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버스 막기’인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버스 막기’인가

  • 기자명 노찬혁 인턴기자
  • 입력 2023.04.27 10:27
  • 수정 2023.04.27 10:32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내 축구 팬들의 ‘버스 막기’가 잦아지고 있다. K리그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버막’이라는 줄임말을 사용 중이다. 과거 강등권 팀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버스 막기가 급격하게 늘어나더니 올 시즌 초반부터 대유행 수준이다. 

버스 막기란 팬들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퇴근하는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탄 버스를 막아선 뒤 감독을 내리게 만들어 사퇴 요구, 전술에 대한 질의응답을 하는 것이다. 

현재 K리그에선 이 버스 막기가 잦아졌다. 2023시즌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전북 현대모터스와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벌써 버스 막기를 경험했다. 

과거의 전통 강호 수원 삼성은 올 시즌 이미 팬들이 버스를 2번이나 막아섰다. 지난 시즌 11위를 기록하며 승강 플레이오프(PO)까지 갔던 수원 삼성은 가까스로 PO에서 FC 안양을 꺾고 1부 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수원 삼성은 올 시즌도 7라운드까지 2무 6패로 최하위(24일 기준)에 머물고 있다. 

팬들의 시선은 싸늘할 수밖에 없었다. 이병근 전 수원 삼성 감독은 이미 버스에서 두 차례 내려 팬들 앞에 섰다. 3라운드 수원FC와의 수원 더비에서 1-2 패배를 기록하자 올 시즌 첫 번째 버스 막기 사태가 발생했다. 

수원 삼성 팬들은 지난달 19일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대전 하나 시티즌과의 4라운드 경기에서 1-3으로 완패하자 폭발했다. 팬들은 K리그 최초 2라운드 연속 버스를 기다렸다. 이병근 전 수원 삼성 감독은 버스에서 내린 뒤 “A매치 휴식기 이후 성적을 내지 못할 시 책임을 지겠다”라고 말했다. 

2022시즌 FA컵 챔피언 자리에 오른 전북 현대의 사정도 다를 것 없었다. 지난 1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맞대결에서 패배한 뒤 팬들은 분노했고, 김상식 전북 감독이 탄 버스는 움직이지 못했다. 

결국, 지난 18일 수원 삼성은 이병근 감독의 경질을 결정했다. 과연 그것이 팬들이 이병근 감독 경질에 영향을 주었을까. 아니다. 팬들의 경질 요구를 해왔던 버스 막기 사태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북 현대 김상식 감독 역시 경질을 요구받았던 버스 막기 사태 이후 팀을 계속 이끌고 있다.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감독과 선수단의 마음엔 상처만 남고, 팬들의 답답함만 증폭될 뿐이다.

과거 프로축구보다 먼저 출범한 프로야구에선 버스 막기가 비일비재했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삼미슈퍼 스타즈가 최하위에 머물자 팬들이 버스 앞에서 난동을 부리고 선수들이 버스에 탑승하지 못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팬덤은 스포츠 산업과 경기력의 에너지가 되기도 하고 스포츠의 정치화와 팬심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팬들의 맹목적이고, 반복적인 버스 막기가 지양돼야 하는 이유가 이 지점이다. 

버스 막기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 스포츠의 부끄러운 자화상으로 기록돼 있다. 팬덤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성숙하고 품격있는 스포츠 문화의 권리와 의무가 동반되고 있다. 구단 역시 팬들과 공식 소통 창구를 활성화 해야 한다. 

팬과 구단이 상호존중하는 토대 위에서 비로소, 한국의 스포츠 문화를 건강하게 뿌리내리고, 대한민국 스포츠 리그도 가일층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