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지상 강좌] 詩마을 창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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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유종화 기자
  • 입력 2020.02.2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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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와 나 사이에 강이 흐른들 무엇하리

[데일리스포츠한국 유종화 기자] 공허한 소리가 아닌, 가슴에 울려오는 노래

이 글을 쓰려니 소설가 김주영 씨의 글이 기억난다. 그는 밤새워 읽을 연애소설을 한권 쓰고 싶다고 했다. 그것은 아마 영원히 변하지 않을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쓰고 싶다는 말일 것이다. 안도현의 시집 ‘그대에게 가고 싶다’(푸른숲)를 읽으면서 나는 그런 김주영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아는 한, 안도현은 철저한 현실주의 시인이다. “시에다 삶을 밀착시키고 삶에다 시를 밀착시키는 일. 그리하여 시와 삶이 궁극적으로 완전한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그이지만 현실의 모순과 각박한 세상에 대한 외침 속에 도랑물처럼 잔잔하게 흐르다가 고여 있는 사랑의 샘물도 꽤나 깊었나 보다. 아니, 그런 소리를 외칠 수 있는 그이기에 그의 연시도 귓가에서 맴도는 공허한 소리가 아닌, 가슴에 울려오는 노래로 들려온다.

저물녘

그대가 나를 부르면

나는 부를수록 멀어지는 서쪽 산이 되지요

그대가 나를 감싸는 노을로 오리라 믿으면서요

하고 싶은 말을 가슴에 숨기고

그대의 먼 산이 되지요

‘먼 산’이라는 이 시에 더 이상의 어떤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그대’와 ‘나’ 사이를 감싸고도는 사랑을 느끼면서 읽으면 된다.

그러나 그 사랑에 대해서 조금 덧붙여 말하자면 ‘나’는 ‘그대가 부를수록 멀어지는 서쪽 산이 되지’만 ‘하고 싶은 말을 숨기고 그대의 먼 산이 되’는 것은 결국 ‘그대가 나를 감싸는 노을로 오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러한 믿음은 어디에서 생겨났을까? 사랑이다. 그것뿐이다. 정갈하고 단아한 이 시에서 어떤 뜻을 찾으려 할 것이 아니라 ‘서쪽 산’을 따뜻하게 ‘감사는 노을’에서 촉촉하게 적셔 오는 사랑을 느끼면 된다.

이 시만 놓고 본다면 ‘나’와 ‘그대’와의 평범한 사랑 이상의 어떤 의미를 찾을 수는 없다.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연시일 뿐, 그 이상의 어떤 의미를 찾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시인이 말하는 사랑의 의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세상을 후려치고 가는 회초리가 되지 못한다면

그대와 나 사이에 강이 흐른들 무엇하리

내가 그대가 되고

그대가 내가 되어

우리가 강물이 되어 흐를 수 없다면

이 못된 세상을 후려치고 가는

회초리가 되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먼 훗날

다 함께 바닷가에 닿는 일이 아니라면

그대와 나 사이에 강이 흐른들 무엇하리

시인은 ‘강’에서 말한다. ‘그대’와 ‘나’ 사이에 아무리 사랑이 깊은들 결국 세상을 껴안고 흐르는 사랑이 아니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나’와 ‘그대’ 사이, 둘만의 사랑은 의미가 있는 사랑이 아니다. 그 사랑이 ‘세상을 후려치고 가는 회초리가 되지 못한다면’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없다. ‘그리하여 먼 훗날’ 세상을 껴안고 함께 뒹굴다 ‘다함께 바닷가에 닿는’ 사랑을 꿈꾼다.<계속>

데일리스포츠한국 2020년 2월 28일자
데일리스포츠한국 2020년 2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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