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창작자 무너뜨리는 불공정 계약...저작권 보장은 기본 가치

[기자수첩] 창작자 무너뜨리는 불공정 계약...저작권 보장은 기본 가치

  • 기자명 박영선 기자
  • 입력 2023.03.30 00:52
  • 수정 2023.03.3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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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박영선 기자] 지난 11일 인기 만화 ‘검정 고무신’의 이우영 작가가 세상을 등졌다. 그는 ‘검정 고무신’의 캐릭터 저작권을 두고 출판사 형설앤과 오랜 법정 소송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만화협회를 비롯한 문화계는 故이우영 작가를 추모하고, 저작권법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함께 발 벗고 나섰다. 

‘검정 고무신’은 1992년부터 2006년까지 이우영·이우진 형제와 이영일 작가가 공동으로 집필한 만화로, 만화 잡지 ‘코믹 챔프’에 연재되며 현재까지도 전 세대를 아우르며 사랑을 받은 시리즈다. 1970년대 한국의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을 따뜻하고 재치 있게 그려낸 ‘검정 고무신’은 만화부터 애니메이션까지 흥행을 거뒀다. 

그러나 창작진은 불공정한 저작권 계약 문제에 부딪혀야 했다. 당시 출판사 형설앤이 제시한 계약서 내용에 따르면, ‘검정 고무신’의 본편과 그로부터 파생된 2차 사업 및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한 권리를 형설앤에 무기한 양도하고, 이를 어길 경우 계약금의 3배에 달하는 위약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조건이 명시되어 있다. 이 작가 측은 이후 계약서 수정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불공정 계약의 여파는 이 작가 형제의 생활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작가는 15년간 1200만원 상당의 저작권료를 받으며 막노동을 해야 했다. 반면 출판사는 ‘검정 고무신’ 캐릭터를 활용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개봉과 굿즈 사업으로 수익을 올렸다. 

‘검정 고무신’의 원작자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 관련 사업을 일체 할 수 없었던 이우영 작가는 원작 캐릭터가 등장하는 단편 만화에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영상을 제작했다는 이유로 소송에 걸렸다. 이로 인해 이우영 작가는 4년동안 창작활동을 하지 못했다. 

창작자의 저작권이 보장되지 못한 사례는 이우영 작가뿐이 아니다. 2004년 동화책 ‘구름빵’을 출간한 백희나 작가는 1850만원을 받고 책의 저작권과 사업권을 모두 출판사에 양도해야 했다. 미리 일정량의 대금을 지불하고 이를 저작권 전체 양도로 치부하는 ‘매절 계약’이었다. 훌륭한 작품성으로 국내·외에서 인정받은 작품이었지만, 백희나 작가는 원작에서 파생된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의 수익을 제대로 배분받지 못했다. 

최근에도 허약한 저작권 인식이 영향을 미친 사례가 있었다. 100만부 이상이 팔리며 큰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 ‘아몬드’는 연극으로 제작되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원작자인 손원평 작가가 이 사실을 공연 4일전에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논란이 됐다. 

손원평 작가는 당시 SNS를 통해 “작가의 울타리가 되어야 할 출판사 편집부, 저작권부, 연극 연출자가 저작권에 얼마나 허약한 인식을 갖고 있는가”라고 꼬집었다. 지난 1월 소설 ‘아몬드’는 해당 출판사와 계약을 종료, 현재는 판매가 중단됐다. 

창작물은 창작자의 것이어야 한다. 창작자와 사업자 간에는 작품에 관한 명확한 권리 보장과 인간적 존중이 상호 해야 한다. 계속된 선례에도 끊이지 않는 불공적 계약 문제는 앞으로 활동할 새로운 창작자에게도 무력감을 선사할 것이다. 자유로운 창작 활동과 저작권 보장은 문화산업의 기본적 가치다. 한국 문화의 위력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 된 지금, 저작권 보장은 더 큰 발전을 위한 중요한 밑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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