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을 이어온 충성심… 바티칸의 ‘스위스 근위대’

500년을 이어온 충성심… 바티칸의 ‘스위스 근위대’

  • 기자명 한휘 인턴기자
  • 입력 2023.05.0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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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스위스 근위대 신병 충성 서약식 장면 (사진=AFP/연합뉴스)
교황청 스위스 근위대 신병 충성 서약식 장면 (사진=AFP/연합뉴스)

[데일리스포츠한국 한휘 인턴기자] 역사책에서 본 것 같은 투구와 갑옷. 중세시대에서 들고 온 듯한 무기. 눈에 확 띄는 색상의 옷가지. 마치 중세사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지만, 이는 2023년 바티칸의 모습이다.

지난 6일 오후 1시(현지시각), 바티칸 사도궁의 성 다마소 안뜰에서 교황청 스위스 근위대 신병들의 충성 서약식이 열렸다.

교황청 스위스 근위대는 교황청 소속의 준군사조직으로, 정식 군대가 없는 바티칸에서 헌병대와 함께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둘뿐인 집단이다. 헌병대가 경찰과 마찬가지로 바티칸 전체의 치안 유지와 각종 통제에 힘을 쏟는다면, 스위스 근위대는 교황이 거주하는 사도궁의 치안 유지를 비롯해 교황의 신변 보호를 중심으로 하는 경호 업무를 주로 맡는다.

스위스 근위대의 유래는 약 500여 년 전 제216대 교황 율리오 2세(재위 1503~1513)가 창설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용병 일을 주 수입원으로 삼던 당대 스위스인들은 누구보다도 용맹하게 전투에 임했고, 그만큼 용병으로서의 명성이 드높았다. 교황청 역시 이전부터 스위스 용병의 실력을 알고 있었고, 율리오 2세의 즉위와 함께 본격적으로 이들을 용병으로 고용한 것이다.

스위스 근위대는 그 명성에 걸맞게 교황을 향한 충성심을 보였다. 1527년 신성 로마 제국과의 전쟁에서 신성 로마 제국 카를 5세(1530~1558)가 보낸 군대에 로마가 함락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용병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 도망치기 바빴지만, 스위스 근위대만큼은 달랐다.

이들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적군에 대항하며 끝까지 싸웠고, 교황 클레멘스 7세(재위 1523~1534)의 목숨을 보전하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스위스 근위대는 끝내 전멸했으나, 목숨을 아끼지 않는 이들의 충성심에 감격한 교황청은 이후 스위스 출신 용병들을 교황청 근위대로 기용하기 시작했다. 이 전통은 지금까지 남아, 교황청 근위대는 전부 스위스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위스 근위대 신병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EPA/연합뉴스)
스위스 근위대 신병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EPA/연합뉴스)

스위스 근위대는 모병제를 시행하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선발한다. 스위스 국적을 가진 19~30세의 174cm 이상인 미혼 남성 가톨릭 신자만 지원할 수 있으며, 스위스에서 기초 군사훈련을 이수한 상태여야 한다. 한때 순혈 스위스인만 인정했으나, 세계화 추세에 따라 현재는 스위스 국적자라면 인종은 제한이 없다.

이렇듯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선발하는 만큼 임무 역시 특별하다. 스위스 근위대는 교황을 경호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만큼 전원이 각종 군사훈련으로 철저하게 단련된 경호 요원들이다. 이들은 교황을 직접 경호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제복을 벗고 여느 나라의 경호원처럼 정장과 개인화기로 무장한다. 중세시대의 갑주 등 예스러운 복장은 행사 등에서 착용하는 의장용 예복인 셈이다.

현대화된 전통 아래에서 스위스 근위대는 오늘도 교황을 지킨다는 소임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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