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기생충’에 기생하려는 미래통합당의 이율배반

<김주언 칼럼> ‘기생충’에 기생하려는 미래통합당의 이율배반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0.02.20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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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세계 영화제를 석권한 이유는 세계인의 공감을 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한 보편타당한 비판이 세계인에게 어필한 것이다. 가장 보수적 영화제로 평가받는 아카데미상에서조차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거머쥔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기생충은 영화 속 인물들이 겪는 이야기를 현실 속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도록 세심하게 관객에게 전달한다. “배우들만 바꾸면 어느 나라에서 찍더라도 호소력있는 이야기”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다.
기생충은 다양한 상징을 통해 현실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이야기 전개는 블랙코미디 형태를 취한다. 실업에 시달리는 50대 부부와 스펙이나 연줄이 없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자녀 등 우리사회의 모순을 반지하에 사는 가족을 통해 보여준다. 여기에 나락으로 떨어져 지하에 숨어사는 사람과 고지대 양옥에 사는 부자가 등장한다. 싸움은 반지하와 지하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부자가 사망한다.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이들 모두 잘못된 구조의 희생자임을 암시한다.     
기생충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인디언의 메시지에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날 서부영화에서 말살시켜야 할 야만족으로 치부됐던 아메리칸 인디언은 이제 전설이나 신화로 소비된다. 실제로는 침략자들에게 영토와 생명을 빼앗긴 존재이다. 영화평론가 김성수씨는 “절대 다수인 가난한 사람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지분이 침략자로 상징되는 자본가들에게 완벽하게 빼앗긴 상태”라며 “격리된 공간에서 박제된 채 연명하는 인디언의 삶은 영화 속 지하세계 사람들이라는 상징과 겹친다”고 지적했다.
봉감독은 각본 각색 연출을 모두 해내는 ‘1인 다역’ 감독이다.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을 만큼 뛰어난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하다. ‘살인의 추억’ ‘괴물’ 등 그가 감독한 작품들을 보더라도 사회부조리에 대한 문제의식은 치열하다. 특히 설국열차는 현대사회의 계급과 차별 구조를 명쾌하게 풀어냈다. 설국열차가 계급구조를 기차라는 선형적 배열로 형상화했다면, 기생충은 인간의 기본적 욕망인 집을 지상 반지하 지하라는 수직적 배열로 그려냈다. 이러한 사회의식 때문에 그는 보수정권 치하에서는 ‘좌파’로 낙인찍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명박근혜정권은 봉감독을 포함한 영화인 등 예술인들을 무더기로 블랙리스트에 올려 지원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명박정권 청와대 문건에는 문제인물 249명 중 104명의 영화인이 포함됐다. 봉감독은 그중에서도 ‘강성 좌파’로 분류됐다. 박근혜정권은 594명의 블랙리스트에 봉감독을 올렸다. 특히 작품상 시상에서 수상소감을 밝힌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은 억지로 미국에 가야 했다. 박근혜 전대통령은 “이미경 부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으면 좋겠다”고 지시하기도 했다. 봉감독은 “창작자들한테는 지울 수 없는 상처”라고 말하기도 했다.
봉감독의 영화들은 보수정권의 성토대상이 됐다. ‘살인의 추억’은 “공무원과 경찰을 비리집단으로 묘사해 국민에게 부정적 인식을 주입”한 영화였다. ‘괴물’은 “반미정서와 정부의 무능을 부각해 국민의식을 좌경화시켰다”는 비난을 받았다. 특히 ‘설국열차’는 시장경제를 부인하고 사회저항을 부추기는 영화로 평가됐다. 관객 1000만명을 동원한 기생충도 마찬가지였다. “패러사이트 같은 영화는 보지 않는다.” “민주당과 기생하는 군소정당은 정치를 봉준호감독에게 배웠는지 몰라도 정치판 기생충임이 틀림없다.” 미래통합당(전 한국당)의 눈에는 그저 ‘체제전복을 위한 좌파의 선동영화’일 뿐이다. 
