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 기자명 오진곤 교수
  • 입력 2023.04.2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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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전원생활로 두 번째 봄날을 맞고 있다. 그동안 감자와 고구마를 많이 먹고 살았으면서도 심고 기르는 방법은 이제야 알았다. 감자는 알을 심고 고구마는 순을 심는다. 콩도 모든 콩이 다 밖으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완두콩이나 강낭콩은 줄기에서 열매를 맺지만 땅콩은 땅속에서 열매를 맺는다. 올봄에는 제일 먼저 당근 씨앗을 구해 고랑을 내고 줄이 지게 뿌렸다. 소위 줄 뿌리기 방법이다. 기온이 떨어지자 노심초사 차광막을 당근밭 위에 덮었다. 혹 씨앗이 얼어 싹이 트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서이다. 2주일 3주일이 지나도 도무지 소식이 없다, 우연히 집을 들른 이웃이 차광막을 덮은 당근밭을 보고 소리쳐 말한다. “당근은 햇빛을 받아야 싹이 터요.” 후다닥 차광막을 벗기고 삼 사흘이 지나자 자그만 싹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감자알을 열심히 쪼개 심고 물을 주는데 또 이웃이 소리친다. “감자는 물주지 마세요.” 감자는 알 자체의 수분과 영양분을 토대로 싹이 나온다. 자기 몸의 양분으로 싹을 트게 하는 것이다. 가히 자기희생적이다. 텃밭에서 채소 작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그것들의 한살이를 보면서 무엇을 생각할까?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52촌이나 43촌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일주일에 5일이나 4일은 도시에서 이틀이나 삼일은 시골에서 지낸다는 의미이다. 이웃집 40대 중반의 젊은 부부도 이곳에 농막을 짓고 주말에 열심히 텃밭을 가꾼다. 대기업 연구팀장이라 많이 분주할 듯도 싶은데 주말이면 어김없이 초등학생 딸과 함께 텃밭을 가꾸고 있다. 상추 쑥갓은 기본이고 수박 호박 등의 씨앗을 직접 발아시켜 키운다. 작년에 작은 씨앗에서 마침내 열매가 열리자 어린 딸의 얼굴이 기준이 되어 큰놈’, ‘작은놈으로 구분해놓고 온 가족이 즐거워한다. 이런 주말 일상들을 유튜브에 올려 다른 사람들에게도 텃밭 가꾸기의 기쁨을 전한다. 구독자가 1000여 명이나 된다. 아마추어의 텃밭 가꾸기의 영상을 즐기는 많은 이들도 자연과의 삶을 동경하는 것일 테다. 텃밭 가꾸기에 적극적인 어린 딸과 유튜브 구독자들은 텃밭에서 무엇을 배우고 즐길까?

주말이 되면 태안의 해변 길을 걷는 여행객들이 부쩍 많아진다. 작은 돌들이 깔려 있는 곳에서는 돌마다 색이 다르고 문양이 다른 것에 발길을 멈추곤 한다. 하트 모양이 뚜렷한 돌이라도 볼라치면 어김없이 환호성이 터진다. 사계절이 뚜렷한 금수강산은 기적 같은 시간이 쌓여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 됐다. 왜 서해 5도 해안절벽을 10억 년 지질 박물관이라고 하는가? 암석은 생명을 읽어내는 중요한 코드이며, 아직도 미답의 영역이다. 요즈음 여행 패턴도 올레 걷기에서 지질 트레일로 바뀌는 추세다. 단순 풍광 구경이 아니라 우리와 더불어 사는 자연의 이력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개인이나 지인 중심의 여행보다는 가족 단위의 참여도 많아지고 있다. 태안군 파도리 해변은 센 파도와 파랑의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해식애와 해식동굴이 있다. 파도리 해식동굴 앞에 서면 이색적이고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되어 기념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다. 인생 샷을 찍으려고 영겁의 세월을 견디어 온 해식동굴 입구에 선 연인들은 찰나의 인생길을 어떻게 생각할까?

산책 중에 만나는 태안 근소만은 우리나라 최대 바지락 산지이다. 근소만은 태안군 근흥면과 소원면이 품고 있는 해역으로 이 일대의 바지락은 갯벌에 식물성 플랑크톤 등 먹이가 풍부해 살이 통통하고 맛이 뛰어나다. 전국적인 인기를 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으로도 수출되고 있는 경제적 자원이다. 주민들이 물때를 맞춰 일제히 바지락을 캐러 갯벌로 들어가는 경운기 100여 대의 행렬은 가히 장관이다. 이 바지락 생산량도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서해안 갯벌이 간척과 개발로 이루어지면서 펄이 단단하게 굳어지고 있다. 이는 바지락, 조개, 꼬막, 굴 등 패류의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는 한 가지 원인이 되고 있다. 경기도 갯벌에 서식하는 식용 가능한 패류 9종 중 전체 생산량의 75%를 차지하던 바지락, 모시조개, 3종이 사실상 멸종 위기에 내몰렸다. 달랑게나 방게, 칠게 등 게류를 비롯하여 펄 갯벌에 사는 저서생물들은 고온건조한 여름과 기온이 낮은 겨울에는 더 깊게 굴을 판다. 소위 굴착행위를 하는 것이다. 펄 갯벌의 저서동물들의 굴착행위로 서식 깊이와 공간도 넓어지고 갯벌에 산소와 수분이 공급된다. 갯벌이 썩지 않고 유지되도록 일조하는 것이다. 태안군과 주민들이 몇 년 전부터 이 해역 4곳에 게르마늄 성분이 함유된 자갈을 살포하여 명품 '게르마늄 바지락 생산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게르마늄은 인체에 유입된 산소의 효율적인 활동을 돕고, 항암효과를 높여주고 면역력 강화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바지락을 캐러 나갈 때도, 게르마늄 살포 때에도 어장 관리선과 바지선 외에 경운기, 굴착기 등이 동원된다. 갯벌도 논이나 밭과 같은 땅이고 농사를 짓듯이 관리하고 가꾸는 것이다. 갯벌을 통해 박테리아와 식물성 플랑크톤, 저서생물들, 물고기와 새, 인간들도 모두 생명체로서의 먹이사슬 속에 연결되어 있다. 생물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현재의 우리와 미래의 후손들을 위한 자연환경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만들어질 것인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자연은 동등하고 귀하다는 가치 인식과 공감으로부터 상생과 공존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갑자기 동네 한 집에서 저녁 먹으러 오란다. 4월 중순부터 5월 한 달 동안 숭어가 밀려온다고 하시던 문씨 아저씨가 숭어 열댓 마리를 잡아 오셨다. 그 이웃집 아저씨는 바닷물이 들어오기 조금 전 갯벌에 나가서 낙지 대여섯 마리를 잡아 왔다. 문씨 아저씨는 숭어회 접시에다 살짝 데친 낙지를 초고추장과 함께 내오신다. 예전에는 그저 줍줍했었는데 이제는 귀해졌다고 웃으신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마음씨 넉넉한 좋은 이웃 사람들 속에서 갓 잡아 온 싱싱한 숭어회와 낙지를 먹을 수 있을까? 오늘도 여명에 밖으로 나가 밤새 울고 있는 소쩍새에게 인사한다, “소쩍새야! 좋은 아침!”

오진곤(서울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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