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그리고 전원생활 12년의 단상

귀촌, 그리고 전원생활 12년의 단상

  • 기자명 박창희 독자권익위원
  • 입력 2023.06.1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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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서울에서 20여년을 생활하다 지금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으로 귀촌해 생활하고 있다. 노후에는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전원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기회가 생겨 귀촌한 지 벌써 12년째가 된다.

지난해에는 제2의 직업을 위해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해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그러다보니 전원주택용 토지 소개를 부탁하거나 전원생활에 대해 물어보는 지인들이 많다. 필자가 그랬던 것처럼 조용한 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노후를 즐기길 희망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실감한다. 꼭 노후가 아니더라도 주말에 대도시를 탈출해 전원에서 휴식을 취하기 원하는 사람들 또한 많다. 그래서 5일은 도시에서, 2일은 농촌에서 생활한다는 의미에서 ‘52이라는 말도 생기지 않았나 싶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귀농어·귀촌인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귀농·귀촌 인구는 515434명으로 전년보다 4.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귀농을 제외한 귀촌(동지역에서 읍·면으로 이동한 경우)인구는 495658명으로 전년 대비 3.9% 늘어났다. 농식품부는 귀농·귀촌 인구 증가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사회적·경제적 여파, 농촌에 대한 관심 증가, 도시주택 가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귀촌생활 12년의 소감을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완벽하게 좋은 것은 아니다. 세상사 무슨 일이든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지 않던가.

우선 좋은 점은 누구나 느끼는 것이겠지만 주변 경치와 공기가 좋다는 것이다. 특히 봄부터 가을까지는 경치가 좋아 유토피아가 따로 없는 것 같다. 요즘 같은 녹음방초(綠陰芳草)의 계절에는 눈 가는 데마다 온통 푸르름이다. 특히 집 뒤쪽은 잣나무가 많고 낮은 산이라서 공기 또한 맑고 상쾌해서 좋다.

집 뒤뜰에 심은 매실과 블루베리는 수확을 며칠 앞두고 있고, 앵두와 보리수는 열매가 빨갛게 익어 오고가며 따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복숭아도 가지마다 탐스러운 열매를 달고 익어가고 있다. 마당 한쪽에 조성한 텃밭에는 상추·고추·토마토·가지·호박·배추 등이 자라고 있다. 상추는 일찍부터 크게 자라 마당에서 삼겹살 구이를 할 때마다 식탁을 풍성하게 만든다.

하지만 대도시와 떨어져 있고 단독주택이다 보니 불편한 점도 적지 않다. 특히 혹한의 겨울에는 눈 때문에 도시의 편안한 아파트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종종 든다. 더구나 필자가 사는 집은 약간 경사진 곳에 위치해 눈이 올 때마다 그때그때 직접 치워야 한다. 길이 사도(私道)라서 200미터 정도 되는 오르막길을 치우는 것은 오로지 주민들 몫이다. 게다가 밤에 눈이나 비가 내리면 길이 얼어 새벽 출근길에는 차를 세워 둔 마을공터까지 아이젠을 신고 내려가야 할 때도 있다. 별장용이 아닌 일상생활용 전원주택이라면 반드시 겨울철 눈을 염두에 둬야 한다. 지대가 높은 곳이 확 트여 전망은 좋지만, 눈이 오면 곤혹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렇다고 봄, 여름, 가을이 마냥 편하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바로 잡초와의 전쟁이 이어진다. 날벌레, 곤충, 뱀 등과도 친해져야 한다. 어찌 보면 그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곳에 사람이 침범해 온 것이라서 오히려 인간이 그들에게 미안해해야 한다. 벌레, 뱀 등은 그렇다 치더라도 풀은 매번 관리를 해줘야 한다. 필자는 주말마다 집 주변과 법면, 도로변, 텃밭 등에 자라는 풀을 뽑거나 벤다.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주말마다 하지 않으면 집 주변이 엉망이 된다. 아내는 마당과 텃밭 풀을 뽑느라 손가락에 관절염이 생겼다고 투덜댄다.

과수도 틈틈이 농약을 해 줘야 온전한 열매를 먹을 수 있다. 처음에는 친환경 과일을 먹겠다고 농약을 안 했더니 온통 벌레들 몫이 됐다. 아무리 내가 먹을 과일이라도 100% 무농약 재배는 쉽지 않다. 농약을 좀 덜 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요즘은 농약도 인체에 덜 해롭게 나오고, 독성이 약해 안전기준만 잘 지키면 괜찮다고 본다.

이렇듯 귀촌 후 전원생활은 좋은 점도 있는 반면, 불편한 점도 많다. 또 도시에 비해 각종 문화적 인프라가 부족해 심심함도 감안해야 한다. 여유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반복되면 심심하고 지루하다. 전원생활을 하려면 이러한 불편한 점 까지도 감내할 각오를 충분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몇 년 살다가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시행착오를 하게 된다.

전원생활을 꿈꾼다면 인근 도시와 접근성이 좋고, 마을과도 너무 동떨어지지 않은 곳에 터를 잡는 것이 좋다. 그래야 적당히 사생활도 보호되고, 마을사람들과 교류도 가능하다. 특히 겨울철 눈을 감안해 경사지고 외진 곳보다는 평지를 추천하고 싶다. 아주 외진 곳에서 유유자적하며 한적하게 사는 것은 단지 꿈일 뿐이지, 보통의 사람들에겐 쉽지 않는 일이다. 인간은 결국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박창희(독자권익위원·전 농민신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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