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영화 흔적] ⑤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

[우리가 몰랐던 영화 흔적] ⑤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

  • 기자명 박영선 기자
  • 입력 2022.08.25 23:16
  • 수정 2022.08.25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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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억의 전쟁’과 ‘사마에게’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영선 기자] 코로나 19로 한동안 극장 문이 닫혔다. 이제 극장 관람의 시대는 가고, OTT의 시대가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극장 관람 체계에 의지했던 영화 생태계는 큰 혼란을 피할 수 없었다. 엄청난 흥행이 기대됐던 상업영화들은 무기한 개봉을 미뤘고, 독립영화는 더 험난한 시간을 견뎌야 했다. 일상을 환기할 짜릿한 쾌감과 재미를 선사하는 것 못지않게, 우리가 구태여 들여다보지 않은 현실을 스토리와 영상으로 풀이해 감동시키는 것 또한 영화의 힘이다. 이번 특집에서는 이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크고 작은 이야기를 담아낸 국내외 독립·예술 영화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2022년 초, 암울한 소식이 들려왔다. 위드 코로나 소식이 들려오며 팬데믹의 긴장감은 느슨해졌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다시금 전쟁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수많은 이들의 생명과 폐허가 된 도시와 자연, 그리고 터전을 잃고 피난민이 된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전쟁의 참혹함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이번 특집에서는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를 바라본다. 고유한 문화, 집, 가족 혹은 자기 자신을 잃어야 했던 전쟁 피해자의 삶을 담은 두 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한국군이 참여한 베트남 전쟁 그 이후를 다룬 이길보라 감독의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과, 2011년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 내전을 다룬 와드-알 카팁 감독의 ‘사마에게’다.

 

영화 '기억의 전쟁' 스틸컷 (사진=(주)시네마달 제공)
영화 '기억의 전쟁' 스틸컷 (사진=(주)시네마달 제공)

영화 ‘기억의 전쟁’

베트남인 응우옌 티탄은 매년 음력 2월이 되면 제사를 올린다. 그의 가족은 베트남 전쟁으로 모두 목숨을 잃었다. 응우옌 럽은 전쟁으로 시력을 잃었고, 원래부터 말을 하지 못했던 딘 껌은 아직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모두 베트콩으로 몰려 무차별 공격을 받은 민간인이다.

영화 ‘기억의 전쟁’은 코다(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아이)로 살아온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반짝이는 박수소리’를 제작한 이길보라 감독의 다큐멘터리다. 그는 한국군에게 피해를 입은 당시 베트남 민간인들의 목소리를 가까이 듣기 위해 위령제에 참석하고, 2018년 베트남 전쟁 피해자들이 한국에 방문한 시위 현장에도 동행했다.

영화 '기억의 전쟁' 스틸컷 (사진=(주)시네마달 제공)
영화 '기억의 전쟁' 스틸컷 (사진=(주)시네마달 제공)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에게 베트콩은 큰 골칫거리였다. 그들은 베트남 지형을 모두 꿰뚫고 있고, 언제 덮칠지 모르는 공습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베트콩에 대한 보복이 심화 되면서, 총구는 베트남 민간인에게 향했다. 티탄과 럽, 껌은 베트남 전쟁을 알리는 영화를 제작하러 왔다는 한국인 감독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증언한다. 그들은 오래 전이지만 오늘 일처럼 생생한 기억을 펼쳐놓기 위해 몇 번이고 말을 멈춘다.

티탄과 럽, 껌은 사과를 받고 싶다. 분명 자신의 가족과 이웃을 눈앞에서 죽인 이들은 한국군이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직접 한국으로 건너온다. 그러나 이에 맞서 시위에 참석한 한국군은 ‘그런 일이 없다’고 답한다.

영화 '기억의 전쟁' 스틸컷 (사진=(주)시네마달 제공)
영화 '기억의 전쟁' 스틸컷 (사진=(주)시네마달 제공)

이길보라 감독은 개봉 이후 한 인터뷰를 통해, 베트남 전쟁 당시 민간인을 죽이지 않았다는 한국군의 시위 발언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촬영을 하면 할수록 그들이 군복을 입은 아저씨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군복을 입혀놓은 우리 할아버지, 이가 다 빠진 우리 할아버지 모습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보이니까 그제야 그 사람들의 논리와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라며, “(그들이) 정말 한 명도 안 죽였을 수 있다. 전쟁에선 내가 살려면 상대방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면 안 되니까 그런 선택을 했을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그들은 전쟁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다”라고 전했다.

