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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영역
  • 민병현 교수 machmj55@naver.com
  • 승인 2023.01.26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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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위니콧(Donald W, Winnicott)은 정신병이란 ‘환경적 결핍증’이라고 했다. ‘절대적 의존성’이라고 불리는 가장 초기의 자기 형성기에 보살핌을 받지 못한 것이 정신병을 일으키는 주요 이유라고 보았다. ‘충분히 좋은 엄마’는 아이의 요구 상태에 맞춰 아이를 안는다. 그러면 아이는 엄마가 완전히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감싸고 있는 존재라고 인식한다. 그래서 위니콧은 엄마를 어린 유아가 ‘환경이라는 엄마’로 경험하는 존재라고 불렀다.

엄마가 유아를 보호하는 세 가지 방법, 즉 ‘안아주기’, ‘다루어주기’, ‘대상제시’를 밝혀냈다. 인생 초기에 민감한 다루어 주기를 경험한 사람은 자신의 정신력, 정서적, 신체적 능력이 ‘참 자기’의 삶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개인적인 것이라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이 충족되지 못하면 유아는 ‘신체와의 관계 부재’가 주는 고통을 다루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는 후에 비현실감, 비인격화, 신체적 자이에 고정되지 않고 마치 진공 속을 부유하는 것만 같이 느끼게 되는 것과 관련 있다.

이런 비현실감과 모호성은 신체를 포함한 세상과 특별한 연계성을 느끼지 못하는 ‘방향상실’과도 관련이 있다. 해리 건트립(Harry Guntrip)은 어릴 때 겪는 병리적인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와 그 이후의 성장에 따른 건강한 오디푸스 시기의 구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전자의 경우는, 부모, 특히 엄마는 비현실적으로 좋거나 나쁜 내적 대상으로 다양하게 경험된다. 부모에 대한 유아의 의존이 줄어들고, 건강한 성장이 진행됨에 따라 정상적인 오디푸스 단계가 온 그시기에 아이는 이성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동성의 부모와는 우호적인 라이벌이 되는 것이다. 건트립에게 있어, 이러한 발달의 중요성은 자아의 현실적인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건트립의 관점에서 볼 때, 자신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으며, 타자들에 대한 욕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자기애적인환자들은, 실은 사랑에 대한 갈망, 자신들의 사랑이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한 엄청난 갈망을 방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어떤 대상 접촉이라도 이루이지면, 이런 욕망들은 그들의 자기감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강렬해진다. 따라서 냉담한 상태로의 ‘자율성’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 된다. 그 밖의 대안은 대상과의 융합인데, 그것은 인격적 존재감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런 존개감의 상실의 퇴행한 자아는 어떤 내부 대상에도 애착을 형성하지 않고 자기와 구별되는 그 어떤 대상도 경험하지 못하는 태아기로 돌아가 심각하게 억압되고 무언가로부터 절박하게 방어하고 있는 퇴행한 자아는 의식적으로 비존재, 수동적인 복종, 심지어 자살 같은 것으로 경험된다. 즉 뭔가 분명하지 않은 어떤 ‘안전한 내부’에 대한 막연한 감각의 상태로 희귀함을 뜻한다. 자아의 살아있는 마음은 다른 사람과의 의미 있는 관계, 그리고 그 결과 개인적 성숙에 이르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깊은 인격안의 영역으로 도피한다. ‘퇴행한 자아’는 생후 모질었던 삶에서 경험한 두려움 때문에 철회한 사람의 특징인 동시에 처음부터 타인과의 관계를 맺을 만큼 안전감을 느낀 적이 없었던 사람의 특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경험 속에 내재된 의미를 절실하게 느낄 때 나타나는 정서로 가득 찬 ‘풍부한 감각’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인간의 경험은 서로 다른 감각기관에 의해 주어지는 자료들을 결합하고 종합하여 하나의 통일된 전체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보기는 하지만 느끼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듣기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보지 않은 것, 즉 간접적으로 보고된 것만을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사물을 만지기는 하지만 피부 접촉을 넘어서는 감각작용과 결합되지 못하기 때문에 피상적 접촉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풍부한 감각적 경험을 하지 못할 때 우리는 감각을 사용하여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지만, 지적 통찰을 얻기 위하여 감각을 사용하지는 못한다. 사회적으로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사람은 신체는 사용하지 않고 정신만을 사용하는 사람이며. 신체와 노동력을 사용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대신하도록 하는 사람이다.

감각과 육체의 중요성이나 감각과 인간 삶의 긴밀한 관련이 있다. 심리학자와 철학자들은 지식의 문제에만 지나치게 관심을 가진 나머지 ‘감각’을 순전히 지식과 관련된 것으로만 다루었다. 여기에 반하여 도덕이론가들은 감각이 충동, 욕망, 정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욕망이 정신을 육체 또는 육체적 욕망에 굴복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생명체와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지게 되면 상호작용은 단순히 신체와 물체가 만나는 것을 넘어서서 서로가 서로에게 참여하고 소통하는 것이 된다. 경험은 그러한 상호작용의 결과이며, 상호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는 증거이고, 잘 이루어진 상호작용의 보상이다. 감각기관의 가치를 낮게 보는 것은 그 자체에 질이 낮다는 것을 반등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만 있는 독특한 경험 즉 예술, 학문, 종교 등 이른바 상부구조를 확립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경험의 기본구조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인간이가지고 있는 감각작용들 중에서 뇌와 눈과 귀의 통합, 감각과 충돌의 통합은 다른 동물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까지 이르며, 서로 의사소통하며,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바를 전달할 수 있는 의미를 낳는 데까지 나아진다. 인간의 감각작용 실험과 발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인간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의 삶은 다른 동물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성격을 띠게 된다. 복잡성은 인간의 삶은 동물에 비해 범위나 질에서 엄청나게 넓으며 풍요롭다는 것을 의미하다. 산다는 것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의 주기적 변화이며, 시간은 성장과 성숙이 일어나는 과정을 단계와 순서로 구분한 것이다. 시간이란 계속해서 변화가 일어나는 삶에 대해 일정한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며, 이때 시간이 흘렀다는 것은 생명체가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한 멈춤이나 휴식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휴식과 마음속에서 새로운 꽃을 피울 양분을 축적하는 것이다.

민병현(독자권익부위원장·청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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