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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사라진 사회
  • 오세영 교수 machmj55@naver.com
  • 승인 2022.12.2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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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제 68차 이사회를 개최하여 한국에 선진국(Advanced Country)의 자격을 부여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그동안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나 국제통화기금(IMF) 등 유엔 산하의 여러 기구에서 암묵적으로 한국에 대우해 주던, 선진국이라는 지위를 이제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로써 한국은 국제 사회에서 —그 참다운 혹은 실질적 내용이야 어떻든— 이제 공인된 선진국이 된 셈이다.

‘선진국’이란 무엇인가. 나무위키의 정의를 따르자면 그것은 ‘영어 'Developed country' 또는 'Advanced country'의 번역어로, 다양한 산업과 복잡한 경제체계를 갖춘 국가, 또는 최종적인 경제 발전단계에 접어든 국가를 일컫는 용어이다. 그 반의어는 ‘후진국’ 또는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y)’이라 하는데 이의 기준으로 볼 때 지금의 한국은 경제규모 세계 10위, OECD 36국가들 중에서 6번째의 원조 공여국, 2021년 1인당 국민 총소득 35,000달러의 나라로(2026년 경 45,000 달러를 넘어설 전망. 기재부 ‘2022년 경제 전망’) 명실공히 여타의 국가에 뒤지지 않는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것이다.

이는 단지 통계상 수치만이 아니라 우리가 피부적으로 느끼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물질적 풍요는 이제 선진국 중의 선진국이라 할 미국의 그것을 거의 따라잡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산업 발전의 속도 또한 부분적으로는 이미 미국을 추월한 분야가 없지 않다. 한국제 가전제품이나 자동차들은 미국 소비자들의 제 1 선호 대상이 된지 오래이며 미국에 진출한 한국의 기업들은 앞 다투어 현지의 미국 노동자들에게 경제적 혜택을 베풀고 있다. 어디 그 뿐이랴. 요즘 들어 널리 보급되고 있는 우리 전원주택들의 아름다움은 내가 중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그림엽서를 통해서나 겨우 볼 수 있었던 미국 시골의 그것들을 능가하고도 남는다. 미국인 4명이 자동차 한 대를 소유했던 당시, 통계조차 잡히지 않았던 우리 국민의 자동차 소유대수 비율이 지금은 2명당 1대 꼴이라니(올해의 통계청의 보고서) 이 역시 미국의 그것과 별 차이 없는 수치가 아닌가.

이 모두 우리들이, 건국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굶주린 배를 졸라매며 열심히 배우고, 일하고, 노력한 결과이다. 일인당 개인 소득 60불이 넘지 못했던 그 비참한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오로지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자 잘못을 논하지 않고 삶의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는 아예 눈을 돌린 채, 아니 그럴 여유나 생각조차 없이 경제 매진을 외치는 지도자들의 철학과 계획에 따라 혼연 일치 먹고, 자고, 입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철주야 분투노력해서 얻어진 결과이다. 이를 일러 소위 산업화 세력이라 부르던가.

한편 우리는 또한 근현대사에서 세계에 자랑할 만한 정치적 대 성취도 거두었다. 독재 권력에 대한 오랜 세월의 피어린 투쟁을 통해 드디어 이 땅에 모범적인 근대 민주주의 국가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지구상의 그 어떤 민족, 그 어떤 국가도 달성하지 못한 성공 사례여서 감히 기적이라 불러 손색이 없는 세계사적 사건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멀리 가볼 것조차 없다. 가까이 아시아 국가들 중 우리 대한민국만큼 진정하게 민주주의를 실현한 나라가 어디 있던가. 아니 유럽의 선진국들을 제외하고 이 세계의 그 어느 나라가 그렇던가. 그러니 우리는 이 하나만으로도 민족적 자부심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이제 이같은 사회변혁을 이끌고 주도한 사람들을 일컬어 민주화세력이라 부르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이 양대 세력의 주도로 공식적으로는 온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자타가 공인하듯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사회적으로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민주 시민국가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진정 그런 것일까. 실제 내용이 과연 그처럼 참답고 바람직한 인간 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애써 감추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진실을 한번 말해보자. 거기엔 잃어버린 어떤 절대적 가치, 잃어버린 우리의 얼굴도 있는 것이 사실 아닌가. 번영과 풍요라는 가면에 가리워진 우리 자신의 그 본래의 얼굴, 그 ‘인간’이라는 아름다운 얼굴 말이다.

우리는 지금 너 나 없이 일상으로 보고 듣고 있다. 인간은 이미 죽어버리고 물질만이 덩그랗게 그 자리를 대신해 앉아 있는 우리의 현실을…… 돈을 위해서라면 부모나 자식도 한낱 물질로 교환이 되고, 돈을 위해서라면 친구나 연인의 목에도 서슴 없이 칼을 들이대고, 재력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정의도 불의도 아무 의미가 없고, 내가 소속된 진영을 위해서라면 선악 염치의 구분도 쓰레기처럼 폐기되는 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 사는 사회 아닌가. 이는 공식적으로 OECD 가입 38개 국가들 중 자살률 1위, 산재 사망률 1위, 국가행복지수 35위, 세계주요 국가 50개 국가들 중 빈부격차 3위라는 통계(2017년 한국노동연구소 보고서)가 확인해주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오늘날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그 주요한 원인은 당연히 건국 후 오늘에 이르기 우리 사회의 변혁을 주도해온 이 양대 세력에 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렇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한마디로 이 양대 세력 모두가 인문학과 인문정신의 함양에 무관심했거나, 투자를 외면했거나 최소한 이를 소흘히 한데서 빚어진 결과이다.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인문정신을 발양시키기 위해 그 어떤 노력을 기울인 적이 있었던가. 아니 그럴 필요성에 대한 자각이라도 한번쯤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소위 산업화세력은 그간 우선 급한 대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부국강병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온통 경제부흥, 산업 발전에 민족의 전 역량을 쏟아부었던 까닭에 인문학이나 인문정신의 함양 같은 가치에 대해서는 미처 눈돌릴 겨를이 없었다. 민주화세력 역시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반독재 투쟁이라는 혁명 과업에 쫒겨서 인간의 존재론적 문제 같은 것은 치지도외 해왔던 것이 사실 아닌가. 평생 인문과학을 하대하고 —주체사상이든 마르크스주의든 사회과학의 맹목적 열성 당원으로 살아오면서 그것만으로 우리 사회의 정치를 실험하노라 이렇듯 인간성의 피폐에 대해서는 외면해 오지 않았던가.

지금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는 이 양대 세력은 우리 사회의 인간 회복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시간이 늦기 전에 더 이상 파국이 오기 전에, 깊이 반성하고 성찰해야 할 일이다.

오세영(시인.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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