수많은 외화를 벌어들인 베트남 전쟁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생명을 잃었고, 또 빼앗았을까. 한국은 전쟁에 참여함과 동시에, 거기서 비롯된 모든 피해를 책임지는 데 자유로울 수 없어졌다. 전쟁은 우리 모두를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만든다. 물리적인 폭력과 함께 ‘기억의 전쟁’을 일으킨다. 세대가 바뀌어도 잊히지 않는 기억과 흉터는 과거의 전쟁을 현재진행형으로 느끼게 한다.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사마에게’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잿빛으로 가라앉은 도시, 시리아 알레포. 폭격과 아우성이 뒤엉킨 나라에서 한 여성이 카메라를 들었다.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기 위한 투쟁이었던 영상 촬영은 이 여성의 딸, 사마가 태어나며 더욱 힘이 실린다.

2011년부터 10년간 이어져 온 시리아 내전을 겪은 와드는 마을을 뺏기지 않기 위해 피난에 오르지 않는다. 이들에게 이 마을은 장소 자체로 민족의 뿌리이자, 문명이자, 고향이다. 와드는 아이들이 뛰노는 공터, 민간인 거주지를 불문하고 병원까지 무차별 폭격을 가하는 시리아 정부군을 직접 고발하기 위해 모든 순간을 기록한다.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무자비한 폭격이 사정없이 떨어지는 시리아 알레포는 임산부들의 조산율이 굉장히 높다. 위협을 뚫고 무사히 태어난 딸에게 와드가 지어준 이름은 ‘사마’. ‘하늘’이라는 뜻이다. 딸의 이름에는 공습과 폭격 없는 하늘을 희망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전쟁 속에서 태어난 사마는 귀를 찢는 폭격 소리에도 울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전쟁을 경험한 아이에게 폭격은 그저 생활 소음일 뿐이다.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와드와 그의 남편 함자는 무너진 건물에 병원을 세운다. 이들은 도시 기능이 전부 마비된 시리아에서 이들은 20일 남짓한 시간 동안 6000명의 환자를 받았고, 890번의 수술을 진행했다. 부부는 무너진 건물을 전전하며 계속 병상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와드는 눈앞에서 폭격으로 동료를 잃었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절망을 매일 목도한다.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사마에게’는 와드-알 카딥 감독이 직접 찍은 다큐멘터리다. 2016년 시리아 정부군의 마지막 경고를 견뎌낸 그는 남편 함자와 딸 사마와 함께 알레포를 떠났다. 피난에 성공한 와드는 5년간의 기록을 편집해 세상에 내놓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탄생한 영화 ‘사마에게’는 영국 아카데미상 다큐멘터리상, 런던 비평가 협회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사마에게’는 비단 ‘시리아’만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도 계속 전쟁 중인 세계 곳곳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으로 경종을 울렸다.

 

편집자의 말

“우린 가장 중요한 것을 쟁취하기 위해 싸웠다. 너 같은 아이들이 더는 고통받지 않도록. 우리 싸움은 전부 널 위해서였다. 바로 너, 사마.” 영화 ‘사마에게’를 관통하는 와드의 나레이션이다.

처음 와드에게 ‘왜 영상을 찍느냐’고 소리쳤던 한 여성은 일곱 살 난 아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라’고 절규한다. 숨기고 싶었던 개인적 불행과 슬픔이 사회적 분노로 터져 나오는 순간이다. 잠시 카메라를 떨군 와드는 이윽고 다시 촬영을 시작한다.

딸 사마는 와드의 투쟁에 또 다른 목적이 되었다. 정부군에 대항하는 행동이었던 다큐멘터리 촬영은 혼자 남게 될 딸에게 남길 유일한 기록이자,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반전(反戰)운동으로 거듭났다.

‘사마에게’가 전쟁터 한복판을 다룬다면, ‘기억의 전쟁’은 전쟁 그 후를 다뤘다. 물리적 황폐화가 지나간 후, 살아남은 이들의 삶을 천천히 쫓았다. 픽션보다 더 픽션 같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점이 관객에게 문제 의식을 일깨우며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두 작품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쟁’의 참상을 정면 돌파한 다큐멘터리다. 팩트와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인물을, 혹은 자기 자신의 시선을 쫓았다. 두 감독의 도전은 현재 세계 시장이 돌아봐야 할 작품을 탄생시켰다. ‘사마에게’와 같은 상황을 멈추고, ‘기억의 전쟁’을 막기 위해 세계인의 관심과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박영선 기자 djane7106@dailysports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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