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평화의 아이콘과 테러리스트

[기자수첩] 평화의 아이콘과 테러리스트

  • 기자명 우봉철 기자
  • 입력 2022.03.17 10:37
  • 수정 2022.03.1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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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우크라이나 그리고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인도, 파키스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에 전 세계는 러시아에 강력 제재를 가하고,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향한 연대는 스포츠계, 특히 축구에서 많이 보이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PL)는 PL 로고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합성해 시즌을 치르고 있다. 지난 에버턴과 맨체스터 시티 간 경기에서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비탈리 미콜렌코와 올렉산드로 진첸코가 포옹하며 눈물 흘리는 모습이 중계되기도 했다. 팬들은 우크라이나 국기를 흔들며 이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또 러시아 출신 첼시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영국 정부 제재 결정에 따라 자격을 박탈당했다.

나는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그로 인한 아픔을 잘 알지 못한다. 한반도를 덮친 6.25 전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실제 겪지 않았기에 크게 와닿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픔에는 국적과 인종, 종교가 없다는 건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에 대해 축구장에서 보여주는 서방 국가들의 모습이 오히려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세계 평화를 외치고는 있지만, 이 메시지가 자신들의 이웃을 위한 목소리로만 들렸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프로축구 구단 아탈란타에서 뛰는 우크라이나 축구 선수 루슬란 말리노프스키는 최근 경기에서 득점한 뒤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의미로 하늘을 가리키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이 같은 모습에 말리노프스키는 축구계 ‘평화의 아이콘’이 됐다.

그런데 불과 1년 전 맨시티 소속 리야드 마레즈가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었을 때는 온갖 비판이 쏟아졌었다. “축구와 정치를 연결하지 마라”는 것이 비판의 주 내용이었다. 2009년 당시 세비야에서 뛰던 프레데릭 카누테도 득점 후 팔레스타인 지지 문구가 적힌 내의를 노출하는 세리머니를 펼친 바 있다. 주심은 곧장 카누테에게 경고를 줬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역시 카누테에게 벌금 징계를 내렸다. 2016년 스코틀랜드 구단 셀틱은 이스라엘 구단 하포엘 비어셰바를 상대로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든 팬들로 인해 유럽축구연맹(UEFA)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이처럼 ‘스포츠와 정치는 분리된다’라는 자신들의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던 UEFA는 우크라이나 사태에는 러시아의 모든 국제 대회 출전을 금지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가자지구를 두고 이스라엘과 대치 중이다. 무려 70년이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불과 5일 만에 각종 제재를 가하고, 우크라이나 국기를 흔들며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오랜 기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민간인들이 죽어 나간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똑같이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등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대처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파키스탄도 마찬가지다. 최근 파키스탄 총리는 자국 주재 대사들의 러시아 규탄 동참 요구에 “우리는 당신들 노예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또 “당신들은 인도가 국제법을 위반했을 때 관계를 끊고 비난한 바 있는가”라고도 말했다. 이 역시 파키스탄과 정전 통제선을 맞대고 있는 인도가 2019년 8월 인도령 카슈미르의 헌법상 특별 지위를 전격 박탈하고, 최근 미사일로 파키스탄 민간 지역에 피해를 입혔음에도 침묵하고 있는 국제 사회에 대한 반문이다.

말리노프스키는 우크라이나 사람으로서 조국의 참상을 알렸고, 마레즈와 카누테는 무슬림계일뿐 팔레스타인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같다. 바로 평화다. 국적과 인종, 종교에 따라 평화에 계급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한 쪽은 평화의 아이콘이 되고, 다른 쪽은 축구에 정치를 끌고 온 반동분자 나아가 테러리스트가 됐다. 이들이 외친 평화는 정말 다른 걸까.

우봉철 기자 wbcmail@dailysports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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