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켜야 할 계절

우리가 지켜야 할 계절

  • 기자명 오진곤 교수
  • 입력 2023.03.3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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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가을 태안의 법산리라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얼마간 때도 없는 이웃집 수탉 우는 소리에 잠을 설치곤 했다. 어린 시절 외가에서는 해가 뜰 무렵 새벽녘 수탉이 길게 목청껏 울면 외조부께서 안방 쪽문을 열며 일어나시곤 했다. 닭 키우는 이웃집에 닭들이 왜 때도 없이 우느냐고 물어보았다. 기상천외한 대답이 돌아왔다. 원래 수탉 한 마리에 암탉 다섯 마리가 정상인데 수탉이 많다 보니 수탉들이 서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운다는 것이다. 어느 날 삼계탕 먹자고 연락이 왔다. 그리고 수탉들 우는 때가 새벽녘으로 돌아왔다. 제때 맞게 행동하고 우는 소리를 내는 것이 인간에게나 짐승에게나 필요하다.

기다리던 봄이 왔다. 봄이 되니 조용하던 동네가 많이 분주하다. 이곳 법산리는 마늘과 고추와 생강이 주요 생산작물이다. 밭농사를 짓는 한편으로 4월부터 11월까지는 바닷가 갯벌에서 잡는 바지락이 이곳 주민들의 큰 수입원이다, 갯벌에 나가 가정당 16kg의 바지락을 잡아 어업계에 납품하면 하루 18만여 원이 통장에 바로 입금된다. 그래서인지 다른 농어촌보다 이곳 법산리 사람들은 사는 모습이 더 여유롭다. 자녀들도 대부분 대학에 보내고 유학을 보낸 집들도 있다. 조만간 바지락잡이가 시작되면 농사가 더 분주해지니 모두들 지금부터 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마늘밭과 고추밭 만들기가 한창이다.

태안에서 남쪽행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자면 대규모의 철새 도래지 천수만을 지나게 된다. 이 천수만은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이 야심차게 밀어붙인 서산 간척지 개발 사업의 결과이다. 당시만 해도 쌀이 너무 중요하던 시절이다. 정주영 공법이라고 알려진 유조선 공법으로 빠른 바닷물의 조수를 막아 약 8.4km에 달하는 방조제를 성공적으로 완성했다. 여의도 면적의 40배에 달하는 농지가 개발된 것이다. 이곳 법산리에서도 간척지 개발 사업에 대한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농지보다는 갯벌에서 생산되는 자원의 이득이 더 크다면서 주민들은 반대했고 갯벌은 그대로 남아있게 되었다.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환경적 측면을 고려해 볼 때도 참 현명한 판단이었다. 갯벌에 사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광합성을 하여 뿜어내는 산소량은 산림의 40여 배가 넘는다고 한다. 그 갯벌에도 봄이 오고 있다.

지난 겨울 동네 아우네 부부 덕분에 홍합과 해삼을 채취하는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홍합과 해삼은 11월부터 2월 말까지가 제철이다. 그 외 계절에는 독성을 품고 있어 먹을 수가 없다. 아우뻘 되는 부부가 서울에서 잘 운영하던 학원들을 정리하고 법산리로 이사를 했다. 바다와 갯벌이 너무 좋아 서울에서도 수없이 해루질을 다니다가 아예 이곳에 정착했다. 직접 설계해서 지었다는 창고에는 집을 짓고도 남을만한 도구와 자재들이 가득하다. 어려운 용접도 쉽게 하는 그는 동네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일꾼이다. 참 부지런하고 심성이 고운 아우네 부부도 봄이 되니 더더욱 분주해진다. 며칠 전 3월 중순부터 참나무에 표고버섯 종균을 심는 시기라면서 우리 집에도 다녀갔다.

국내 방송사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 이라는 작품이 있다. 201112월부터 20131월까지 모두 7회에 걸쳐 방영되었다. 지구 온난화 문제와 이상기후에 대해 많은 파장을 일으킨 프로그램이다. 비밀의 대륙이었던 남극, 얼음대륙의 펭귄을 주인공으로 지구의 온난화 문제를 심도 있게 파헤쳤다. 이 얼음대륙에 나타나기 시작한 이상기후는 지난 수십 년간 70% 이상의 펭귄 목숨을 앗아갔다. 그뿐만 아니라 물개, 혹등고래, 바다코끼리까지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그들의 생존을 빼앗는 지구 온난화와 이상기후는 이제 남극만의 문제가 아닌 전 지구의 문제로 이미 나타나고 있다. 최근엔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려 2030년경엔 북극의 얼음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보고서도 있다.

어느 날, 집 앞 소근만 바다 밀물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아랫집 할머니께서 요새 옛날보다 바닷물이 더 많아졌어.” 하셨다. 예전에는 썰물 때 바로 집 앞 갯벌에 나가면 바지락과 백합 같은 조개류와 낙지도 거저 줍듯 하셨다는데 요새는 거의 잡기 어렵다. 최근 발표된 해양수산부 보고서를 통해 가까운 서해안 새만금 백합 등 조개 개체수가 줄어든 이유를 찾아보고 할머니 말씀이 맞는 것을 실감하였다. 전남 무안 갯벌의 백합 종자가 북쪽으로 흐르는 해류를 타고 새만금 갯벌로 올라와야 하는데 기후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 등 요인으로 백합 종자 수가 급격히 준 것이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주변 해역의 수온은 약 1.35도 올랐고 전 세계 평균 수온 상승률 보다 약 2.5배나 높다. 해수면이 상승하는 것도 해양생물 개체 수가 줄어드는 것도 해양생태계, 나아가 전 지구생태계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인과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작년 다보스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앞으로 10년 이내 우리에게 닥칠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기후위기를 꼽았다.

우리는 지구 온난화와 이상기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전문가들의 일만이 아니다. 여름에는 덥더라도 에어컨 사용을 절제하고, 휘발유 차 대신 전기차를 사용하고, 자가용 대신 자건거를 이용해 출퇴근하는 등의 실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때와 무관심하게 무방비 상태로 지낼 때 우리 후손들이 살아가게 될 환경은 확연하게 다른 모습일 것은 자명하다. 미래 세대도 봄이 되면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고, 밭에는 감자를 심고 당근 씨를 뿌리고 강낭콩도 심을 수 있도록 지금 우리가 이 계절을 지켜야 한다. 달빛 세상 같은 아름다운 세상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지구 온난화와 지구 환경문제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이는 우리 모두의 일이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오진곤(서울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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