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스포츠한국 유종화 기자] 문학소녀와 시인의 차이 2
오늘 하루 무사히 살았구나, 휴우
하루의 피곤함과 외로움과 어려움을
저마다 얼굴에 어둡게 짊어지고
옹기종기 오랜만에 둘러앉은 식구들
아이들은 하루하루 커갈수록
어른들은 하루하루 늙어갈수록
말 못할 저마다의 번민은 구름처럼 피어나
날이 갈수록 웃음과 말이 적적해지는구나
서로 사이 무너지는 빈 정적을 염치없이 비집고 들어와
폭군처럼 군림하는 저 뻔뻔스런 TV
식구들 어느새 혼을 다 뺏긴 채
넋 없이 뼈 없이
고린내 나는 발만이 둘러앉아
입인지 코인지 분간 못하고
꾸역꾸역 처넣은 저녁식사
쓰디쓴 세상살이
마음 한번 확 터놓고 웃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위협적으로 웃음을 강요하는 저 저질 TV프로에
울을 수도 웃을 수도 없어
입술들만 가면처럼 씰룩거리는데
가슴속은 더욱더 황량해질 뿐이어서
더욱 더 가난하고 슬퍼지는
우리들의 저녁 밥상
-‘저녁 밥상’ 전문
바로 이 모습이 우리들의 현실이 아니라고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그러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시는 우리의 생활 속에 있다.
이 시에서 양정자 시인은 우리들의 가장 보편적인 생활모습을 그려 주고 있지만, 그 속에 흐르는 감정은 오손도손 모여 앉아서 정담을 주고받는 가정을 강렬하게 원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생활과 그 생활이 불러일으킨 사상과 감정
이런 시를 읽는 독자들이 ‘어, 그래! 이게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어’ ‘그래서는 안 되는데…’ 하고 공감을 할 때, 시는 시의 몫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가 그러한 몫을 하기 위해서는 생활과 그 생활이 불러일으킨 감정에서 시작되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그 여자 희고 고운 손가락에서
무심히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에는 그 시부모님의
박제된 고통이 숨겨져 있다
고향이 전라도 깊은 산골이라던가
군인이요, 돈도 벌지 못하는
그녀의 약혼자가 해주었다는
그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에는
아, 보인다
쩍쩍 갈라터진 논바닥 같은
그 시골 부모님들의 손발이
오랜 가난과 인고에 찌들은
칡뿌리 같은 얼굴
피와 땀과 짜디짠 눈물이
-‘약혼반지’ 전문
시인은 일상의 삶 속에서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위에 인용한 시에서처럼 무심코 그러려니 생각하고들 있는 일 속에서
‘쩍쩍 갈라터진 논바닥 같은 그 시골 부모님들의 손발’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시이고, 그걸 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다. 이렇듯 시는 ‘멀리 있는 무지개’가 아니고 ‘생활과 그 생활이 불러일으킨 사상과 감정’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