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지상 강좌] 詩마을 창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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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유종화 기자
  • 입력 2020.01.0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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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사람 그리고 만인보

[데일리스포츠한국 유종화 기자] 시에 대한 선입견을 버려야 - 2

한 편 한 편이 독립되어 있어서 읽는 순서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그 속에 들어 있는 천오백여 명의 사람들 속에는 우리들의 역사, 우리들의 아버지, 우리들의 이웃, 또 우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고은이나 김지하 또는 양성우 같은 시인을 권할 때는 한 가지 꼭 덧붙여 얘기해야 할 것이 있다.

아직 그들의 시를 접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의 시가 거칠고 투쟁적이고 어떤 이념을 앞세우고 있다고 생각하고 읽기를 거북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제로 읽어보면 그렇지 않다. 그들의 시 속에도 똑같이 사람 사는 모습이 들어 있다.

신경림은 양성우의 시집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실천문학사)의 서문에 “어떤 평론가가 그를 목청이 높은 시인의 예로 들길래, 그의 시를 읽어 본 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시는 읽지 못했다고 해서 고소를 금치 못했던 일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고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의 시를 읽어보지도 않고, 일단 그의 이름만 듣고 그의 시가 격하고 거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멀리하는 경우가 있다.

정말 그런지『만인보』제1권에 나오는 ‘딸그마니네’를 읽어 보자.

갈뫼 딸그마니네 집

딸 셋 낳고

덕순이

복순이

길순이 셋 낳고

이번에도 숯덩이만 달린 딸이라

이놈 이름은 딸그마니가 되었구나

딸그마니 아버지 홧술 먹고 와서

딸만 낳는 년 내쫓아야 한다고

산후조리도 못한 마누라 머리끄덩이 휘어잡고 나가다가

삭은 울바자 다 쓰러뜨리고 나서야

엉엉 우는구나 장관이구나

그러나 딸그마니네집 고추장맛 하나

어찌 그리 기막히게 단지

남원 순창에서도 고추장 담는 법 배우러 온다지

그 집 알뜰살뜰 장독대

고추장독 뚜껑에

늦가을 하늘 채우던 고추잠자리

그 중의 두서너 마리 따로 와서 앉아있네

그 집 고추장은 고추잠자리하고

딸그마니 어머니하고 함께 담는다고

동네 아낙들 물 길러와서 입맛 다시며 주고 받네

그러던 어느 날 뒤안 대밭으로 순철이 어머니 몰래 들어가

그 집 고추장 한 대접 떠가다가

목물하는 그 집 딸 덕순이 육덕에 탄복하여

아이고 순철아 너 동네장가로 덕순이 데려다 살아라

세상에는 그런 년 흐벅진 년 처음 보았구나

이 시 속에서 어디 사상이니 이념이니 투쟁이니 하는 것들을 생각할 수가 있겠는가. 그저 사람 사는 모습이 보일 뿐이다.

역사니 민중이니 이념이니 하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시 속에 녹아 흐르고 있을 뿐이다.

진솔한 삶의 모습이 진하게 배어 있어 - 1

재미도 있지만 그 재미 뒤에는 어딘가 모르게 쌔하게 아려오는 맛이 있다. 그게 바로 우리들이 살아온 모습이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이다. 고은은 ‘만인보’에서 바로 그러한 것을 그려내고 있다.

백낙청은 ‘만인보.3’의 발문에서 “한 대작의 완성이 문학하는 누구에게나 남의 일일 수 없다는 단순한 뜻에서만이 아니라 아무리 뛰어난 재능의 시인일지라도 남들이 함께 살아 주고 싸워 주고 읽어 줌으로써만 그런 위업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며, 그런 겹겹의 만남 가운데서는 우리 각각의 몫으로도 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일이 반드시 돌아오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계속>

데일리스포츠한국 2020년 1월 2일자
데일리스포츠한국 2020년 1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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