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헤는 밤

별 헤는 밤

  • 기자명 오진곤 교수
  • 입력 2023.04.13 09:33
  • 2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의 시가 저절로 읊어지는 태안 법산리의 밤이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 온 날 밤 밤하늘의 별이 이처럼 많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가슴이 벅차올라 울컥했다. 어릴 적 외갓집의 평상에 누워 수많은 별을 본지 수십년 만에 본 밤하늘의 별 천국이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빛이 물들은 밤같이 까만 눈동자라는 노래도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아름다운 별밤이다.

몇 년 전 국내 방송사의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제목만으로도 시청률이 높게 나올 것이라는 예상처럼 이 드라마는 시청률 확보에 성공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모 방송사의 한밤중의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도 얼마나 많은 청춘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가. 그 프로그램은 지금까지도 방송 중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별은 천문학자들의 망원경이나 책 속에만 있지 않고 우리들의 일상과 문학작품, 영화나 드라마 등 예술작품에도 수시로 나타난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별의 세계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미술작품 중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이라는 작품이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일 것이다. 이 작품은 1972년부터 미국 뉴욕시의 근대미술관(MOMA)에 상설 전시 중인 작품이다. 밤 풍경을 그린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 고질적인 정신질환으로 인한 광기와 고독, 자신의 작품을 알아주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원망을 예술로 승화시킨 세기의 걸작이다. 별이 빛나는 밤은 그가 폴 고갱과 다투고 자신의 귀를 자른 이후 요양원에 있을 때 그린 것이다. 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당시 고흐의 화풍이 완숙의 경지에 올랐음을 보여준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밤하늘을 표현하는 짙은 푸른색이 화폭 전체를 지배한다. 화폭 오른쪽 상단의 노란색으로 두껍게 둘러싸인 오렌지색 그믐달은 마치 태양처럼 빛난다. 밤하늘에는 별 주위를 둘러싼 흰 무리와 노란 별들이 어우러져 존재감을 뽐낸다. 고흐가 그린 밤하늘의 풍경을 보는 우리는 현기증의 세계로 빠져든다. 밤하늘과 별과 달을 표현한 파랑과 노랑색이 보색 관계이기 때문이다. 하늘 가운데에는 푸른색과 흰색과 노란색의 나선형의 구름이 거대하게 용솟음친다. 별과 달, 밤하늘과 구름은 사실 그대로의 색이 아니다. 그것은 고흐의 영혼 속에 감추어져 있는 상상의 색이다. 고흐에게 색의 본질은 눈에 보이는 사실적인 색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과 영혼을 휘감고 도는 느낌과 영감의 색채이다.

미국의 우주론 학자인 로렌스 크라우스(Lawrence Krauss)가 쓴 무로부터의 우주 A Universe from Nothing란 책이 있다. 이 책은 우주에는 왜 무()가 아닌 무엇인가()가 있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는 매일 밤마다 허블 망원경을 통해 밤하늘을 관찰한다. 우주에는 은하계가 2천억 개 이상이 있고, 각 은하계마다 1천억 개 이상의 항성이 있다. 태양도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 천체들을 거느리고 다른 항성들과 마찬가지로 은하 주위를 공전한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2천억 곱하기 1천억 개 중의 하나이다. 한마디로 거대한 우주 속에 있는 미세한 먼지 정도의 존재이다. 그 지구라는 행성에 우리가 살고 있다.

과학적 지식은 어떤 사물이나 사건의 양상만 알려준다. 식물학자가 꽃을 설명한다면 꽃의 생물학적 양상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 꽃의 아름다움이나 그것이 우리들 마음에 주는 즐거움이나 기쁨의 근원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 어느 아버지가 똑똑한 아들을 미국 유학을 보내 천문학을 전공하게 하였다. 아버지는 몇 년 동안의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과 저녁 산책을 나갔다. 유난히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 아들이 참 아름답다고 감탄을 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크게 실망을 한다. 천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어떻게 별을 보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별은 가스나 광물질로 구성되어 있고 엄청나게 높은 온도로 달아올라서 빛을 내는데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별의 또 다른 본질을 놓치고 있다. 별에서 아름다움을 제거해 버린다면 그건 천문학자의 별일지 모르나 우리가 아는 별이 아니기 때문이다.

로렌스 크라우스는 그의 저서에서 결국은 우주가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결론을 제시한다. 무에서 창조된 우주가 한없이 팽창하다 어느 순간엔가는 축소되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우주론 학자의 연구결과물일지라도 난 결코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거대한 우주에 비해 먼지만한 지구에서 바라보는 수많은 밤하늘의 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주 만물을 창조한 조물주가 이 아름다운 우주 세계를 소멸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나에게는 있다. 오늘도 아내는 초저녁부터 날 밖으로 불러낸다. “여보 저 금성이 초승달과 가장 가까운 날이래요. 일생에 한번 볼까 말까 한 대요. 저기 오리온 별자리는 봄이 오면서 서쪽으로 이동했네. 넘 예쁘지 않아요?” 그런 아내에게 난 은근히 자랑한다. “여보 올 여름에는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가 쏟아질 예정이에요. 우주 공간에 흩뿌려진 먼지 부스러기들이 지구 대기와 충돌하여 쏟아지는 유성우지아내는 감탄하며 내 손을 가만히 붙잡는다. 아련한 달빛 속에 별이 쏟아져 내린다. 밤하는 저만큼에서 윤동주 시인이 미소를 띠고 있다.

오진곤(서울여대 명예교수)

저작권자 © 데일리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키워드
#오진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