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관리법 개정안 파장과 ‘쌀의 수모’

양곡관리법 개정안 파장과 ‘쌀의 수모’

  • 기자명 박창희 독자권익위원
  • 입력 2023.04.2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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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법(‘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뭔가요? 왜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까지 행사하는 거죠?“ 최근 사무실 동료가 <농민신문> 기자로 오래 근무했던 필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아는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했지만, 귀에 와 닿지 않는 듯했다. 이는 그 동료뿐만이 아니라 국민 상당수가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표피적인 언론 보도만을 보면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정도로 흘려버릴 수 있다.

이번 양곡법 개정안의 핵심은 쌀이 수요에 비해 35% 초과 생산되거나, 쌀값이 직전년도에 견줘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 전량을 매입하도록 하는 자동시장격리제를 의무화 한 것이다. 이 개정안이 지난 323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44일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로 되돌아온 양곡법 개정안은 다시 표결에 붙여졌지만, 재적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라는 의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413일 폐기됐다.

이번 양곡법 개정안은 농업계에 깊은 상처만 남겼다. 쌀값 하락에 대한 안전장치를 기대했지만 정치권에서 공방만 거듭하다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법안이 통과할 경우 매년 1조원 이상의 재정 투입이 필요한 데다 쌀 생산과잉을 부를 것이라고 주장했고, 야당은 쌀농가의 안정적 수익을 보장하고 식량안보를 위해 양곡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맞섰다. 정작 농업계는 시장격리 의무화 등을 통한 쌀값 안정에 초점을 뒀는데, 정치권은 시장격리 의무화의 부작용만을 두고 요란한 정쟁을 벌인 것이다.

사실 쌀은 경제논리로만 본다면, 당연히 사양산업이고 일찌감치 구조조정 됐어야 마땅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7으로, 1991(116.3) 대비 절반으로 줄었다. 1인당 하루 쌀 소비량은 155g으로 밥 한 공기 반정도에 불과하다. 이에 쌀의 구조적 공급과잉이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산 쌀 생산량은 376t으로 전년 대비 3% 감소했는데도 쌀 수요량 대비 약 93000t의 공급과잉이 발생했다.

농업계 입장에서 보면 쌀은 과잉생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주요작물이다. 쌀이 전체 농업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5%에 달하고, 전체 농가의 40% 가량이 쌀농사를 짓는다. 특히 최근엔 농자재 값이 치솟아 지난해산 쌀 생산비가 8% 정도 올랐지만, 순수익은 37%나 줄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쌀을 대체할 만한 마땅한 소득작목이 없다는 게 정부와 농업계가 안고 있는 깊은 고민이다.

그럼, 경쟁력 없고 사양산업으로 분류되는 쌀을 포기해야 할까? 필자는 쌀 산업은 일정부분 구조조정이 필요하지만, 끝까지 포기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는 연평균 곡물수요량 약 2000t 중 매년 1600t 가량을 수입하는 세계 5대 식량수입국이다. 밥쌀용 쌀을 제외하곤 밀옥수수 등 가공용과 사료용 곡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2034월 코로나19로 인해 식량위기에 경고음이 울렸다. 세계 3위 쌀 수출국인 베트남을 비롯해 러시아·중국·캄보디아·카자흐스탄 등에서 곡물 수출을 축소하거나 중단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자국의 식량 수급이 불안해지자 당장 곡물 수출부터 통제하고 나섰다. 평소엔 남아돌아도, 기후변화나 흉년 등으로 갑자기 부족할 경우 평소 몇 배의 웃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것이 식량이다. 쌀을 식량안보차원에서 접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쌀값이 비싸다고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민 1인당 하루 쌀 소비량은 밥 한 공기 반정도에 그친다. 이는 쌀값으로 환산하면 하루 460원 정도이고, 한 달로 쳐도 14000원 정도에 불과하다. 커피 석 잔 값이면 한 사람이 한 달 동안 먹을 쌀을 구입할 수 있다. 우리나라 쌀값이 외국에 비해 비싸기는 하지만, 실제 생활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식량은 돈만 있으면 아무 때나 구할 수 있는 공산품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비근한 예로 우리나라는 1980년 냉해로 쌀 생산량이 급감하자 쌀을 외국에서 수입해야 했지만, 국제 쌀값이 56.4%나 폭등하면서 식량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흰 쌀밥에 고깃국을 배불리 먹는 것이 소원이던 때가 있었다. 이번 양곡법 개정안 파장이 식량안보차원에서 우리민족의 혼이 담긴 주식을 보존하고, 쌀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더불어 쌀 소비를 밥쌀용은 물론, 가공용으로 더욱 확대하는 수요측면의 대책도 깊게 고민 해야할 것이다.

박창희(독자권익위원, 전 농민신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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