이나 방송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손쉬워진 지금, 언론매체를 운영하고 각종 저널리즘 실험을 하는 경험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언론에 대한 비판과 조롱 전에 언론학 교육의 현실을 돌아봐야 한다. 언론 위기의 큰 뿌리 중 하나가 언론학 교육이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김위근(퍼블리시 최고연구책임자·언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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