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의 관풍(觀風)> 재난지원금 ‘기부’로 ‘나눔’ 선진국 되자

<김성의 관풍(觀風)> 재난지원금 ‘기부’로 ‘나눔’ 선진국 되자

  • 기자명 김성
  • 입력 2020.05.07 11:58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가 코로나19사태로 어려움에 처한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채워주고 소비도 활성화하기 위해 긴급재난지원금을 전국의 모든 가구에 4인가족 기준 100만원씩, 총 12조원을 나누어주기로 했다. 대신 경제적 여유가 있는 국민들로부터는 기부를 받아 국채(國債) 비중을 줄이고 다른 사업에 유용하게 사용하기로 했다.

노동자·인력거꾼·기생·백정까지 참여했던 국채 보상운동

필자는 국민이 자발적으로 낸 기부금을 국제사회에서 코로나19 지원 사업비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100여년 동안 전 국민이 나선 기부운동을 두 차례 전개하였다. 국채보상운동과 금모으기운동이었다. 1894년 청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차례 차관을 제공하여 1907년에는 당시 대한제국 1년 예산과 맞먹는 1,300만원이나 되었다. 대한제국은 이를 갚을 능력을 상실했다. 하여 1907년 2월,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운동에 참여했던 대한매일신문은 2월 21일자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 ‘지금 우리들은 정신을 새로이 하고 충의를 떨칠 때이니, 국채 1,300만원은 우리나라의 존망에 직결된 것입니다. 이것을 갚으면 나라가 보존되고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함은 필연적인 사실이나, 지금 국고에서는 도저히 갚을 능력이 없으며 만일 나라가 못 갚는다면 그때는 이미 3천리 강토는 내 나라 내 민족의 소유가 못 될 것입니다. … 그런데 이를 갚을 길이 있으니 수고롭지 않고 손해보지 않고 재물 모으는 방법이 있습니다. 2천만 인민들이 3개월 동안 흡연을 금지하고, 그 대금으로 한 사람에게 매달 20전씩 거둔다면 1,300만원을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 액수가 다 차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응당 자원해서 일원, 십원, 백원, 천원을 특별 출연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남자들은 금연운동을 전개하고, 여자들도 전국에 20개가 넘는 여성단체를 조직하여 금비녀와 패물 등을 내놓았다. 노동자·인력거꾼·기생·백정 등 하층민들까지 적극 참여하여 230만원을 모았다. 대한제국을 집어삼키려던 조선통감부는 국민운동이 거세게 일어나자 불안을 느끼고 모략을 시작하였다. 기금모금 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친일파 윤웅렬이 대한매일신문 양기탁과 영국인 베텔이 3만원을 횡령했다며 반환을 요구하고, 베텔을 1908년 추방했다. 양기탁은 재판 끝에 무죄로 풀려났지만 이러한 혼란 때문에 모금운동은 흐지부지됐다.
한편 1919년 3·1독립만세운동 이후 일본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조선에 진출하여 경제가 점차 일본에 예속되어가자 오늘날 국산품애용운동과 같은 물산장려운동을 전개하였다. 목표는 첫째  남자는 무명베 두루마기를, 여자는 검정물감을 들인 무명치마를 입는다. 둘째 설탕·소금 등을  제외한 나머지 음식물은 모두 우리 것을 사 쓴다. 셋째 일상용품은 우리 토산품을 상용하되, 부득이 외국산품을 사용하더라도 경제적 실용품을 써서 가급적 절약을 한다는 것이었다.

351만명이 금 225톤 모았던 기적의 금모으기운동

1997년 여름 동남아시아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그 여파가 한국에 미치기 시작하였다.  한보가 부도나고 기아의 부실운영에 드러나자 한국에 달러를 빌려주었던 외국의 투자기관들이  너도너도 앞다투어 달러를 빼내가기 시작하였다. ‘저금리’로 달러를 빌려와 이자놀이를 했던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이 달러를 갚을 수 없게 되자 ‘국가부도’ 위기에 빠졌다. 이렇게 되자 김영삼 정부는 IMF에 달러 지원을 요구하게 되었고, IMF는 지원을 해주는 대신 IMF가 요구하는 조건을 이행할 것을 강요했다. 결국 당시의 김영삼 대통령과 당선이 유력시 되던 김대중 대통령 후보까지 협약서에 서명하고 달러를 빌릴 수 있게 됐다. 단군 이래 처음 겪는 경제 위기를 맞이하게 되자 국가를 구하자는 차원에서 1928년 1월 5일부터 금모으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놀랍게도 351만명이 참여하여 금 225톤, 당시 시세로 21억7,000만 달러가 모아졌다. 금모으기운동을 통한 국민의 희망적인 단합 때문에 IMF로부터 빌렸던 195억 달러를 예정보다 3년 빠른 2001년 8월에 모두 갚게 되었다. 2002년 월드컵 경기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아주 독특한 응원을 벌인 것도 이런 국민의 단합이 긍지로 연장되었기 때문이다.

전쟁 참화 속 세계의 도움으로 대한민국 선진국 신화 이뤄

대한민국이 오늘날 선진국이 되기까지에는 전 세계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해방의 혼란기부터 1950년 6·25 한국전쟁까지 극도로 피폐한 상황에 놓였을 때 많은 나라들이 경제적, 사회복지적 도움을 주었다. 1980년 5·18 이후에도 외국의 종교계를 비롯한 인권단체의 보이지 않는 도움이 있었기에 민주화운동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세계에서 유일하게 민주화와 산업화에 성공하였다.
그래 이제부터는 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도상국에 더 많은 ‘나눔’을 베풀어 과거의 빚을 갚아나가야 한다. 대한민국은 그런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에서 기부문화를 활성화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때마침 대한민국은 코로나19 방역에 모범을 보여 세계에서 찬사를 받고 있다. 121개국이 지원요청을 하고 있다. 정부는 초기 발생에서부터 진단키트 확보- 드라이브스루 및 워크스루 검사-확진자 추적 시스템-체계적 병원 격리-생활치료센터 운영까지 모든 과정을 페키지化 하여 개발도상국을 지원한다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경제적 수출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의 국제화에 이어 이제는 K-방역의 국제화를 준비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비용이 따른다.

기부금으로 개도국에 K방역 지원하여 빚 갚아야

하여 재난지원금 기부 비용을 ‘고용’에만 모두 쓸게 아니라 방역사업의 국제화에도 사용한다면 그 의미가 한결 높아져 국제사회에 또 다른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코로나19로 국위 선양을 기대하는 국민이라면, 국가의 재정을 걱정하는 국민이라면 이번 기부운동에 동참함으로써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데 일조를 하였으면 한다. 그리하여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이 ‘나눔’의 분야에서도 존경받는 국가가 되었으면 한다.   

김성(광주대 초빙교수)
 

저작권자 © 데일리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