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지상 강좌] 詩마을 창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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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유종화 기자
  • 입력 2020.02.2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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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네 줄로 짚어낸 한 나라의 민중사

[데일리스포츠한국 유종화 기자] 자기의 세계와 소리를 가진 시인 – 2

그는 그의 시속에서 느꼈던 강렬한 인상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김준태 시인에 대해서 나종영은 이렇게 말한다.

다 알다시피 김준태 시인은 개성이 매우 강한 시인이다. 그는 가락이나 발상법, 시적 진술 등의 모든 부분에서 두루두루 독창성을 구가하고 문학적으로 철저하게 자주성을 견지해 온 시인이다. 곧 아무도 흉내낼 수 없을 만큼 철두철미하게 자기의 세계와 소리를 가진 시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준태 시집, ‘꽃이, 이제 지상과 하늘을’ 해설에서

만인을 깊은 사색에 빠뜨리는 위력

이제 그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다고생각하는 ‘감꽃’이라는 시를 보자.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단 네 줄로 우리네 현대사를 짚어 낸 이 시에 대한 해설은 아무래도 김형수의 이야기를 빌려오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만 10년 전에 썼던 시가 아직도 살아 우리의 가슴속에서 메아리치는 경우이다. 누구라도 좋을 한 사람의 독백 형식을 빌어 역사적 운명의 궤도를 달리고 있는 한반도 민중의 삶을 노래한 시다. 우리가 예술성의 문제를 내세워 정치 표준 못지않게 강조하려 고집한 경우는 이럴 때뿐이다.

운율·가락·소리의 울림을 우리의 호흡에 맞게 조화시켜 내면서 단 네 줄의 문장 속에 한 나라의 민중사를 담아내는 위력, 그것으로 만인을 깊은 사색에 빠뜨리는 위력, 참으로 그리기 어려운 역사의 물줄기를 눈에 보이도록 구체화시켜 버리는 역량, 예술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렇게 위력 있는 시를 쓰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내용이 쉽다고 쓰기조차 쉬운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깊은 사색 없이 간단하게 여겨 백날을 흉내 내 봐야 이런 시는 써지지 않는다. 차라리 길고 짧고에 상관 않고 형상 사유의 훈련을 쌓는길이 옳고 빠르고 쉬운 길이다.

-김형수, ‘대중을 위한 문학교실’에서

이렇듯 김준태 시인의 ‘감꽃’은 단 네 줄로 된 짧은 시지만 그 네 줄의 문장 속에 ‘한 나라의 민중사를 담아 낸 위력’을 지닌 시다. 감동을 주는 시는 너무도 평범해서 하찮게 보이기까지 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쓰는데, 가만히 그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대단히 엄숙한 진리들을 담고 있다.

우연한 현상 속에 담긴 놀랄 만한 진리

‘감꽃’이 그렇다. 서정적 주인공이 어렸을 적에 먹고 살기가 힘들어 새벽에 남보다 일찍 일어나 감꽃을 주워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우는, 하찮은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6.25를 거치고, 돈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찾아다니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약 100년의 세월을 ‘셌지’라는 각운의 반복만 있을 뿐 어떤 시적인 기교도 없이 엄숙한 역사적 진리를 짚어내 버린다.

그리고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라는 마지막 행에서 우리의 뒤통수를 때리듯 한심스런 역사와 현실을 단 한 줄로 압축해서 말한다.<계속>

데일리스포츠한국 2020년 2월 24일자
데일리스포츠한국 2020년 2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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