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스포츠한국 한휘 인턴기자] 서울에서 고려 왕실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을까.
수도문물연구원이 최근 서울 도심에서 발견된 고려 시대 추정 건물터가 왕실의 행차와 관련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수도문물연구원은 8일 "서울 종로구 신영동의 한 신축공사 부지에서 확인된 유적을 조사한 결과, 13세기 전반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밝혔다.
해당 유적지는 지난해 12월부터 수도문물연구원이 발굴 조사를 진행하던 곳이다. 도시형 생활주택 신축 부지로, 지난 3월 이곳이 고려 중기 공적 기능을 한 건물터로 추정된다는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이곳에서는 축대와 기단 등의 보존상태가 양호한 건물지 4동을 비롯해 계단, 배수로, 석축 등이 확인되었다. 특히 건물지 가운데 한 곳은 유적의 잔존 규모가 길이 21.5m, 너비 5.5m에 달하는데, 서쪽으로 이어지는 듯한 흔적이 있어 규모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막새(처마 끝에 놓는 수막새와 암막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 청자 조각 등 유물도 발굴되었다. 눈에 띄는 유물은 기와 1점인데, 이 기와에는 ‘승안 3년’(承安 三年)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승안’은 중국 금나라 장종(재위 1189~1208) 시대의 연호로, 이 유적지가 고려 시대의 것임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흔적이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연구원은 "출토된 유물 등을 볼 때, 신영동 유적은 고려 중기에 축조돼 후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밝혔다. 더불어 "발굴 현장에서 11∼14세기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여러 유물이 나왔다. 특히 건물지가 조성된 기반 층에서는 13세기 전반의 청자 조각이 다수 확인됐다"라고 언급했다.
서울 도심에서 고려 시대로 추정되는 건축 유적이 제대로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3월 16일 연구원이 주재한 전문가 검토 회의에서도 “서울 지역에서 고려 공적 건물군 확인 사례는 매우 드물어 보존가치가 높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연구원은 이번에 발굴 조사를 진행한 신영동 유적이 고려 왕실과 관련된 시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 시대 서울 북부 일대는 고려의 별경(지방 행정을 효율화하기 위해 설치한 일종의 광역시) 가운데 하나인 ‘남경’으로 지정된 적이 있다. 숙종(재위 1095~1105) 재위기에 풍수지리에 근거해 남경 일대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1104년에 남경 궁궐이 완공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더불어 신영동 유적 인근에 장의사지(장의사 터)와 승가사가 위치한 점도 주목할만하다. 연구원은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에는 고려 왕들이 장의사와 승가굴(승가사)에 행차한 기록이 여럿 확인된다“라고 언급했다. 여러 정황을 보아 신영동 유적이 고려 시대 왕실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는 이유다.
오경택 수도문물연구원장은 "신영동 유적은 고려 중기에 축조돼 후기까지 사용된 유적으로 판단된다"며 "서울 지역의 고려 관련 유적과 유물을 비교·연구할 때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원은 오는 10일 오후 1시에 현장에서 발굴 조사 성과를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