기생충이 혁명을 선동하는 영화라는 평가에 대한 봉감독의 생각은 명료하다. 혁명의 시대는 오히려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혁명이란 뭔가 부숴 뜨려야 할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혁명을 통해 깨뜨려야 하는 게 뭔지 파악하기 힘들고 복잡한 세상이 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생충에는 악인도, 영웅도 없다. 명확한 악인이 없는데도 무서운 비극이 터진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런 걸까. 그는 “질문 자체가 영화가 주려는 메시지”라며 복잡한 사회시스템을 지적했다.
그랬던 미래통합당이 하루아침에 돌변했다. 총선을 앞두고 봉감독과 기생충 관련 졸속공약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의 고향이 대구라는 점을 이용해 후보 알리기에 나선 것이다. 봉감독 이름을 딴 기념관, 공원, 동상 건립, 영화박물관 아카데미, 가상현실 체험관, 명예의 전당과 생가터를 북원하겠다는 공약까지 나왔다. 독립운동가들도 감히 내밀지 못한 대대적 기념사업이다. 아예 대구시를 봉준호시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마저 나온다. 심지어 봉감독과 어린 시절을 같은 지역에서 함께 보냈다는 자랑(?)마저 내세운다. 모두 미래통합당 예비후보들이다. 
한국당 예비후보들의 도를 넘은 ‘숟가락 얹기’는 곧바로 역풍을 불러왔다. “아베가 김구 동상 세우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전우용 교수)는 지적이 폐부를 찌른다. 집권시절 ‘빨갱이’로 낙인찍었던 영화인에 대한 최소한의 사과와 일말의 부끄러움조차 없는 후안무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봉감독의 업적을 칭송하는 게 아니라 웃음거리로 만드는 ‘괴랄한’(괴이하고 악랄하다는 의미의 신조어) 공약”이라는 누리꾼의 지적엔 쓴웃음만 나온다. 기생충에 기생하려는 이들의 공약을 봉감독도 원치 않을 것이다.  
문재인정부 들어 블랙리스트는 사라졌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석권을 ‘한국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평가한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지적은 정곡을 찔렀다. 블랙리스트가 계속됐더라면 기생충같은 작품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근혜정권의 블랙리스트 문제는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민주당은 2018년 블랙리스트 진상규명 특별법과 예술인의 권리보장 및 창작의 자유를 보호하는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 등을 약속했으나 아직 성사되지 않았다.
특히 진상규명 활동은 전혀 이행되지 않았다. 문화예술인들과의 공식회의도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집권여당이 ‘한국당의 반대’를 이유로 위원회 활동에도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여왔다는 게 송경동시인의 지적이다. 전 한국당이 반대해 예산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현실적 한계가 있을 뿐 진상규명 노력은 계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진척사항은 별로 없다. 문화예술인들은 법률에 기반한 피해자 대책 마련과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책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봉준호감독이 기생충에서 말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세계인이 공감하는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구조는 무엇인가. 극도의 모순을 안고 있는 자본주의일 수도 있고, 각종 폐혜를 양산한 신자유주의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를 해소할 방안은 무엇일까. 악인도 영웅도 없는데 비참한 비극을 초래한 구조 안에 갇힌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고통과 불안은 잘못된 사회구조에서 유래한 것임을 영화는 에둘러 말한다. 그렇다면 누가 해결할 수 있을까. 
봉감독의 말처럼 이제 혁명이 가능한 세상은 아니다. 정치가 앞장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말로는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내세우지만, 기득권을 대변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복무할 뿐이다. 정치인들의 얄팍한 꼼수는 정치불신을 조장할 뿐이다. ‘좌파의 선동영화’로 매도하다가 아카데미상을 석권한 이후 약삭빠르게 기생충에 기생하려는 후안무치한 정치인들의 이율배반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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