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축구장 찾은 임영웅과 영웅시대의 품격 그리고 존중

[기자수첩] 축구장 찾은 임영웅과 영웅시대의 품격 그리고 존중

  • 기자명 우봉철 기자
  • 입력 2023.04.13 09:00
  • 수정 2023.05.29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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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경기장을 찾은 임영웅과 팬클럽 영웅시대가 축구 문화를 향한 존중, 성숙한 관람 문화의 품격을 보여줬다. 앞으로 K리그를 찾을 유명인들과 그 팬클럽이 교과서로 삼아도 될 모습이었다.

지난 주말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대구FC 간 하나원큐 K리그1 2023 6라운드 경기에 가수 임영웅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대 구분 없이 엄청난 인기를 지닌 임영웅이기에 그의 경기장 방문은 화제였다. 티켓은 예매 시작과 동시에 빠르게 팔려나갔고, 수많은 ‘어머니’ 팬들을 비롯한 4만 5007명이 관중석에 자리 잡았다. 코로나19 이후 한국스포츠 최다 관중 수다. 국가대표 경기를 방불케하는 관중 동원력에 임영웅을 K리그 홍보대사로 임명해 매 라운드 순회공연을 열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 정도.

다만, 일각에서는 임영웅의 경기장 방문에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주객전도를 우려한 목소리였다. 아울러 이날 홈팀이었던 FC서울은 과거 초대 가수에 한번 데인 적 있었다. 서울은 지난 2010년 3월 전북 현대와 치른 홈 개막전서 걸그룹 티아라를 초대했는데, 이들이 원정팀인 전북을 상징하는 형광 녹색 옷을 입고 왔다. 쉽게 비유하자면 한국에 관광 오는 여행객이 기모노를 입고 입국한 꼴이었다. 당연히 홈팬들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모든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임영웅은 이날 등번호 ‘12번’이 새겨진 서울 유니폼을 입고 등장했다. 12번은 서울 서포터즈 ‘수호신’의 상징 번호다. 서울의 홈경기에 방문했기에 수호신의 입장에서 행동하겠다는 의미가 담긴 선택이었다. 이 같은 모습에 서울 팬들도 ‘서울과 함께 하는 영웅은 수호신’이라는 걸개로 그를 환영했고, 시축에 나서자 연신 이름을 외쳤다.

임영웅의 센스는 하프타임 공연 때도 빛났다. 임영웅은 물론 함께 무대를 꾸민 댄서들 모두 축구화를 신고 그라운드에 나선 것. 혹시 모를 잔디 손상을 방지하기 위한 배려였다.

팬클럽 영웅시대의 성숙한 관람 문화와 축구팬 존중도 돋보였다. 이들은 경기 전부터 팬카페를 통해 축구장 매너와 관련된 공지를 게재했다. ‘임영웅을 상징하는 하늘색은 이날 원정팀인 대구 구단의 색이니 피하자’, ‘N석과 S석은 서포터즈 좌석이니 양보하자’, ‘중도 이탈 없이 끝까지 경기를 관람하고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자’ 등이었다.

실제 대다수의 영웅시대 회원들은 이날 홈팀 서울을 상징하는 검은색과 붉은색 의상을 입고 경기장을 찾았다. 그리고 그저 임영웅만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경기에 집중하며 선수들의 플레이에 박수와 환호를 보냈고, 축구 팬들과 파도타기 응원도 함께 하며 완전히 녹아든 모습을 보였다.

또 임영웅의 하프타임 공연이 끝난 뒤에도 경기장에 남아 끝까지 관전했고, 경기 후에는 머문 자리를 깔끔히 치우고 퇴장했다. 과거 지방 축구장에서 유명 가수의 하프타임 공연이 끝난 뒤 우르르 빠져나갔던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좋은 의미의 ‘그 가수에 그 팬’이다.

사실 그동안은 유명인들의 시축 및 하프타임 공연 등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던 경기장에서의 매너, 축구팬 만의 문화를 존중하며 어우러지는 모습을 잘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굽 높은 구두에 푹 패인 잔디를 보고 있자면 ‘굳이 불러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임영웅과 영웅시대의 상암월드컵경기장 방문기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다른 팬 문화를 존중할 줄 아는 이들과 함께한 행사는 모범적인 마케팅 사례가 됐다.

긍정적 에너지와 함께 축구 열기를 더욱 뜨겁게 만든 임영웅과 영웅시대. ‘임영웅 효과’를 지켜본 다른 구단들도 곧장 초대 가수 물색에 나서지 않았을까.

우봉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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