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파키스탄 경제・문화 교류 활발

한국-파키스탄 경제・문화 교류 활발

  • 기자명 박상건 기자
  • 입력 2020.10.28 06:01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임 뭄타즈 자흐라 발로치 대사, 한-파키스탄 친교의 밤 참석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건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청와대 본관에서 뭄타즈 자흐라 발로치 주한파키스탄대사로부터 신임장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6일 청와대 본관에서 뭄타즈 자흐라 발로치 주한파키스탄대사로부터 신임장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6일 청와대 본관에서 뭄타즈 자흐라 발로치 주한파키스탄대사로부터 신임장 받고 있다.

서남아시아에 위치한 파키스탄의 공식명칭은 파키스탄 이슬람공화국(Islamic Republic of Pakistan)이다.

파키스탄은 1947년 영국령 인도에서 분리하여 독립했으며, 동파키스탄과 서파키스탄으로 분리돼 있다가 1971년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독립해 지금의 영토가 확정됐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밀・목화・사탕수수가 많이 생산되고 주민은 터키・이란 계통으로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이고 주요 언어는 우르두어와 영어이다. 수도는 이슬라마바드, 영토는 80만 3944㎢이다.

최근 파키스탄은 한국과 활발한 교류를 추진 중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과 아시아문학페스티벌조직위원회가 공동으로 여는 ‘제3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이 오는 29일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막을 올리는 파키스탄의 우즈마 아슬람 칸 등 아시아 국가 문인 10명이 참가한다.

울산시는 지난 13일∼15일 롯데호텔 울산 크리스탈볼룸에서 ‘울산 엑스포트 플라자 2020’ 수출상담회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공동으로 진행했는데 이 자리에도 파키스탄 등 6개국 바이어 13개사가 참가했다.

데일리스포츠한국 2020년 10월 28일자 15면(경제면)
데일리스포츠한국 2020년 10월 28일자 15면(경제면)

한국과 파키스탄 교류의 역사는 아랍 향료와 페르시아산 유리 제품 등을 가득 싣고 도착한 아랍 상인들이 신라에 매료된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평소처럼 당나라 광저우의 무슬림 번방(蕃坊·외국인 거류지)에 머물다가 계절풍이 바뀔 때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당시 상인들은 신비의 나라 ‘알 신라(al-shilla)’의 이야기에 이끌려 신라로 왔다고 한다. 이들이 두 눈으로 직접 본 신라는 깨끗한 물, 비옥한 토지, 금붙이를 가득 매단 신라인들의 풍요로운 모습이었다.

846년 이슬람 지리학자 이븐 쿠르다드비가 작성한 ‘왕국과 도로총람’에는 무슬림의 한반도 정착에 대한 최초의 역사적 기록이 등장하면서 이 장면을 설명하는데 “신라는 금이 풍부하고 자연환경이 쾌적해 무슬림들이 한번 도착하면 떠날 생각을 않는 곳”이라고 묘사했다. 이슬람 역사학자 샴수딘 디마쉬끼는 이슬람 시아파의 한 종파인 알라위파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7∼8세기경 신라로 망명했다는 기록도 남겼다.

한반도에서 무슬림의 역사는 1200여 년에 달한 셈이다. 무슬림들은 8세기 무렵 이미 신라 내에 집단 거주했을 것이라는 추정된다. 신라 시대에 조성된 고분이나 사찰 등에서 발견되는 아라비아·페르시아산 공예품이나 장식품, 고분에서 출토되는 중앙·서아시아인들의 특징을 가진 토용(土俑) 등도 이를 뒷받침한다.

페르시아의 이븐 루스타는 903년 저서 ‘진귀품 목록’에서 “금이 풍부한 신라라는 나라가 있으며, 그곳에 정착한 무슬림들은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고 썼다.

한반도에서 명맥이 끊겼던 이슬람교가 다시 한국 사회에 등장한 것은 한국전쟁 때다. 1960년대부터는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등의 지원과 협력이 이어졌고 1967년에는 한국이슬람중앙회(KMF)의 전신인 한국이슬람협회가 결성됐다.

‘오일 쇼크’ 후 197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이어진 중동건설 붐은 한국인 무슬림 공동체의 기초를 형성하는 계기가 됐다. 한때 20만 명에 달하는 한국인 노동자가 중동으로 건너갔고, 이곳에서 이슬람을 접한 한국인 노동자 중 이슬람에 입교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당시 입교자 중 상당수가 오늘날 한국 이슬람교의 원로로 활동하고 있다.

중동과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가 커진 한국 정부는 중동과 관계를 고려해 모스크 건립을 지원했고, 1976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최초의 모스크가 세워졌다. 한국의 이슬람교는 1990년대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전환기를 맞았다. 소규모 무슬림 공동체가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1964년 3000여명 남짓에 불과했던 한국의 무슬림 수는 현재 한국인 무슬림 6만 명과 외국인 무슬림 20만 명 등 26만여 명으로 크게 늘었다. 한국이슬람중앙회도 16개 모스크와 80여 개 무쌀라(예배원)를 산하에 두고 있다. 이제는 서로가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상호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본사 임직원들과 담소를 나누는 뭄타즈 자흐라 발로치 주한파키스탄대사(오른쪽)
본사 임직원들과 담소를 나누는 뭄타즈 자흐라 발로치 주한파키스탄대사(오른쪽)

신임장을 받은 이날 문 대통령은 “한국에는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이란 말이 있다. 손님 대접하는 것을 조상님들에 대한 제사 모시는 만큼이나 중시한다는 뜻”이라며 “한국의 넉넉한 인심도 많이 접해 보시라”고 덕담을 건넸다.

데일리스포츠한국과 신임장 제정 후 별도 상견례 자리를 가졌는데 뭄타즈 자흐라 발로치 주한 파키스탄대사는 “한국과 파키스탄은 역사적으로 닮은 점들이 많다”면서 한일관계와 파키스탄과 인도 관계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데일리스포츠한국, 리빙TV와 함께 주한 파키스탄 대사관이 함께 잦은 만남을 통해 양국 문화교류의 견인차 역할을 해나자고 했다. 이런 연장선에서 본지와 리빙TV는 28일 저녁 열리는 한-파키스탄 우호협회 주최의 ‘한국-파스탄 친교의 밤’ 행사를 후원한다.

저작권자 © 데일리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