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지상 강좌] 詩마을 창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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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유종화 기자
  • 입력 2020.01.1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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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디 있느냐

[데일리스포츠한국 유종화 기자] ‘불온서적’과 ‘청소년 권장도서’의 차이

실제로 몇 년 전에 서점에서 오장환의 시집 ‘병든 서울’을 사면서 뒤통수가 따갑게 느껴진 적이 있다. 누가 나를 간첩으로 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습겠지만 사실이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20여 년 전 내가 막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충격적인 기사가 실린 신문을 보았다. ‘교사간첩단 검서’라는 대문짝만한 기사에 박정석이라는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의 성함이 적혀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불온서적을 읽었다는 것이다. 그 불온서적이라는 것이 바로 오장환의 시집 ‘병든 서울’이다. 지금은 어느 서점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고, 몇 년 전의 어떤 자료를 보니 ‘청소년 권장도서’로 지정되어 있다.

‘불온서적’과 ‘간첩’ 그리고 ‘청소년 권장도서’의 사이를 생각해 보면 머리가 혼란스럽다.

그때 함께 간첩으로 몰렸던 이광웅 선생님은 고문 후유증으로 몇 년 전에 돌아가셨고, 간간이 들려오는 얘기를 들어보면 박정석 선생님도 성한 몸은 아니시란다.

추라한 지붕 썩어가는 추녀 우엔 박 한 통이 쇠었다

밤서리 차게 나려 앉는 밤 싱싱하던 넝쿨이 사그러 붙던 밤. 지붕밑 양주는 밤새워 싸웠다

박이 딴딴히 굳고 나뭇잎새 우수수 떨어지던 날, 양주는 새 바가지 뀌어 들고 추라한 지붕, 썩어가는 추녀가 덮힌 움막을 작별하였다.

오장환의 ‘병든 서울’에 나오는 ‘모촌’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1930년대 우리 민족의 처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양주(부부)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박속을 긁어 먹고 만주나 북간도로 유랑생활을 떠난다.

이 모습 역시 그 당시 우리 민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시를 읽으면 간첩이 되는 것일까?

한참 감수성이 예민하던 학창 시절에 이러한 시들을 읽으면서 자랐더라면 나는 분명 지금보다 몇 배 더 시에 대한 안목도 넓고 식견도 깊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20년을 도둑맞은 기분이라는 말을 썼다.

생소한 이름, 색다른 감흥 - 1

김윤식은 ‘너 어디 있느냐’(나남)라는 제목으로 해금시인의 시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묶었다. 거기에는 임화, 권환, 김창술, 안용만, 박세영, 박아지, 조운, 백석, 박팔양, 조벽암, 임학수, 이찬, 김조규, 이흡, 여상현, 이용악, 조남령, 설정식 등의 시가 실려 있다.

조금 생소한 이름들이기는 하지만, 생소한 만큼 색다른 감흥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가장 압권이라고 생각되는 이용악의 시 ‘낡은 집’을 함께 읽어보자.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관자 이 시에서는 ‘물려줄 지위나 재산’의 뜻으로 쓰임.

도 갖지 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다 자란 수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랜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

찻길이 뇌이기 전

노루 멧돼지 쪽제비 이런 것들이

앞뒤 산을 마음 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털보의 셋째아들은

나의 싸리말 동무는

이 집 안방 짓두리광주리 옆에서

첫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다음호에 계속>

데일리스포츠한국 2020년 1월 10일자
데일리스포츠한국 2020년 1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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